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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로야 집 정원의 디테일 2 _ 호야킨 소로야

타일 _ 빛과 빛의 반짝임을 그린 화가

by Phillip Cho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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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국적 정원 소재 _ 세라믹 타일


“정원은 예술의 손길 아래 있는 자연의 표현이다” _ 조셉 에디슨(Joseph Addison)


정원을 자연의 재현이라고 하자면, 꽃과 나무 같은 자연 소재가 정원의 주요 소재가 되는것은 당연하다.

한편으로는, 야생의 자연과 달리 인간에 의해 의도적으로 계획되고 조성되는 정원은 이용하는 사람이 없으면 존재 의미를 잃게 되는 공간이기도 하다. 때문에, 인간의 편리한 이용을 위한 포장, 휴게시설, 구조물 그리고 수경시설 등은 정원을 구성하는 필수적인 요소가 된다. 결국 정원의 소재와 구성 등은 필연적으로 인간 사회의 문화와 양식을 반영하게 되고, 화가가 그림으로 옮기는 정원의 풍경 역시 당대의 예술 문화적 취향을 당연스래 담아내고 있다.

이슬람 문화가 남긴 다양한 유산은 호야킨 소로야 시대의 스페인에 여전한 영향을 미쳤고, 그가 그린 그림에는 당시 서양인들에게조차 이국적인 타일과 화분 소품들이 자주 등장하고 있다.

< The courtyard of the house of the coptic patriarch, Cairo. 1864. 존 프레드릭 루이스. >


호야킨 소로야는 발렌시아에서 태어나 어렸을때부터 미술학교를 다니며 화가의 길을 시작하였다. 이후, 장학생으로 로마 유학의 기회를 얻었고 그 후 파리로 이동하여 인상주의와 자연주의 화풍을 접하며 여러 화가들로부터 영향을 받았다. 사실주의 위주의 그림을 그리며 유명세를 얻어가던 그는 1900년 파리 만국박람회 출품과 수상을 거치며 국제적인 명성을 더욱 공고하게 되었다. 박람회 이후, 그는 유럽 미술계의 주요 인물이 되었고, 프랑스 인상주의 화가들과의 교류가 더욱 빈번해지며 ‘스페인의 빛을 담아내는 대가’ 로서의 화풍을 더욱 굳건하게 세워갔다.

< 파리만국박람회 그랑프리 수상. 슬픈 유산. 1899. 호야킨 소로야. >


국제적으로 큰 명성을 얻은 화가는 이때 얻은 부를 바탕으로 마드리드에 아내와 함께 지낼 집을 직접 설계하고 건축한다. 특히 그는 정원을 꾸미고 가꾸는데 큰 관심을 쏟았는데, 이슬람 정원의 영향을 받아 분수와 타일로 꾸며진 주택 전면의 정원 그리고 흐르는 수로를 중심으로 올리브, 오렌지 나무 등의 작은 숲을 조성한 중앙의 정원을 조성하였다. 소로야는 각종 식물과 화분, 조각상들을 세심하게 고르며 도입하였는데, 특히 당대에 유명한 ‘아술레호스 타일(안달루시아 지방의 타일)’은 직접 수소문하여 구해올 정도로 큰 관심을 두었다고 한다.

< The garden. 1913(왼쪽). Pario de la casa Sorolla. 1917(오른쪽). 호야킨 소로야. >


점토를 불에 구워 단단하게 만든 타일은 수천년전부터 건축물에 다양하게 사용되어온 소재이다. 고대 이집트에서 청색의 유약을 사용한 타일로 파라오 조세르의 계단식 피라미드를 꾸민 이후 본격적으로 전파된 타일은 이스람권의 호화 사원 건축과 맞물려 부흥하게 되었고, 아프리카에서 건너온 신문물을 받아들이 스페인은 이 기술을 세계적으로 확산시킨 전초기지의 역할을 하였다.

< 안달루시아 타일 사례. 알함브라 궁전의 타일. 1350년경(왼쪽). 필라토스의 집. 1530년경(오른쪽). >


당시 스페인 정원의 대표라 할 수 있는 알함브라나 알카사르의 정원에도 타일과 작은 자갈이 입면 평면에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다.

< 세비야 알카사르 정원의 타일 >


사실 타일은 그 자체의 정교한 무늬들로 인해 인상파 화법으로는 명확하게 표현하기 힘들 수 있다. 그러나 호야킨 소로야가 빛을 반사하는 바다와 알몸의 매끈함을 표현한 방식을 생각하자면, 혹시 그에게 타일 그 자체는 외부에서 빛을 머금고 반사하며 태양의 변화에 따른 경관 변화를 만들수 있는 가장 적극적인 소재가 아닌가 싶다.

Meadow Carpets


우리나라 정원에서 아직은 타일을 찾기는 쉽지 않다.

전통적으로는 유약을 바르기 전 단계인 테라코타 느낌의 도자기 느낌의 장식물들을 주로 사용했는데 비교적 단순한 색상과 형태가 특징적이다. 유약을 발라 구운 기왓장이나 도자 재료들도 건물을 짓는데 도입되었지만, 주로 건물의 지붕이나 외벽의 장식용으로 사용되었다. 전통 정원의 요소인 화계나 굴뚝 등을 장식한 재료는 지금의 타일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소재이다.

< 경복궁 교태전 후원(왼쪽). 경복궁 연휘문 편액(오른쪽). >


현대적 조경에 있어서도 돌과 나무, 벽돌과 같은 보다 일반적이고 내구성 있는 재료들이 우선 사용되어왔다. 최근에 이르러서야 실내외 건축 재료의 확장과 장식적 요소를 강조한 작은 정원들이 유행하면서 타일 사용이 점차 늘고 있다.

조경 재료로서 타일은 확실한 특성을 가지고 있다. 경관적으로 이국적이면서도 비교적 가볍고 얇은 두께로 바닥과 벽을 가리지 않고 사용할 수 있다. 기존의 재료들이 담아낼 수 없는 생생한 색감은 독보적이거니와, 최근에는 석재에 뒤지지 않는 단단한 내구성을 갖추고 있기도 하다.

< 세라믹 타일 종류(왼쪽). UHPC 테라조 타일(오른쪽). >


타일이 돋보이는 정원의 대표작으로는 서울시립대학교 김아연 교수의 연작 ‘carpet’ 를 소개하고자 한다. 아라비안 나이트의 날으는 양탄자에서 모티브를 따와, 사람들이 모이고 이야기하는 우리네 전통 평상의 풍경을 재현한 그의 작품은 작은 공간에이라도 치밀하게 의도된 소재가 어떻게 새로운 경관의 이미지를 만들어낼 수 있는가에 대한 좋은 사례가 되고 있다.

2021년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설치작업인 ‘블랙 메도우(Black Meadow)’ 로부터 시작한 그의 바닥연작은 덕수궁 앞마당의 특별 전시에서는 이국적인 푸른색의 타일을 사용하는것으로 그 재료와 생각의 상상력을 넓히고 있다. 그가 의도한 ’구름 속에 놓은 혹은 꿈속의 정원‘은 ’바닥에 낮게 깔리는 것, 내려다봐야 하는 것, 수평적인 것, 그리고 우리가 하찮게 여겨온 것‘ 인 바닥의 공간을 역시 마찬가지의 속성을 갖는 타일을 가지고 명징하게 재현하고 있다.

< Garden Carpet. 김아연. 2021. >


김아연 교수는 마지막 Meadow 시리즈로 공동주택의 진입 정원에 작품 ’Meadow Carpet’ 을 조성하였다. 특히, 이 작품은 지극히 사적이며 동시에 공적인 공동주택의 진입부에 타일로 꾸민 평상을 만들고 그 하부를 LED 조명으로 둘러 마치 바닥에서 떠 있는 듯한 신비로운 느낌을 더하고 있다.

시골 동네에 들어설때 정자나무 아래 평상에 앉아계시던 할머니께서 기분 좋은 웃음과 함께 맞아주시던 풍경이라고나 할까? 하얗고 파란색의 타일과 자연스럽게 나부끼는 그라스 식물들이 정말 잘 어울리는구나 하는 확신을 준 작품이기도 하다.

< Meadow Carpet. 김아연. 20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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