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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피는 아몬드 나무 1 _ 빈센트 반 고흐

아몬드 나무 _ 자연의 위로와 구원을 갈망한 화가

by Phillip Choi

“나는 자연 속에서 평안을 찾는다. 그리고 그림을 통해 그 감정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다.” _ 빈센트 반 고흐


하지만 동시에..


“그는 자연 속에서 평온을 찾고자 했지만, 그의 영혼은 너무나 불안했다.” _ 요한나 반 고흐-봉거(빈센트의 동생 테오의 아내. 빈센트의 사후 그의 그림과 자료를 관리하고 세상에 알림)

< 빈센트 반 고흐(왼쪽). 요한나 반 고흐-봉거 & 아들 빈센트(오른쪽). >


빈센트 반 고흐는 굳이 인상주의의 사조를 들고 오지 않더라도, 지금까지도 가장 유명하며 가장 사랑받으며 동시에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예술가의 하나이다. 그는 신의 구원을 찾아다니던 젊은 시절부터, 사랑의 구원을 찾아다니던, 미술을 찾아다니던, 교류와 인정을 찾아다니던, 그리고 다시 자연에서의 구원을 찾던 말년까지 정말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았다.

그의 그림 역시, 노동자와 하층민의 어려움을 찾아다니던 젊은 시절에서부터 여러 화가의 그림과 일본풍 판화를 습작하며 자신의 화풍을 찾아가던 시절, 드디어 독보적인 그림체를 찾아내고 비교할 수 없는 그만의 그림을 그린 후기에 이르기까지 격정적인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 감자 먹는 사람들. 빈센트 반 고흐. 1885. >


당연하게도 반 고흐에 대해서 다양한 관점과 그에 따른 많은 이야기들이 넘쳐나지만, 오늘은 자연을 그리는 빈센트를 이야기 하고자 한다.


그는 자연과 식물에 관심이 많았다.

어렸을 때 지내던 목사관의 정원에서 식물을 가꾸고 그림을 그리던 어머니를 기억하고자인지, 평생 그를 괴롭힌 정신병에 대한 구원의 생명력을 갈구하고자 하였는지는 모르겠다. 어찌하든, 그의 그림에는 주인공으로, 주인공의 배경으로, 구도의 소품으로, 어떤 모습으로든 그러나 명징하게 자연과 식물을 볼 수 있다. 특히, 그의 정신과 육체가 쇠잔해진 말기에 이르러는, 반대로 더욱 절정으로 끌어올려진 그의 예술감각이 나무와 꽃을 통해 발현되는 것은 그가 죽을힘을 다해 찾으려 했던 ‘평안’이 투영되는 대상이었음을 확인 할 수 있다. 한편으로는 그는 결국 찾지 못한채 끝났으나 백여년이 지난 이시대의 우리도 아직 작품을 통해 그의 구원을 향한 갈망을 전달받는 것은 안타까운 역설일지 모르겠다.


그렇게 우리가 좋아하고 기억하는 빈센트의 대표작 ‘해바라기’ 사이프러스‘ ’밀밭‘ ’아이리스‘ 그리고 ’아몬드 꽃’ 들이 그려졌다.

< 목사관 정원. 빈센트 반 고흐. 1884(왼쪽). 뉘넨의 목사관. 빈센트 반 고흐. 1885(오른쪽). >


빈센트의 동생 테오는 반 고흐에게 있어서 동생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생전에는 그림을 단 한점밖에 팔지 못했을정도로 인정받지 못하던 빈센트를 평생 후원한 이는 미술상에서 일하던 동생 테오다. 때문에, 1890년 1월 테오가 형에게 편지를 보내서 그 아들 빈센트 빌렘 반 고흐의 탄생을 전했을때 빈센트 반 고흐는 이 소식을 매우 기뻐하며 곧바로 테오에게 선물할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였다.


“ 소식이 전해졌을 때 얼마나 기뻤는지... 요즘 많은 생각을 하고 있는 아버지를 따라 남자아이를 부르는 것을 훨씬 더 선호했어야 했는데, 이제는 그렇게 된 것을 보고 바로 그 아이를 위해 그림을 그려주고, 그들의 침실에 매달아 푸른 하늘에 흰 아몬드 꽃을 피우는 큰 가지를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 _ 빈센트 반 고흐. 어머니에게 쓴 편지.

< 빈센트가 동생 테오에게 쓴 편지들 >


이 작품을 그리기 전, 1888년 봄 화가는 아를에 도착하였다. 새파란 태양빛을 발하는 프랑스 남부의 아를은 화가에게 있서 ‘남쪽의 일본’ 과 같았다. 반 고흐가 푹 빠져있던 일본 목판화의 진한 파랑이 주변의 풍경에 발현되었고, 과수원의 과일 나무들은 짙은 파랑을 배경으로 하얗고 빨간 꽃을 막 피우려 하는 아름다운 시절을 맞이하고 있었다. 이 경관에 사로잡힌 빈센트는 한달만에 꽃 그림 14점을 그리는 엄청난 속도로 봄의 꽃을 향한 사랑을 표현하였다.


“사랑하는 동생아, 난 우리가 지금 자연의 풍요로움과 웅장함을 그려야만 한다고 생각해. 우리에게 필요한 건 격려, 행복, 희망, 그리고 사랑이야” _ 1888년 여동생 빌라민에게 쓴 편지

< 하얀색의 과수원. 빈센트 반 고흐. 1888(왼쪽). 분홍빛 과수원. 빈센트 반 고흐. 1888(오른쪽). >


빈센트는 아를의 초기 작품에서 가장 일본적인 요소들로 이뤄진 모티프를 취했다. 1830년대 일본 호쿠사이의 우끼요에 작품인 “Bullfinch and Weeping Cherry” 에서 영감을 받은 그는, 아를 주변의 봄이 피워내는 아몬드와 복숭아와 살구나무의 꽃을 거침없이 그려냈다.


“아를에서는 그림을 그리려고 할 때 눈앞에 펼쳐진 풍경을 붙잡기만 하면 될 뿐, 굳이 일본 미술을 참조할 필요가 없다” _ 1888년 여동생 빌라민에게 쓴 편지

< Bullfinch and Weeping Cherry. 카추시카 호쿠사이. 1830(왼쪽). 꽃이 핀 자두나무. 빈센트 반 고흐. 1887(오른쪽) >


많은 봄 꽃중에 아몬드 꽃은, 차가운 겨울을 보내고 변화무쌍한 봄날씨의 변덕스러움을 맞이하는 소란함을 잠애우며 가장 먼저 들판을 풍성하게 뒤덮는 꽃이다. 때문에, 1890년 이른 봄, 조카의 탄생 소식을 전해들은 반고흐가, 자신의 이름을 딴 새생명의 탄생을 축하하기에 이보다 더 완벽한 꽃은 없었다.

< 꽃 피는 아몬드 나무. 빈센트 반 고흐. 1890. >

이 그림에서는 쇠라와 시라크의 회화 기법에 심취한 이후 발전적으로 나타나는 반복되는 선형과 점의 테크닉 보다는 마치 일본 판화를 접하고 그 표현에 감동하여 우끼요에를 습작하던 시절의 감성을 드러내는데 집중하고 있는 듯 하다. 어쩌면, 긴 겨울을 이겨내고 움트는 아몬드 꽃을 그리며 조카의 탄생을 축하하는데는 좀 더 순수한 열정의 시간이 자연스래 떠올랐으리라. 그럼에도 여전히 아몬드 나무의 배경이 되는 하늘에는 빈센트가 말하던 아를의 가장 강렬하고 본질적인 파랑을 볼 수 있기도 하다.


한해전 이미 아를의 아몬드에 반하여 일종의 습작을 그려내고 있던 빈센트는, 이렇게 자신의 감정과 기술과 예술의 절정이 되는 그림을 그려내는 것으로, 다시 만날 수 있을까 하는 봄을, 다시 찾을 수 있을까 하는 구원을, 다시 안아볼 수 있을까 하는 엄마 품안의 생명력을, 조카 빈센트에게 고스란이 전하고 있다.

< 꽃이 핀 아몬드 나무(왼쪽). 유리 잔 안의 꽃 피는 아몬드 나뭇가지(오른쪽). 꽃이 핀 아몬드 나무를 그리기 전 습작. 1888. >


“최근에 그린 것은 꽃이 핀 나무인데 잘 그려졌다. 이 그림을 보면 너도 내가 뛰어난 솜씨로 대단한 참을성을 가지고 이 그림을 그렸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림에 나타나는 붓의 움직임은 아주 침착하고 확고한 것이다” _ 빈센트 반 고흐, 아몬드 꽃 그림을 그리고 테오에게 쓴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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