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무리

엄마의 병영생활

by 단려


아직 턱수염도 보들거리던 아들의 입대하는 날 새벽. 늦깎이 별님이 캄캄한 새벽하늘을 빛내고 있었다. 나는 내 아들 어깨를 보듬고 다섯 시간이 넘는 신병교육대를 달렸다. 살며시 떨리는 아들의 심장소리가 안쓰럽기도 하였지만 그건 아마도 나의 맥박소리였는지도 모르겠다. 아들은 깎은 머리가 어색해 모자를 눌러썼고 그 모습조차 어색한 듯 눈썹 아래까지 덮었다. 아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잘할 수 있을 거야 마음속으로 기도했다. 아들만큼 어리바리한 엄마의 병영생활은 그날부터 시작되었고 아들의 계급 무게만큼 엄마의 벽돌 무게도 쌓였다.


남쪽은 온통 봄꽃으로 세상이 들썩거린다. 아들의 생일날 상기된 모습으로 입대를 한 지 일 년이 되었다. 멋진 사나이가 되어있는 아들을 만나러 또다시 새벽길을 나선다. 지난번과 다를 것 없는 거리와 낯설지 않은 군인아저씨 천국의 도시. 가슴에 보이는 상병 벽돌 무게만큼 여유 있어 보이는 아들에게 두 팔을 벌려 본다. 엄마가 해 주는 음식이 얼마나 먹고 싶었을까? 엄마와 아들이 교감인 듯 잘 먹어주는 아들이 대견스럽다. 아침에 눈을 뜨니 내 옆에서 자고 있다. 낯선 까까머리 군인의 모습은 먼 훗날 아련한 추억을 만들겠지. 점점 군인 아저씨가 되어가는 아들을 이곳에 두고 가도 될 것 같은데도 자꾸 눈물을 훔친다.



가을 지나 혹한기 훈련을 무사히 끝낸 아들이 말년 상병이 되어 엄마 품으로 달려왔다. 휴대폰에 ‘아들 휴가 갑니다~’라는 문자와 함께 바빠지는 아들바라기 엄마는 분주하다. 오여사(오쿠)가 세상에서 제일 부드러운 돼지수육을 만든다. 쿠쿠(밥솥) 아저씨는 아들 집도착과 동시에 이 세상에서 제일 쫀득한 밥을 자신 있게 만들어 준다고 외친다. 엄마랑 한 몸이 된 센 아가씨(청소기)는 저절로 엄마의 엉덩이를 씰룩거리게 한다. 역 플렛포옴에 내려서는 저 군인 아저씨가 진정 내 아들인가! 계급장만큼 듬직하고 노련해 보이는 멋진 맹호아들이 손을 흔들며 미소를 보낸다. 아! 순간 숨이 멎을 것 같은 이 느낌. 짧고 찐한 포옹으로 그간의 수고 그간의 그리움을 모두 토닥이고 우리는 멋진 오찬을 위해 집으로 향했다. 연신 감탄과 엄지를 들어 올리며 맛있게 식사를 하는 아들을 바라보는 엄마는 마냥 행복하다. 내가 가질 수 있는 아들의 소유는 여기까지였다. 짧은 휴가에 꽉 찬 스케줄이 어느 연예인 못지않다. 그래도 귀가할 땐 잊지 않고 사다 주는 과일파이는 아들의 미소만큼 달콤하고 부드럽다.


사흘이 멀다 하고 오던 전화가 하루, 일주일, 보름, 한 달씩 띄엄 거리는 횟수만큼 엄마의 노심초사도 띄엄 거렸다. 무소식이 희소식이었나 보다. 잘 있을 거라 믿었던 아들이 말년 휴가를 나왔다 복귀를 한다. 첫 복귀 준비를 하던 이병시절의 부산함과는 다른 여유와 숙련된 복귀준비를 바라보며 흐뭇했다. 딱 벌어진 어깨 생길 듯 말듯한 팔뚝 근육, 꿀벅지가 눈에 들어온다. 애송이 학생을 군에 보냈는데 뻥튀기하듯 까슬한 턱수염을 지닌 청년을 만들어 엄마 품에 돌려주었다.


“엄마! 내려가는 기차표가 없어요.”

제대를 위해 기차표를 예약하려니 표가 매진이란다. 군대보다는 여기서 예매하는 것이 더 빠를 것 같아 엄마가 대신 예매하겠다고 했다. 코레일 모바일을 뒤지기 시작한다. 하시라도 빨리 내게 돌아오는 아들이 편안히 올 수 있는 방법을 찾아주고 싶었다. 서울까진 어떻게 온다고 하나 서울서 논스톱으로 올 수 있는 차표가 모두 매진이다. 환승을 알아보자. 문득 아들에게 이벤트를 해 주는 것은 어떨까 싶다. 대전까지 KTX를 타고 대전에서 특실을 예약했다. 그간에 나라를 위해 수고한 자랑스러운 아들에게 주는 엄마의 포상이다. 아들의 문자가 들어온다.

“엄마, 특실 맞아? ”

“응. 맞아. 빨리 와.”

“넵. ㅋ.ㅋ.ㅋ.”

아들의 병영생활이 무탈하게 끝났다. 군인에서 일반 청년으로 탈바꿈한 아들은 일주일 동안 2년의 밀린 잠을 자고 있다. 아린 만큼 엄마와 아들은 성숙하였고 아들의 듬직해진 어깨는 세상 어디에 내버려 두어도 잘 헤쳐 갈 수 있을 만큼 단단해져 있었다. 잔바람 부는 만큼 아슬했던 아들의 군생활은 많은 경험과 어른다움을 만들었고 그렇게 엄마의 병영생활도 막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