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이라는 창(窓)으로 본 인생풍경 7
보험 영업책임자라는 자리는 화려한 실적 이면에 늘 고독과 불안을 품고 사는 직업이다. 숫자로 증명하면 '영웅'이 되지만, 그 숫자가 꺾이는 순간 '죄인'이 된다. 나는 그 아슬아슬한 줄타기 위에서 '과욕'이라는 독사과를 덥석 베어 물고 말았다. 그것이 내 목을 조르는 치명적인 독이 될 줄은 꿈에도 모른 채 말이다.
박태윤 설계사가 어느 날 낯선 여성 두 명을 데리고 지점으로 들어왔을 때, 나는 본능적으로 직감했다. 그들이 풍기는 분위기는 일반적인 보험 설계사와는 거리가 멀었다. 박 설계사가 예전에 운영하던 유흥주점에서 일했다는 젊은 여성들. 그들은 타지에서 흘러 들어와 연고도 없는 이 도시의 어두운 밤을 보냈던 이들이었다.
그녀들의 삶의 궤적은 일반적인 직장인과는 완전히 달랐다. 해가 중천에 떠도 그들에게는 한밤중이었고, 지점의 아침 정보조회나 교육은 그저 먼 나라 이야기였다. 그러나 나는 실적에 눈이 멀어 그들의 무질서함을 '개성'으로 포장했다.
"지점장님, 애들이 밤일하던 습관이 있어서 아침엔 좀 힘들어요. 제가 잘 챙길게요."
박 설계사의 그럴싸한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오히려 내가 직접 그들의 자취방으로 찾아가 계약 서류를 안내하고 교육을 하는 정성을 보였다. 방 안 가득한 담배 연기와 흐트러진 술병들 사이에서 자다 깨 부스스한 모습의 그들을 보며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그래, 실적만 잘 나오면 됐지. 매출만 높으면 이런 수고쯤이야.'
실제로 그들이 가져오는 계약은 대단했다. 건수는 적었지만 하나하나가 백만 원대의 고액 보험이었다. 지점의 목표 달성률은 단숨에 상위권으로 치솟았고, 나는 본부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실적이라는 마약이 내 이성을 마비시키고 있었다.
초여름, 지점 식구들과 함께 금오산으로 단합대회를 떠났다. 아침에 일어나지 못하는 그 두 명을 태우기 위해 직접 차를 몰아 자취방 앞까지 갔다. 억지로 깨워 차에 태운 그녀들은 처음에는 투덜댔지만, 막상 산행길에 오르니 나를 살갑게 맞아주었다.
짙푸른 녹음이 우거진 금오산 정상을 향하며 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꽤 늘어난 설계사들의 행렬, 그리고 전국 탑을 찍을 것 같은 장밋빛 미래. 산기슭 백숙집에서 막걸리 잔을 기울이며 노래방 기계에 맞춰 노래하며 춤추는 아름다운 광경을 보며 나는 "내 영업책임자 시절의 인생의 전성기가 왔다'"고 확신했다.
하지만 그것은 거대한 모래성 위에 세워진 신기루였다. 행복은 짧았고 파국은 순식간이었다. 어느 날부터 박태윤 설계사와 그 두 명의 아가씨가 연락이 두절되었다. 전화를 걸어도 '전원이 꺼져 있다'는 무미건조한 안내음만 들려왔다. 불길한 예감은 틀린 적이 없었다. 그들을 리크루팅 했던 설계사마저 행방을 모른다고 했다.
급한 마음에 그들의 자취방을 찾아갔을 때, 내가 마주한 것은 텅 빈 방과 주인아줌마의 싸늘한 목소리였다.
"그 사람들 야반도주했어요. 박 씨인가 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 명의 빌려가지고 다시 술집 차렸다던데?"
망치로 머리를 세게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과거 스님을 폭행했던 전력이 있던 박태윤을 그때 바로 해촉 했어야 했다. 내 과욕이 화를 키웠다는 후회가 밀물처럼 밀려왔다. 그들은 내 신뢰를 비웃듯, 아무런 예고도 없이 증발해 버렸다.
그들이 사라진 자리는 거대한 블랙홀이 되어 지점을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지점의 매출은 반 토막이 났고, 더 무서운 폭풍이 몰아쳤다. 그들이 체결했던 고액 계약들이 줄줄이 실효되고 해지되기 시작한 것이다. 심지어 "설명을 제대로 듣지 못했다"며 납입한 보험료 전액을 돌려달라는 '민원 성 최소가 빗발쳤다.
현장을 확인하려 해도 고객들의 주소지는 가짜였고, 전화번호는 결번이었다. 내 책상 위에는 총무가 매일같이 뽑아주는 미납 명단과 실효 리스트가 쌓여갔다. 그들의 계약은 실체가 없었다. 고객 대부분이 유흥업소 종사자나 신용 상태가 불량한 이들이었기에 자동이체는 불가능했다. 이른바 '직접 수금'. 설계사가 매달 현금을 받아 회사 계좌에 입금하는 방식이었다. 이는 언제든 사고가 터질 수 있는 시한폭탄과 같았지만, 나는 당장의 매출에 눈이 멀어 그 폭탄의 타이머를 외면했다.
더욱 괴로웠던 것은 지점 식구들의 시선이었다. 고액 계약을 가져온다는 이유로 그들만 오냐오냐하며 챙겼던 내 편애를 묵묵히 지켜보던 성실한 설계사들. 그들의 차가운 눈빛이 내 등에 꽂혔다.
"지점장님, 저 사람들 사고 칠 줄 알았습니다. 결국 우리 지점만 엉망이 됐네요."
한 고참 설계사의 뼈 있는 한마디가 심장을 찔렀다. 성실하게 일해온 그들의 신뢰를 잃은 지점장은 이제 껍데기에 불과했다.
본부의 태도는 180도 달라졌다. 얼마 전까지 '스타 지점장'이라며 치켜세우던 본부장은 이제 나를 '부진 점포장'이라 부르며 몰아세웠다. 매주 열리는 전략 회의는 내게 단두대와 같았다.
"지점장! 매출은 그렇다 치고 효율지표가 이게 뭐야? 유지율 전국 최하위, 정착률 최하위. 이 정도면 지점 문 닫아야 하는 거 아니야? 원인 분석하고 개선안 제출해. 이번 달까지 숫자 안 올라오면 책임져야 돼! 지점꼴이 이 정도로 되는 건 자네 인성이나 리더십에 문제 있는 거 아냐?"
수십 명의 동료 지점장들 앞에서 비인격적인 질타를 받을 때, 나의 자존감은 바닥을 뚫고 지하실까지 내려갔다. 영업 세계에서 실적은 곧 인격이다. 숫자가 사라진 나는 더 이상 존중받을 가치가 없는 '무능한 관리자'일뿐이었다.
밤늦게 텅 빈 사무실에 홀로 앉아 있으면, 형광등 깜빡이는 소리조차 나를 비웃는 것 같았다. 세상 모두가 내게 등을 돌린 기분이었다. 믿었던 이들에게 당한 배신감, 그리고 내 눈을 가렸던 탐욕에 대한 자책감이 뒤섞여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사표를 품에 넣고 몇 번이나 만지작거렸다. 이 일을 계속할 명분도, 자신감도 없었다. 독사과인 줄 알면서도 달콤함에 취해 삼켜버린 대가는 너무도 혹독했다. 내 인생에서 가장 화려했던 초여름의 금오산은 이제 기억 속에서 빛바랜 채, 시린 겨울의 찬바람만 가슴속을 파고들고 있었다.
욕심이 잉태한 괴물은 결국 나 자신을 잡아먹고 말았다.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보험이라는 창을 통해 본 인생 풍경 중 가장 추한 것은, 다름 아닌 '빨리 가려다 길을 잃은 나의 조급함'이었다는 것을.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 야고보서 1장 15절 -
이카루스의 추락이 있는 풍경 (Landscape with the Fall of Icarus)
화가: 피터 브뤼헐(Pieter Bruegel the Eld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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