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상화 스캔들에 휩싸인 화가의 인상주의 산책
프랑스 파리에서 시작한 인상주의 화풍은 여러 나라로 퍼지면서 그 영향력을 확장해나갔다. 당대 문화의 중심지인 파리에는 세계의 예술가들이 모이기 시작했고, 처음과는 달리 평단과 대중의 열광적인 호응을 얻어가던 인상주의의 새로움은 여러 화가들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여러 인상주의 화가들과 교류하고 자기 나라로 돌아가 지역성을 담아내는 독특한 화풍을 만들어낸 그룹들을 비롯하여 이른바 ‘지베르니스트’로 불리울정도로 모네의 화풍에 감탄하여 심지어 지베르니에 머물기까지도 한 인상주의의 후예들 뿐 아니라, 인상주의의 영향을 받았지만 화가 자신의 화풍을 잃지 않고 그들과 같은 그룹으로 묶이지 않는 이들까지 다양한 부류의 예술가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인상주의를 전파하곤 하였다.
그 중, 종국적으로, 영국에서 활동하며 때때로 인상주의풍의 순간성을 보여준 화가로 존 싱어 사전트를 들 수 있다.
사실 영국은 픽쳐레스크 정원, 풍경식 정원의 유행으로 이미 사실적인 풍경을 그리는 화가들이 큰 명성을 얻었다. 특히, 윌리엄 터너나 존 컨스터블 등은 세계적으로도 가장 유명한 풍경화가들이다.
정원의 구성 특징으로부터 화풍의 사조까지 이미 인상주의의 뿌리가 싹트고 있던 영국이지만, 막상 영국을 배경으로 활동한 화가는 잘 알려져 있지 않기도 하다. 그 중 존 싱어 사전트는 미국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나 파리에서 그림을 배우고 종국적으로는 영국에서 활발한 작품 활동을 한 화가이다.
사실 서전트는 초상화가로 유명세를 얻었다. 상류층을 대상으로 강렬하고 화려한 인물화를 그리며 승승장구하던 그는, 심혈을 기울인 역작 ‘마담 X’를 그려 확고한 위치를 점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상류층 부인을 시체와 같은 새하얀 피부색과 몸에 달라붙고 한쪽 어깨끈까지 내려가는 긴 드레스를 입힌, 마치 창녀와 같은 느낌으로 표현하였다는 논란에 휩싸이게 되었다. 특히, 그림을 소재로 한 소설까지 출간되며 화가는 파리를 떠나 영국으로 옮길 수 밖에 없었다.
화가로서의 커리어에 큰 회의를 느끼던 시점, 그는 인상주의의 대가인 모네의 지베르니 집을 방문한다. 이미 파리에서 활동하는 동안 많은 인상주의 그림을 보며 큰 인상!!을 받았던 그는 당시에 유행하던 다른 지베르니스트 처럼 모네와의 교류를 통해 ‘즉흥성과 빛의 본질‘을 탐구하며 그의 화풍에 도입하고자 하였다. 그는 모네의 과감한 붓놀림과 화려한 색채의 사용에 감탄하면서도 동시에 자신만의 고전적인 기법도 유지하였다. 그럼에도, 자연과 빛에 대한 관심, 그리고 빛의 변화를 캐치하여 몰입하는 ‘순간성’은 그의 그림에 충분히 드러나있다.
파리를 떠나 영국 런던의 작은 마을 ‘코츠월드‘ 에 정착한 그는, 이후 좀 더 많은 정원과 풍경을 그리기 시작하였다. 물론, 파리에서의 논란에도 불구하고 영국에서도 얼마 지나지 않아 인기있는 초상화가로 자리매김하였으나, 때때로 인상주의 화가들의 터치를 보는 듯한 풍경화들을 그려내었다. 그 중, ‘카네이션, 백합, 백합, 장미‘ 는 해질녘 매직아워의 찰나를 표현한 대표적인 그림이다.
빛의 변화를 쫓는 인상주의 화가들에게 동이 뜰때부터 지는 때까지의 모든 시간은 소중하다. 어떤 화가는 하루의 빛의 변화를 따라 관찰하며 그림을 그리기도 하였다. 그 중에도 하루의 가장 신비한 순간인 블루아워, 혹은 매직아워, 혹은 개와 늑대의 시간 은 화가들이 매력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사전트의 그림은 코츠월드의 작은 정원을 배경으로 한다. 그가 영국으로 옮긴 후, 탬즈강에서 뱃놀이를 하던 중, 나무와 백합들 곳곳에 걸려진 등불을 보고 그림의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아스라이 사라지는 블루아워, 아스라이 사라지는 황혼을 정확하게 표현하고자 그는 모네를 따라 앙 플렝 에르, 야외 작업을 결심하였다. 1885년 가을 석양빛에 그림을 시작한 그는 스펙트럼을 통해 흩어지는 다양한 색감중에 짙푸른 자주색에 사로잡혔고, 해가 넘어가기 전 정확한 그 빛을 발현하는 10여분의 시간을 놓치지 않고 날마다 붓을 들었다. 그 해 가을 다보내고도 끝내지 못한 그림은 다음해 10월에 이르러서야 완성되었는데, 계절을 바꿔가며 피어있기 어려웠던 꽃을 대신하여 인공꽃을 그리고, 구도에 어울리는 금발의 소녀를 그리기 위해 새로운 모델을 섭외하는 열정은, 화가가 인상주의로부터 영향받은 빛의 순간성에 얼마나 탐닉하고 있는지를 알게 한다.
존 싱어 사전트는 그 후로도 여러장의 풍경화를 남기며 인상주의 화풍을 이어갔지만, 이 작품에서 볼 수 있는, 그가 그려온 고전 양식의 스타일과 중국풍 등불에서 보는 오리엔탈리즘과 무엇보다 장소성을 알 수 없게 하는 자주색 빛을 선명하게 잡아내어 한편으로는 보다 현대적 그림을 보는 듯한 오묘한 신비로움은 비교할 수 없는 ‘인상’을 남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