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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네이션, 백합, 백합, 장미 2 _ 존 싱어 사전트

초상화 스캔들에 휩싸인 화가의 인상주의 산책

by Phillip Choi


지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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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 목동들, 나의 플로라가 여길 지나갔는지 말해주렴. 전원을 거느리는 아름다움의 여왕을 말이야. 그녀 머리에 씌워진 화환, 그녀 머리에 씌워져 있네, 카네이션, 백합, 백합, 장미(A wreath around her head, around her head she wore, Carnation, lily, lily, rose)’

사전트의 그림 ’카네이션, 백합, 백합, 장미‘ 의 이름은 당시 유행하던 죠셉 마징기의 대중가요 “Ye Shepherds Tell Me” 에서 시작한다.

< 조셉 마징기의 Ye Shepherds Tell Me 악보 >


여길 지나갔는지 알 수 없는 아름다움의 여왕 플로라의 머리 위에 카네이션, 백합, 장미가 씌워있는 모습이 알아차릴수 없는 짧은 순간동안 우리 눈을 사로 잡는 블루 아워에 카네이션과 백합과 장미 사이에서 등불을 바라보다 사라져버릴듯한 찰나의 신비로움을 내뿜는 두 소녀에게 투영되어 나타난다.


카네이션


카네이션은 익숙하면서도 낯선 꽃이다. 당연하지만 무심한든 부모님과 스승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기에는, 언제부터인가 자리잡은 5월의 카네이션 이상 ‘편리’한 것이 없기도 하였으니, 직접 종이를 접어 만들어보며 그 꽃의 모양과 색깔을 자세히 살핀 몇 안되는 꽃의 하나일것이다. 한편으로는 5월의 그 많은 카네이션이 어디에서 왔을까 싶을 정도로, 우리네 야산과 정원에서는 보기 어려운 꽃이니도 하니, 기실 수없이 나간 봄꽃 나들이에 카네이션이 대상으로 올려진 적은 기억나지 않는다.

< 카네이션은 행사용 절화의 대표적인 꽃이다(왼쪽). 최근에는 분화 카네이션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오른쪽) >


사실 카네이션은 태생적으로 장미, 국화, 튤립과 함께 세계 4대 절화(切花)로 분류된다. 여러해살이 풀로, 특히 최근에는 여러 개량을 거쳐 봄부터 가을까지 오랜시간 동안 꽃을 피우는 것으로 유명하기도 하지만, 줄기와 잎이 꽃을 가리지 않는 형태와 꽃 자체의 화려한 색상과 모양탓에 형태와 자연스래 꽃꽃이용 절화로 높은 인기를 끌고 있다. 양복 가슴주머니에 꽃고 다닌 모양으로 미국 오하이오의 상징꽃이 되었다라들지, 중국에서 결혼식을 장식하는 꽃으로 가장 많이 쓰인다들지 하는 일화들은 꽃꽃이용으로의 카네이션의 위상을 알려준다.


백합 (나리꽃)


백합은 특히 서양에서 옛부터 큰 사랑을 받아온 꽃이다. 세장으로 이뤄진 꽃잎탓에 기독교 성 삼위일체의 상징으로 쓰이고 있으며 카톨릭에서는 성 마리아의 순결을 상징하는 꽃으로 사랑받기도 하였다.

< 성모마리아 수태고지(천사의 손에 백합이 들려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1472~1475. >


이러한 종교적 배경을 힘입어 백합은 수많은 나라와 왕조와 도시와 심지어 기업의 대표적인 심볼이 되기도 한다. 프랑스 왕국의 왕조나 파리를 위시로 한 도시의 문장, 이탈리아의 피렌체, 독일의 비스바덴 등 여러 도시의 문장으로도 사용되고 있다. 심지어 대표적인 영어 이름인 수잔과 릴리 역시 백합(Susanna or Lily)에서 시작되었으니 꽃 하나의 영향력이 대단하다 할것이다.

< 프랑스의 백합 문장(왼쪽). 이탈리아 피렌체의 백합 문장, 플레르 드 리스(오른쪽) >


그런데 사실 따지고 조면 백합은 우리에게도 매우 익숙한 꽃이다. 백합의 우리 이름이 바로 ‘나리’이다. 나리는 수많은 원예용 화초가 속한 꽃의 한 분류인데,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참나리나 말나리 등이 유명하다. 재미있는 것은 사실 우리가 쉽게 보는 개나리 역시 꽃의 모양이 나리와 닮았으나 그 화려함과 크기가 원류에 미치지 못한다 하여 ‘개’나리라고 불린다는 것이다. (당연하게도, 개나리는 나리와 전혀 다른 종류이다.)

< 참나리(왼쪽). 말나리(오른쪽) >


나리는, 우리네 여러 다른 꽃들이 그러하듯이, 옛부터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어 왔다. 여름철 산과 들의 아름다움을 뽐내는 화관으로의 역할은 당연하거니와, 덩어리 구근으로 자라는 뿌리는 약재와 식용으로 사용되곤 하였다(백합이라는 이름 역시 여러 겹으로 겹쳐진 껍질이 있는 구근에서 유래된 이름이다). 아울러, 이른 봄의 새싹은 아직도 밥상에 즐겨 올리우는 나물 반찬의 재료가 되기도 한다.


나리꽃 정원


사실 8월이면 양지 바른 들판 어느곳에 무리로 피어있는 참나리를 보는 것이 어렵지 않은 일이기도 하거니와 한창 무더위기 기승을 부릴때에 꽃을 피우는 종류라 나리꽃을 찾아 따로 보러 간다는것이 조금은 성가신 일이 될지 모르겠다.

하지만 경북 봉화의 산자락에 문을 연 국립백두대간수목원이라면 조금 다른 이야기이다. 이름에서 보듯 백두대간의 고산식물을 주제로 한 수목원이니, 다른 장소들에 비해 시원한 산속에서의 시간을 보낼 수 있을 뿐 아니라, 참나리를 비롯하여 수국, 털부처꽃, 노루오줌과 같은 산등성의 여름을 수놓는 여러 종류의 야생화들이 관람객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한 모양으로 피어있다. 7월말~8월에 거친 매 여름이면 수목원에서는 이러한 여름꽃들을 주제로 다양한 이벤트를 열고 있으니, 시기를 놓지지 않고 한번은 다녀오는것도 좋을 일이다.

< 국립백두대간수목원의 여름꽃 전경 >


더운 여름, 진녹색의 잎들 사이 노랗게, 빨갛게, 주황색으로 올라온 나리 꽃 한 줄기가 ‘아, 여름은 꽃의 계절일것이다. 나리, 나리’ 하는 나지막한 탄성으로 봄꽃의 정령, 플로라의 시기를 불러오기를 바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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