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쁘티 젠빌리에의 흰 노란 국화 2 _ 구스타프 카유보트

사실주의를 기반으로 인상주의와 교류한 화가 그리고 후원자

by Phillip Choi

지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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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화꽃 이야기 ]


국화는 동양의 꽃이다.

중국 진나라 이전부터 재배되기 시작한 동양의 가 장 오래된 관상용 꽃으로 불린다. 당나라 때에 들어서는 이전의 노란색 뿐 아니라 흰색, 보라색 등의 새로운 종자가 개량되었으며, 송나라와 이후 명나라거치며 300여종에 가까운 종류를 자랑하게 되는 국화 전성기를 맞이하였다.

우리나라에서도 국화는 오래전부터 재배되었다. 특히, 늦은 가을 갑작스래 찾아온 서리를 이겨내고 피어나는 모습에 역경 속에서도 끗끗이 절개를 지키는 군자의 기상을 상징하는 꽃으로 여겨졌고, 시절이 바뀌어도 절개를 지키며 은둔하는 고결한 선비의 삶을 대표하는 꽃으로 사군자, 곧 매난국죽에 포함되기도 하였다.

< 사군자도. 조희룡. 19세기 중반 >


한편으로는 이러한 국화의 도도한 역사적 배경은 우리에게는 사뭇 낯선면이 있다. 근현대 이후, 동아시아 지방 전역에 걸쳐 장례식 때 흰 국화를 바치는 관례가 생겼고, 지금까지도 국화의 가장 보편적인 이미지 역시 이에 가까운 것으로 형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다른 여느전통과 마찬가지로 이러한 변화 역시 서양의 문화를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유래되었는데, 서양의 장례식에서 흰 장미를 헌화하던 관습에서 비롯된 것이라 한다. 당시, 동양에서는 하얀색 장미를 구하기 어려웠을테니, 대신하여 하얀 국화를 바치기 시작한것이다. 우리나라 역시, 개화기 이후 기독교 문화권내에서 장례 예식 등이 간소화 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구하기 쉬운 흰 꽃, 국화를 사용했다고 하니, 관상용으로 가까이 두고 기르며 그 자태를 감상하던 고대 중국의 문인들이나 국화의 절개를 칭찬하지 마지 않던 우리네 선현들을 생각하자면 예상치 못한 놀랄만한 변화가 아닐 수 없을것이다.

< 프란치스코 교황의 무덤. 흰 장미 한송이가 놓여있다. >

국화는 가을을 대표하는 꽃이다. 오상고절(傲霜孤節, 서릿발이 심한 속에서도 굴하지 아니하고 외로이 지키는 절개)이라 불리우던 역사적 배경을 가져오지 않더라도, 가을이면 지천에 피어나는 국화를 지나치기 어려울 정도로 친숙한 꽃이기도 하다. 더욱이, 온실 재배와 일장 관리 기술을 통해 국화의 개화시기를 조절하기 시작하면서 근래에는 사계절 내내 피어있는 국화를 보기 어렵지 않다.

< 오상고절. 심사정. 1762년경 >


전통 국화라 할 수 있는 대국과 소국 또는 현애국 뿐 아니라, 정원용으로 개량된 국화과 식물들을 끌어오자면 예상을 뛰어넘을 정도로 다양한 종류의 ‘국화’ 꽃을 우리 곁에 두고 있기도 하다. 과꽃, 보통 아스터라 불리며 이른 여름부터 꽃을 피우는 다양한 색감의 작은 국화, 여름이면 하천변과 야생들판을 샛노랗게 뒤덮는 닭 벼슬을 닮은 노란 금계국, 하얀꽃잎의 중심에 노란꽃이 올라와 순수한 사랑을 상징하곤 하는 데이지, 그리고 옛부터 우리 산야를 차지하고 있던 벌개미취까지 모두 국화의 한 종류이다.

사실, 해바라기나 돼지풀같은 해바라기류, 코스모스나 에키네시아 같은 데이지 무리 심지어 쑥과 민들레 그리고 가우라까지도 모두 국화과의 대표적인 꽃이니 이제 늦은 가을 서리맞은 국화의 도도함을 기다릴것이 없는 다양한 국화의 매력을 사시사철 느낄 수 있을터이다. 알고보면, 국화과는 세계 최대 식물군의 하나로 쌍떡잎식물의 10% 이상을 차지한다고 하니, 선조들의 국화를 사랑하는 마음이 어떻게 꽃의 종류를 늘려왔고, 서양에서 받아들인 국화를 어떠하게 개량 발전 시켜왔는지가 눈에 보이는듯하다.

< 국화의 종류 >


[ 국화 감상하기 ]


국화를 따로 보러 가자는것도 딱히 내킬만한 일을 아닐지 모르겠다. 워낙에야 흔한 꽃이기도 하거니와, 반대로 시인 서정주가 노래하였듯이, 옛 선현들이 읊었듯이 국화는 유아독존 한 송이 피어올리운 모습이 그 본질의 매력이겠다 싶으니, 요즘 쉽게 ’축제‘ 의 이름을 붙여 수천 수만본의 꽃들을 모아놓은 동네를 찾아가자는 것도 남사스러운 일이 아닌가?

< 국화도. 정조. 18세기(왼쪽) 자국괴석. 심사정. 18세기 중반(오른쪽) >


한편으로는 이른봄, 채 겨울의 눈발이 녹아내리지 않은 깊은산 속을 따라 들어가 개울가에 핀 작고 뽕듯한 매화를 보는것이 탐매라 불리우며 문인들의 찬사를 받는 한량의 속리(俗離)의 하나였다면, 이른 가을 이제 막 시작하는 국화의 모습을 좇아 빠르게 변해가는 시절을 배경으로 옛 사람들이 노래하던 절개의 근원을 찾아 그 변하지 않는 아름다움을 함게 두고 오래 보려하는 심미적인 욕구를 따르는 것을 무엇이라 나무랄까 싶기도 하다. 반드시, 오상고절의 그 국화가 아니라도 말이다.

< 서리 맞은 국화 >


한여름을 지나면서 나만을 따라오는듯 불볕 더위에 한풀 지켜갈만 할때면 국화 중에서도 아무래도 벌개미취가 제격이다. 옛부터 산천에 자라오던 우리 꽃이기도 하거니와 특히 고도가 높은 산중에 잘 자라는 꽃이니 처서(處暑)를 기대하며 감상할만한 국화이기도 하겠다.

평창에 있는 한국자생식물원은 늦여름 벌개미취를 보기에 좋은곳이다. 겹겹히 쌓인 산의 계곡을 타고 내려오는 이른 가을 바람도 시원하거니와 에델바이스로 유명한 산솜다리나 무궁화 같은 우리 자생종 꽃들을 감상할 수 있으니, 어쩌면 좀 더 옛스러운 모습의 국화를 보는것과 다를바 없기도 하다. 어쩌면 그 시절 카유보트 같은 인상주의 화가들의 높은 심미안도 충분히 사로잡았을것이다.

< 벌개미취 군락. 한국자생식물원 >


좀 더 서울에 가깝게는 고양에서 매년 개최되는 가을꽃축제가 있다. 주로 절화로서 이용되는 국화가 많다보니 수많은 인파와 함께 너무 인위적이지 않을까 싶기도 하지만, 도심 가까이에서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셀 수 없이 많은 종류의 국화를 하나씩 알아보는것도 충분히 좋을만할 나들이 일것이다. 특히, 정원이나 화분의 국화 뿐 아니라, 국화로 꾸미고 만든 커다란 규모의 조형물들을 보고 있자면, 일종의 기이한 신기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 고양 가을꽃 축제 >


무엇이 되었든간데, 8월의 더 위가 언제 사그라들까 지긋지긋한 탄식 한마디를 내뱉고 가는 길 멈추기를 반복할때쯤, 우리 눈을 사로 잡는 국화의 녹진함은 그 본질적인 성숙함에서 발현되는, 이제 곧 다가올 가을 시절의 매력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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