돌 + 아이 보험설계사

보험이라는 창(窓)으로 본 인생풍경 5

by 보험외길

보험 영업의 세계에서 ‘조직 증강(Recruiting)’은 종교이자 생존이다. 군대에서 경계에 실패한 장교는 용서받지 못하듯, 보험 영업 현장에서는 리크루팅에 실패한 영업책임자는 살아남을 수 없다. 실적은 숫자에 불과하지만, 사람은 미래이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때로는 '입사해서는 안 될 사람'까지 검은 손길을 뻗치게 된다. 박태윤 설계사가 바로 그 문제의 인물이었다. ​그를 데려온 건 지난 2년간 리크루팅 실적이 전무했던 고참 설계사였다.


처음 마주한 박태윤의 인상은 한마디로 ‘살벌’했다. 험상궂은 외모에 걸걸한 말투, 누가 봐도 사람 상대하는 영업직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하지만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니었던 나는 일단 그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우여곡절 끝에 보험설계사 시험을 통과한 그는 마침내 정식 코드를 부여받았다.



첫 출근 날부터 심상치 않았다. 잘 어울리지도 않은 양복을 입고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그를 본 동료들은 일제히 비명을 지르거나 입을 떡 벌렸다. 그의 목에는 커다란 패찰이 걸려 있었는데, 거기 적힌 문구가 가관이었다.
​"나는 아내만을 사랑하겠습니다."
​"박 사장님, 이게 대체 뭡니까? 벌칙이라도 받은 거예요?"
내 질문에 그는 쑥스럽다는 듯 험악한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대답했다.
"아, 지 마누라가 이거 안 걸고 출근하면 죽여버린다고 해서요. 저, 마누라 말이라면 껌뻑 죽지 않습니까."

​알고 보니 그는 세 번의 결혼을 거쳐 지금의 아내와 살고 있었다. 전처들이 남긴 배다른 아이 넷을 지금의 아내가 모두 키우고 있었고, 뱃속에는 다섯째가 자라고 있었다. 그 우락부락한 외모로 여성 편력이 화려했다는 사실도 놀라웠지만, 아내의 명에 따라 '사랑의 서약서'를 목에 걸고 다니는 모습은 영락없는 ‘돌+아이’였다. ​


그의 과거는 더 화려했다. 조폭 출신은 아니었지만 지역에서 꽤 큰 유흥주점을 운영하다 미성년자 고용과 영업정지 중 몰래 영업하다가 면허가 취소된 전력이 있었다. 갈 곳 없는 야생마가 보험이라는 정글로 뛰어든 셈이었다.


​박 설계사는 입만 열면 욕설을 내뱉어 동료들과 툭하면 시비가 붙었다. 사무실 정규직 보상직원들과 몸싸움이 날 뻔하기도 했다. 괜한 사람을 들였나 보다 하는 후회가 밀려올 때쯤, 그가 의외의 성과를 가져왔다. 잘 아는 주지 스님이 있다며 거액의 '사찰 재물보험' 건을 물어온 것이다.



​우리는 시내에서 한 시간 거리에 있는 산중턱의 절로 향했다. 그의 운전 실력은 성격만큼이나 난폭했다. 고급 세단이 비포장도로를 달릴 때마다 차 바닥이 돌부리에 부딪혀 비명을 질렀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가속페달을 밟았다.

마침내 도착한 절은 예상외로 평온했다. 차 문을 열자마자 달려든 것은 매캐한 도시의 매연이 아니라, 코끝을 알싸하게 파고드는 진한 송진 향과 차가운 산 공기였다. 화려한 단청이 입혀진 대웅전은 오후의 햇살을 받아 금빛으로 일렁였고, 마당에는 결이 고운 모래가 정갈하게 깔려 있었다. 박 설계사의 우락부락한 외모와는 도저히 매치가 안 되는, 마치 한 폭의 수묵화 같은 정적이 흐르는 곳이었다.

방금 전까지 차 안에서 쏟아냈던 박 설계사의 거친 욕설과 엔진 소리는 온데간데없고, 처마 끝에 매달린 풍경만이 산들바람에 "딸랑" 소리를 내며 이곳이 속세와 단절된 곳임을 알리고 있었다. 박 설계사는 제 집 안방이라도 들어가는 양 거침없이 요사(寮舍)채 한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스님! 저 왔습니다!"
"주지스님, 아직 안 오셨습니다. 여긴 어떻게 들어오셨나요?"
스님은 안 계시고 자원봉사 여성신도들만 집무실 안팎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우리가 약속시간 보다 조금 일찍 도착한 바람에 출타 중인 스님은 아직 오고 계시나 보다.

여성 신도 한분이 안내한 주지 스님의 집무실은 수행자의 공간이라기엔 묘하게 세속적인 편안함과 수행의 엄격함이 공존하는 곳이었다. 문을 열자 가장 먼저 반긴 것은 묵직한 침향(沈香) 냄새였다. 방 한쪽 벽면은 수백 권의 불경과 고서들로 가득 찼고, 반대쪽 벽에는 기운찬 필체의 달마도가 걸려 있었다 방 한가운데에는 오랜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는 커다란 괴목(槐木) 찻상이 놓여 있었다. 그 위에는 정교한 다기 세트와 함께, 어울리지 않게도 최신형 PC 모니터와 두꺼운 법전들이 놓여 있어 주지 스님이 만만치 않은 지식과 정보력을 가진 인물임을 짐작게 했다.


마침내 만난 주지 스님은 예사 인물이 아니었다. 당시 대우자동차 최고급 승용차를 몰고 카폰(Car Phone)을 사용하는, 소위 '깨어있는 수행자였다. 그는 평일에도 49재나 발인 행사 등으로 전국 각지를 도는 탓에 비서 격인 신도조차 일정을 다 파악하지 못할 만큼 분주한 몸이었다. 사찰 운영은 물론 지역사회의 굵직한 대소사까지 관여하고 있어, 스님과 차 한 잔 나누기 위해선 몇 번의 예약 확인을 거쳐야만 겨우 틈을 낼 수 있었다.



또 하나의 ​문제는 보험 인수의 난이도였다. 사찰은 화재보험에서 가장 위험한 '4급 목조건물'로 분류되어 본사 승인이 까다롭기 그지없다 - 화재보험에서 건축물을 위험급수로 구분하고 있는데, 철근콘크리트 구조의 안전한 건물인 1급부터 불이 나면 피해가 큰 4급까지 분류해서 인수와 보험료에 차등을 두고 있다-. 나는 당시 필름 카메라를 들고 사찰 구석구석을 누볐다.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이라 인화된 사진을 일일이 인수신청서 서류에 풀로 붙여 본사에 제출해야 했다.


​"스님, 금박을 입힌 불상과 귀한 탱화까지 다 보장받으시려면 사진이 더 필요합니다. 소방차 진입로와 공지거리-화재가 났을 때 소방설비나 소방차 그리고 소방인력이 활동할 넓은 공간-도 명확해야 하고요."

한 달 동안 ​세 번을 넘게 산을 오르락내리락했다. 본사의 깐깐한 심사팀과 인수승인 절차는 번거로운 과정 속에서 박 설계사는 특유의 넉살과 위압적인 친화력으로 주지 스님을 붙들고 있었다.


드디어 본사의 까다로운 조건이 모두 충족되었고, 이제 주지 스님의 청약서 서명만 남았다. 거액의 계약이 성사되기 직전의 팽팽한 긴장감이 흐르는 방 안. ​나는 살짝 떨리는 손으로 청약서를 내밀었다. 과연 이 '돌+아이' 설계사와 '카폰 굴리는' 주지 스님, 그리고 '목조 사찰'이라는 위태로운 조합은 무사히 보험이라는 계약으로 매듭지어질 수 있을까? 나는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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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필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변형, 재구성하여 쓰였으므로, 등장인물은 실제 인물이 아니며 특정인을 암시하지 않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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