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주의를 기반으로 인상주의와 교류한 화가 그리고 후원자
근대의 유럽을 사로잡은 것은 후추나 차와 같은 먹을거리나 비단과 도자기 같은 고급 상품만은 아니다. 식민지 시대를 거치며 활발하게 융성한 동양과의 무역은 당시 유럽에서 보기 힘든 희귀한 식물들을 옮기는 일에까지 이르게 된다. 사실, 식민지 수탈과 산업혁명등으로 부를 쌓아올린 유럽의 상류층에게 희귀한 식물을 기르고 감상하며 나누는 것은 일종의 ‘유리알 유희’와 같은 고상한 취미의 하나였다. 당시 특히 네덜란드 지방을 중심으로 발생했던 튤립 파동은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유럽의 고대 장미(Old Roses)는 중국에서 수입된 월계화등과 교잡하여 풍성한 크기와 진한 향기를 자랑하는 현대 장미(Modern Roses)로 발전하였고, 넓은 성의 한쪽에 겨울 온실(오랑주리)를 만들고 따뜻한 지방에서 수입한 열대 식물을 키워 감상하는 일(혹은 가정집의 거실이나 식당에 열대식물을 심은 작은 화분 하나 정도라도)은 앞서가는 취향의 상징이기도 하였다.
국화 역시, 동양의 신비로움을 자랑하는 당대의 대표적인 이국식물이다. 사실, 우리에게 국화는 얇고 긴 꽃잎이 여러층을 이루며 부드럽고 풍성한 형태를 만들어내며 그 자체로 충분히 아름다운 모습을 가지고 있지만, 옛부터 국화꽃이 가진 무거운 의미때문에 꽃으로서의 화려함을 충분히 드러내고 있지 못하기도 하다. 그러나 19세기 인상주의 화가들에게는, 특별히 우키요에의 대표작가인 호쿠사이의 국화 그림을 열렬히 추종하던 이들에게는, 꽃 자체의 아름다움을 넘어 일종의 신비로움을 가진 자연으로 이해되며 그려지곤 하였다.
그 중, 구스타프 카유보트는 국화를 그린 대표적인 인물이다.
카유보트는 인상주의 화가의 일원이며 동시에 그들의 후원자였다. 그는 인상파 전시회에 참가하여 여러점의 작품을 출품하기도 하였거니와, 전시회의 자금을 지원하거나 클로드 모네, 오귀스트 르누아르와 같은 인상주의자들의 작품을 구입하기도 하였습니다. 특히, 모네와는 동지이자 후원자이기도 한, 특별한 친분을 유지하였는데, 사실주의자에 가까웠던 카유보트가 모네의 그림에 대한 애정과 존경으로 인상주의 화법을 연구하고 도입하기도 하였으며, 특히 그림의 주제가 되는 다양한 자연의 소재들, 꽃들에 대한 관심을 서로 깊이 나누기도 하였다. 클로드 모네가 ‘지베르니’의 정원을 꾸며 그의 작품 활동의 원천으로 삼았다면, 구스타프 카유보트는 ‘프티 젠빌리에’의 정원을 만들어 자신의 작업을 이어나갔다.
카유보트는 여느 인상파 화가들과는 달리, 상당히 부유한 삶을 살았다. 사업가이자 판사인 아버지덕분에 유복한 젊은 시절을 보낸 그는 변호사와 엔지니어 공부를 하고도 다시 화가 레온 보네 아래서 그림을 배웠다. 파리로 이사한 후에는 본격적으로 예술가들 특히 외광파 그리고 인상주의 화가들과의 교류를 시작하며, 그들의 동료이자 든든한 후원자가 되어갔다.
특히, 선천적 혹은 후천적 부를 통해, 특별한 정원을 가꾸고 다양한 품종의 꽃을 들여왔던 정원가로서 클로드 모네와 구스타프 카유보트는 이전 유럽의 꽃들에게 볼 수 없는 국화의 매력에 빠져 여러 종류의 국화를 키우며 한참이나 그림의 소재로 삼곤 하였다.
오늘 소개하는 카유보트의 아래 그림은 그 중, 하얀색 그리고 노란색 국화를 그린 그림이다. 얇고 넓게 바깥으로 돌아가는 꽃잎을 가진 여타의 꽃과는 다르게 가늘고 긴 꽃잎이 여러겹으로 겹치는 국화는 꽃을 비추는 햇빛을 반사하면서도 동시에 한 꽃송이 안에서 자체의 그림자를 통해 공간의 깊이를 만들어내는 특별한 재주가 있다. 엷은 분홍빛과 주황, 노랑을 오가는 다양한 색상과 꽃이 피기 시작하여 만개하기 까지 단계별로 서로 다른 형태를 보이는 국화의 생김새는 화가가 열광하던 동양의 아름다움과 맞닿아 있다 할 것이다.
사실 이 그림은 클로드 모네가 두번째 부인인 알리스 오슈데와 결혼할 무렵에 카유보트에 그려달라 요청했다고 한다. 카유보트가 국화 꽃 봉우리를 특별히 확대하여 그린듯한 구도에 클로드 모네는 매력을 느꼈고, 이 그림을 걸어두고 여러 비슷한 느낌의 국화를 그려내곤 했다고 한다.
한 여름의 열기가 조금은 꺽이지 싶은 이때, 사실 입추를 지났지만 아직 가을을 기대할만한 선선함이 부족하다 할때, 이번에는 사군자의 그것이 아니고, 추모의 상징으로서 그것이 아니고, 가을 들판을 풍성하게 수놓는, 인상주의자들이 사랑하지 않을 수 없던 꽃으로서의 국화를 기대해보는 것은 어떠할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