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서야 완성되는 지독한 모정(母情)

보험이라는 창(窓)으로 본 인생풍경 11

by 보험외길

"지점장님, 나도 보험 하나 들어야겠어.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겠지?"
​지인 중 금진수라는 어르신이 있다. 평생 보험의 '보' 자에도 관심 없던 분이 어느 날 갑자기 흥분된 목소리로 전화를 걸어왔다. 나이가 지긋하신 분이 뒤늦게 보험을 찾는 경우는 대개 본인의 건강이 염려되어서다. 하지만 어르신의 이유는 뜻밖이었다.

​"어르신, 갑자기 왜 보험을 들려고 하세요?"
"우리 누님 가는 걸 보니까… 나도 죽기 전에 우리 딸한테 뭐라도 하나 남겨줘야겠더라고."
​어르신의 목소리 끝이 젖어 있었다. 사실 금진수 어르신은 보험사 입장에서 보면 '가입 불가'의 표본 같은 분이다. 암 치료 이력에 고혈압, 당뇨, 신장 질환까지 앓고 계신 데다 막노동판에서 허리를 다쳐 지체 장애까지 안고 계셨다.

어르신은 일찍이 아내를 여매고 늦둥이 딸 하나를 금지옥엽 키워냈지만, 기초생활수급자로 살아가는 처지에 결혼한 딸에게 짐이 되는 것이 늘 죄스러웠던 분이다. 그런 어르신이 '거꾸로 가입하는 보험'을 찾게 만든 건, 바로 며칠 전 겪은 누님의 참혹한 죽음 때문이었다.

"아고, 어쩌다 돌아가신 거예요?"
누님의 사망 소식은 비극이라는 말로도 부족했다. 누님 또한 기초생활수급자로 혼자 살고 계셨는데, 사망 사유가 기가 막혔다. 작고 왜소한 체구였던 누님은 깊은 통돌이 세탁기 안쪽의 빨래를 꺼내기 위해 늘 벽돌 몇 장을 발판 삼아 딛고 올라섰다고 한다.


그날도 여느 때처럼 빨래를 꺼내려 허리를 숙였을 것이다. 순간, 위태롭게 쌓인 벽돌이 무너졌고 누님은 거꾸로 세탁기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 좁고 차가운 철제 통 안에서 누님은 장시간 방치되었다가 며칠이 지나서야 발견되었다. 금 어르신과 한 지역에 살며 일주일에 몇 번씩 오가던 오누이였지만, 그 마지막 고통의 순간만큼은 철저히 혼자였다.

연락이 닿지 않는 자식들을 대신해 동생인 금 어르신이 장례를 치렀다. 조문객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결혼은 부모 손님이고, 장례는 자식 손님이라더니… 자식 없는 장례식에 누가 오겠어?"
​냉소적인 어르신의 대답에는 자식들에 대한 원망과 누님에 대한 가련함이 뒤섞여 있었다. 유품을 정리하고 세 들어 살던 방까지 말끔히 치워 반환할 때까지, 자식들은 그림자조차 비치지 않았다.

​누님이 세상을 떠나고 얼마 뒤, 내게 낯선 여자에게서 전화가 왔다.
"지점장님이죠? 우리 외삼촌한테 번호 받았는데요. 돌아가신 어머니가 보험을 좀 들었다는 소문이 있어서요… 그 보험금을 제가 받을 수 있는지 확인 좀 하려고요."
​순간 귀를 의심했다. 장례식조차 오지 않았던 딸이 보험금 소식을 듣자마자 나를 찾아낸 것이다.

기가 막혔지만, 더 황당한 것은 금 어르신의 반응이었다. 어르신이 직접 조카들에게 내 번호를 알려주었다는 것이다.
​"지점장님, 걔들이 돈을 받아야 내가 쓴 장례비랑 청소 용역비 1,000만 원을 돌려받을 것 아녀. 영수증 다 챙겨놨어."
​천륜이 끊긴 자리에는 오직 영수증과 돈의 논리만 남았던 것이다. 자식들은 보험금이 있다는 소리에 남남에서 순식간에 아들과 딸로 돌변한 것이다.

나는 딸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 금융감독원에 싱속재산과 부채를 조회하는 조회할 수 있고, 지역에 삼성생명이 있으면 거기서도 대행해 준다고 했다. 기초생활수급자라 아마 재산이나 부채가 거의 없을 것이고 혹시 빚이 너무 많다면 상속포기를 할 수 있다고 했다. 보험은 잘 모르면 망인의 개인정보를 알려주면 내가 대신해 주겠다고 했다.

나는 망인의 보험 가입 내역을 알아봐 주었다. 그리고 확인하는 순간, 나는 깜짝 놀랐다. 최근 본 보험가입자 중에 이렇게 보험을 많이 든 분은 처음이었다. ​기초생활수급자로 한 달 생계비 몇십만 원을 쪼개 쓰던 분이 가입한 보험이 무려 12개였다. 월 보험료는 대부분 소액이었지만, 상해사고로 사망했을 때 나오는 보험금을 합산하니 무려 5억 원에 달했다.
​부동산도, 차량도, 변변한 가구 하나 없던 방에서 살던 노인이 유일하게 쌓아둔 자산은 '자신의 죽음값'이었다.

자식들은 빚이 상속될까 봐 겁을 내면서도 5억 원이라는 사망보험금 앞에서는 눈을 번뜩였다. 나는 사망보험금은 상속 재산이 아니기에 법원에 상속포기를 하더라도 사망보험금은 빚과 상관없이 수령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그 뒤로 몇 번 더 걸려오던 자식들의 전화는 어느 순간 뚝 끊겼다.

​나중에 금 어르신께 전해 들으니, 조카들이 보험금을 받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르신의 통장으로 장례비 1,000만 원이 입금되었다고 했다. 5억 원이라는 거금을 챙긴 자식들이 장례를 대신 치러준 외삼촌에게 딱 '실비'만 정산해 준 셈이다. 어르신은 내심 고마움의 표시로 조금 더 얹어주길 바랐지만, 그것은 지나친 기대였다.

​나는 창밖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누님은 왜 그토록 많은 보험에 집착했을까. 그분은 아마 알고 있었을 것이다. 본인이 가난해서, 자식들에게 해준 게 없어서 자식들이 자신을 찾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가난은 죄가 아니라지만, 가난한 부모는 늘 죄인이 된다. 어린 시절 남들 다 먹는 고기 한 점, 좋은 옷 한 벌 입히지 못하고 키운 것이 평생의 한으로 남았을 것이다.

​누님은 벽돌을 밟고 올라서며 늘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내가 사고라도 나서 이 보험금이라도 남겨주면, 그때는 자식들이 나를 용서해 줄까? 그때는 내 무덤에라도 한 번 찾아와 줄까?'
​그 좁고 차가운 세탁기 통에 머리를 처박고 서서히 숨이 잦아들던 그 공포의 순간에도, 누님은 어쩌면 자신의 죽음이 5억 원이라는 거액으로 치환되어 자식들에게 돌아갈 것을 떠올리며 위안을 삼았을지도 모른다. 죽어서야 비로소 자식들에게 '부모 대접'을 받을 수 있는 자격을 획득했다는 그 슬픈 안도감 말이다.

부모의 사랑은 참으로 미련하고도 지독하다. 자신을 버린 자식을 위해 매달의 생활비를 보험료를 내며,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자식의 미래를 샀다. 세탁기라는 일상의 도구가 죽음의 덫이 된 그 비극적인 현장은 사실 누님이 평생 짊어지고 온 '가난'이라는 굴레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자식들은 그 돈으로 빚을 갚고, 좋은 차를 사고, 맛있는 음식을 먹을 것이다. 그 돈이 어머니의 굽은 허리와, 벽돌 위에서 떨리던 다리와, 세탁기 안에서의 고독한 단절에서 나온 것임을 그들은 알까. 아니, 알아도 애써 외면할 것이다.


​금진수 어르신 또한 그 5억 원의 소식을 듣고 본인도 보험을 들겠다며 나를 찾은 것이다. 누님의 죽음이 남긴 것은 '슬픔'이 아니라 '보험금이라는 유산의 효능'이었던 셈이다.
​"지점장님, 나도 누님처럼 그렇게 가면 우리 딸은 좀 펴고 살겠지?"
​어르신의 질문에 나는 차마 답하지 못했다. 부모의 살점을 깎아 자식의 배를 채우는 이 지독한 내리사랑의 연쇄를 보며, 나는 인간의 마음이 바다보다 깊고도 또 잔인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죽어서야 완성되는 그 지독한 모정(母情)이 왜 이리 가슴 아플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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