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의 끝에서 만난 700원짜리 특약의 기적

보험이라는 창(窓)으로 본 인생풍경 10

by 보험외길

​"영진 씨, 다시 한번 말씀해 주시겠어요?"

​경찰서 조사실의 공기는 무겁고 차가웠다. 영진 씨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그 찰나의 순간을 벌써 몇 번이나 반복해서 진술하고 있었다. 입술은 말라붙었고, 손등 위로 식은땀이 흘렀다.

​"그러니까... 갑자기 수풀 사이에서 사람이 튀어나왔습니다. 브레이크를 잡을 새도 없었어요. 술 냄새가 확 났는데, 그대로 바닥에..."


영진 씨의 목소리가 떨렸다. 경찰관은 서류를 정리하며 지쳐버린 영진 씨를 안쓰럽게 바라보았다.

​"살다 보면 예기치 못한 일이 생기기도 합니다. 너무 자책하지 마세요."

​그 따뜻한 한마디에 영진 씨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저... 그런데 사고당하신 분은 나이가 좀 있으신 것 같던데, 뭐 하시는 분이신지요?"

"아, 그건 개인정보라서 자세히는 말씀드릴 수는 없고요. 보호자 되는 가족은 찾았는데 조금 복잡합니다. "

"네.. "

이후, 경찰관이 더 덧붙인 한마디가 그를 더 깊은 절망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었다.

​"담당 의사 소견으로는 환자분 상태가 매우 위독하다고 합니다. 어쩌면... 최악의 상황을 대비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최악이라니요...?"

​"치료 중에 사망할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선생님, 자전거 도로라고는 하지만 법적으로 자전거는 '차'에 해당합니다. 사람이 사망하게 되면 이건 형사처벌 대상입니다."

​'사망', '형사처벌', 영진 씨의 머릿속이 하얘졌다. 심장 비명 소리가 귓가를 때리는 것 같았다. 영진 씨는 그 소리를 듣고 속으로 "헉"하는 비명을 질렀다.

"형사처벌요?"

"유족과 형사합의를 하게 된다면 큰 문제는 없을 건데, 아마 합의금은 상당히 필요할 것 같아요."

학원 강사 월급으로 입에 풀칠하며 살아가는 가장에게, 수천만 원이 넘을지 모를 형사 합의금은 사형 선고나 다름없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강변에 흐드러진 벚꽃이 마치 조화(弔花)처럼 보였다. 아내에게 이 사실을 어떻게 말해야 할까. 두 아이의 얼굴을 볼 때마다 목이 메었다. 아빠가 감옥에 가면 남겨진 가족은 어떻게 될까. ​영진 씨는 밤마다 거실에 홀로 앉아 어둠 속을 응시했다. 고민이 깊어질수록 극단적인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내가 사라지면 이 비극도 끝날까?'


​사고 발생 보름째 되던 날, 결국 우려하던 연락이 왔다. 피해자가 끝내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숨을 거두었다는 소식이었다. 경찰에서 연락이 왔다. 영진 씨는 온몸을 사시나무 떨듯 떨며 아내의 손을 잡고 다시 경찰서를 찾았다.


"사고 현장 정황과 119 구조대원의 진술을 모두 확인했습니다. 피해자가 음주 상태에서 갑자기 자전거도로로 뛰어든 과실이 크긴 합니다만, 어쨌든 이건 '차 대 인' 사망사고입니다."

​아내는 경찰관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바들바들 떨었다. 그녀가 겨우 목소리를 내어 물었다.

​"선생님, 제 남편이... 정말 감옥에 가야 하는 건가요? 저희 애들은 아직 어린데..."

​"아니요, 합의만 원만하게 진행되면 거긴 면할 수 있습니다. 다행히 유족 측에서도 선생님의 형편과 고인의 과실을 참작해서 합의를 해주시겠다고 하네요."


​아내의 눈에 희망의 빛이 살짝 감돌았다. 하지만 그 빛은 다음 순간 더 큰 어둠으로 바뀌었다.

​"합의금이 얼마나 필요한가요?"

​경찰관이 서류를 넘기며 무심하게 답했다.

​"아, 못 들어셨어요? 유족들이 직접 말씀을 안 하셨나 보네요. 8,500만 원 정도로 조율되었습니다."


8,500만 원. 영진 씨 부부에게는 8억 5,000만 원만큼이나 아득한 숫자였다. 수중에 100만 원조차 마련하기 힘든 형편이었다. 해지할 적금도, 팔아치울 재산도 없었다. 아내는 자리에 주저앉아 소리 없이 큰 한숨을 쉬었다. 두 사람의 모습이 너무나 처량했는지 옆에 있던 형사가 넌지시 물었다.

​"두 분, 혹시 가입해 둔 보험은 없으신가요?"

​"보험요? 저희는 그런 비싼 걸 들 형편이 안 돼서..."


​영진 씨가 고개를 저을 때, 옆에서 한숨짓던 아내가 희미하게 중얼거렸다.

​"보험...? 아, 맞다. 작년에 친구가 하도 사정해서 든 건강보험이 하나 있어요. 상해랑 질병 같은 거 보장해 준다고 해서 매달 몇만 원씩 내는 게 있긴 한데..."

"그건 자기가 아플 때 받는 보험이 자나... 그 보험이 이런 사고에서 형사 합의금도 해결해 주려나..."

영진 씨는 그 보험에 큰 기대를 걸지 않았다.


그러나, 물에 빠진 사람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뜬눈으로 밤을 지새운 아내는 날이 밝자마자 보험설계사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손이 떨려 번호를 몇 번이나 잘못 눌렀다.

​"지영아, 나야... 혹시 내 보험에 남편이 사고 낸 것도 도와주는 게 있을까? 자전거 타다가 사람이 죽었대... 합의금이 8,500만 원이라는데 우린 정말 죽고 싶어..."

"잠깐, 나 지금 사무실이니 계약조회하고 바로 알려줄게. 끊지 말고 기다려봐."

​수화기 너머로 한참 동안 컴퓨터 키보드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들려온 친구의 목소리는 구원의 복음과도 같았다.

​"너 작년에 가입할 때 내가 보험료가 얼마 안돼서 그냥 넣었던 특약 기억나? 일상생활배상책임' 특약 말이야."

"글쎄... 근데 내가 자전거를 탄게 아니라 신랑이 탄 건데?"

" 그거 네 이름으로 되어 있어도 배우자까지 다 보장돼!"


그 말을 듣는 순간, 아내는 전신에 찌릿한 전율이 일었습니다. 마치 벼랑 끝에서 떨어지기 직전, 누군가 자신의 손목을 강하게 낚아챈 듯한 강렬한 구원의 감각이었다.

​"정말? 지영아, 정말이야? 우리 신랑도... 우리 신랑도 살 수 있는 거야?"

​눈앞을 가리고 있던 칠흑 같은 절망의 안개가 순식간에 걷히고, 한 줄기 눈부신 빛이 쏟아져 들어오는 것 같았다.


아내는 보험금 청구 후 며칠은 1년처럼 길게 느껴졌다. '혹시 안 된다고 하면 어쩌지?', '우리가 돈을 먼저 내야 하는 건 아닐까?' 온갖 걱정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하지만 기적은 현실이 되었다. 보험사 보상팀에서 연락이 왔다. 영진 씨의 과실과 유족 측의 합의금을 검토한 결과, 합의금 8,500만 원 전액을 보험사에서 직접 입금해 주기로 했다는 소식이었다.


​입금 문자가 도착한 순간, 아내는 휴대폰을 붙잡고 비명을 질렀다.

"여보! 됐어! 우리가 살았어!"

영진 씨는 지옥 같았던 보름간의 시간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합의금이 전달되자 멈춰있던 행정 절차는 일사천리로 해결되었다. 영진 씨는 형사 처벌의 위기에서 벗어났고, 다시 가족의 품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경찰서를 나오던 날, 낙동강변에는 여전히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사고가 났던 그날과는 전혀 다른 빛깔이었다. 영진 씨는 아내의 손을 꼭 잡았다.

​"여보, 저 꽃들이 이제야 예뻐 보이네."

​"그러게... 우리 진짜 큰일 날 뻔했다. 그 특약이 우리를 살렸어."


나중에 확인해 보니, 그 특약의 보험료는 고작 월 700원이었다. 담배 한 갑, 커피 한 잔 값도 안 되는 그 작은 돈이 벼랑 끝에 선 한 가족의 목명을 붙들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에게 그 특약은 절망의 끝에서 내려온 튼튼한 동아줄이었고, 가장 어두운 밤에 길을 비춰준 등대였다. 이후 영진 씨 부부는 주변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일상생활배상책임특약'의 중요성을 전파하는 보험 전도사가 되었다.


​누군가는 보험을 '아까운 비용'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인생이라는 험한 항해에서 언제 만날지 모를 큰 비를 막아줄 우산은 보험뿐이라는 것을, 영진 씨 부부는 낙동강의 시린 봄을 지나며 뼈저리게 깨달았다. 봄보다 더 따뜻한 것, 그것은 사람을 지키고 가정을 구하는 보험의 진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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