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브시엔, 꽃이 핀 과수원 2 _ 카미유 피사로

농장과 농부를 그리는 따뜻한 인상주의자

by Phillip Choi


지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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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農業)


문화 culture의 뿌리는 경작 agriculture이다.

초기 인간이 자연의 산실을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취하여 먹고 입고 사용하는 때를 지나, 자연의 목적물을 의도된 형태로 가공하며 변화시키는 작업을 문화라 할 수 있다. 자연의 거친 땅을 고르고 일구어 농경지를 만들고(cultura) 돌을 깨어 만든 도구로 씨를 뿌리고 가꾸어 자연의 곡식을 인위적!으로 생산해 낸 일이 그 대표적인 시작일 것이다. 이전의 채집과 수렵 생활보다 높은 생산성과 안정된 먹을거리를 제공하는 농경은 사람을 한 곳에 정착하게 하였다. 이 과정에서의 개인의 경험과 우연한 발견들이 집단의 행태로 반복되어 공유되고 다듬어지며 공동체를 유지하는 질서로 체계화되어, 종국적으로는 인간 공동체의 문화(culture)로 발전하게 되었을 것이다.

경작(agri-culture)으로 인한 자원의 풍요를 통해 생존의 단계를 벗어난 인간 집단은, 이제 자신의 존재 이유와 가치를 보다 높은 차원으로 표현하고자 하였고, 눈에 보이지 않은 정신적 가치(art)를 담는 그릇으로서 문화(culture)는 발전하였다.

< 짐승을 사냥하는 그림. 프랑스 라스코 동굴벽화. 기원전 15,000년경 / 소를 이용해 밭을 경작하는 그림. 이집트 무덤 벽화. 기원전 1200년경 >


농경은 필연적으로 기후의 변화와 밀접한 관계가 관계가 있다. 특히, 작물의 성공적인 수확을 위해서는 강수량이 결정적인 요소로 작용하는데, 농경문화를 가르는 대표적인 주식용 곡식인 밀과 벼 또한 그러하다. 일반적으로 밀은 벼보다 강수량의 필요도가 낮다. 보통 연간 강수량이 1000ml 이상이면 벼를, 그 이하면 밀을 재배한다고 한다. 유라시아 대륙의 동서를 기점으로, 계절풍에 따른 몬순 기후의 영향을 따라 서쪽인 아시아는 벼를 동쪽인 유럽에는 밀을 주식으로 경작하였다.

유럽을 배경으로 하는 피사로의 그림이나 바르비종파를 대표하는 밀레의 그림이 밀 농사를 주로 그리는 것은 필연적이다. (물론, 밀레를 추앙한 반 고흐의 밀 그림도 그냥 지나칠 수는 없다!)

< 한낮의 휴식. 장 프랑수와 밀레. 1866(왼쪽) / 정오의 휴식. 빈세트 반 고흐. 1890(오른쪽) >


< 전 세계 밀(녹색)과 벼(적색)의 재배지 분포도 >


강 주변의 평야에서 생산된 쌀을 주식으로 하는 동양에서 농경문화는 특히 존중되었다. 많은 강수량을 효과적으로 관리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물을 다스리는 치수의 능력이 요구되었고, 넓은 강이나 저수지를 만들고 사용하는 것은 집단의 지성과 힘을 필요로 하였기 때문에 자연스레 마을과 집단의식이 강하다. 지금이야 농기계를 빌려 씨를 뿌리고 수확을 하는 것이 당연하겠지만, 모내기를 하거나 추수를 하며 이웃끼리 품앗이! 를 하며 집단의식을 나누는 일은 비교적 최근까지의 농촌의 대표적인 풍경이기도 하다.

< 물떼기 & 논갈기. 벼 재배의 2번째 단계. 중국. 13세기 중반. >
< 서선농가사시경직실경화첩의 모내기 풍경. 일재 김윤보. 19~20세기 / 타작도. 단원 김홍도. 18세기 후반 >


때문에 이러한 농업이 만들어내는 문화는 작게는 마을 공동체의 안녕을 기원하는 필수재로 작용하기도 하였고 나라 전체의 문화를 만들어내는 축제의 장이 되기도 하였다. 사실, 우리네 선현들의 일상의 기준이 된 24 절기만 하더라도 계절에 따른 기후의 변화를 정리함으로써 무엇보다 적기에 효과적으로 농사일을 할 수 있도록 참고하기 위함이었다. 각 절기를 따라 한데 모여 농사일을 함께 해오던 우리 조상들이, 또한 얼마나 흥이 넘치는 민족인가?, 때와 시에 맞는 놀이거리를 찾아 시간을 보내며 풍년을 기원하거나 수확의 기쁨을 함께 나누는 것은 또한 얼마나 자연!! 스러운 일인가.

그야말로 자연스러운 경작 agriculture의 문화 culture 화라 할 것이다.

< 단오날 씨름, 대쾌도. 유숙. 19세기 중반 / 한가위 강강술래 놀이. 진도 강강술래. 20세기 초 >


[ 도시농업 ]


근대에 이른 산업혁명은 분명 기술적인 면에서의 많은 발전을 이루었다. 말하자면, 우리가 보는 이 글도 불과 몇십 년 전에는 생각할 수 없었던 ‘인터넷’을 통해 공유되고 있지 않은가! 기술의 급속한 발전은 한편으로는 이를 뒷받침하는 인간 지성의 엄청난 상향 평준화를 의미하였고, 한편으로는 발전된 기술과 접목된 집단의 문화와 예술 또한 ‘본질적으로도’ 엄청난 진보를 지속해 가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문화와 예술의 표현을 담아내는 그릇으로서 기술의 발전이 필연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음이 사실이기도 하지만, 따지고 보면, 예술의 면에서 전과 무엇이 크게 다를까 싶기도 있다. 문명의 발전 끝에 ‘모든 것을 다 이루었도다’ 고백하는 인류의 마지막 놀이는 결국 공허한 지적 유희, 유리알에 이르지 않았던가?

< 첨단 기술을 활용한 예술 사례. 기술로 담아내는 내용은 옛 사람 반 고흐와 신윤복이다. >


한편으로 반가운 것은 이러한 발전을 돌아보고 깊이 생각해보고자 하는 노력들이 동시에 인간 문명의 본류와 원형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자연스럽게! 자연과 정원에 대한 집단적인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기술의 발전으로 도시 문명이 먼저 형성된 곳에서 건물과 인프라의 고도화를 계속 추구하지 않고 오히려 공공의 회복을 위한 도구로서 공원과 정원을 적극적으로 도입하고자 하는 노력이 시작되었다는 것은 이러한 인간 노력의 대표적인 사례라 할 것이다.

(세계 최초의 공원인 버켄해드 파크는 무역과 공업으로 유명한 리버풀에 조성되었다.)

< 버켄해드 중공업. 19세기 중반(왼쪽) / 버컨해드 공원 풍경. 19세기 후반(오른쪽) >


특히, 최근에 이르러는 경작 agriculture의 원형적인 질감을 그대로 드러내는 시도들이 도심에서 적극적으로 도입되고 있기도 하다. 정원의 시작이 워낙 우리 집 울타리 안에서 먹을 것을 기르던 것에서 시작되었다 할 때의 ‘경작’을 재현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도시에 비치는 정원 자체의 과학적 효과 또한 논의되고 있다.

빌딩과 구조물 사이의 입체적 녹지를 조성하는 것인 도심 미기후와 에너지를 관리하는데 어떠한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인가에 대한 정량적인 데이터는 이미 일반화되어 있다. 지상의 집이 수십 층높이로 올라갔으니, 집 앞마당으로서 정원 역시 수백 미터 높이에까지 건강하게! 조성되고 있으며, 도심의 열을 낮추거나 자연 생태계의 연결점으로서 의미 있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기도 하다. 녹색 자연의 심미적 효과뿐 아니라 정원 활동의 정서적 / 치유적 효과 또한 과학적으로 실증되고 있으니, 이미 영미권에서는 신체적 심리적 증상의 치료법으로 정원치료가 처방되고 있기도 하다.

동시에 문화 예술의 영역에서 자연과 정원의 역할 역시 확대되고 있다. 사실 따지고 보면, 변하는 계절의 모습을 오롯이 담아내는 도구로서 정원은, 변치 않는 목적물을 만들어내는 예술이 탐낼만한 생동감 있는 미지의 영역이라 할지도 모르겠다. 기후 변화나 자연환경에 대한 세계적인 관심과 더불어, 친환경적인 예술 주제를 대상으로 하는 작가들의 범주를 넘어, 이제 자연은 심미성을 더하는 도구로서도 적극적으로 활용되고 있다.

< Tree Mountain. 아그네스 데네스. 1992~96(왼쪽) / Artefact, Bois de Belle Rivière. Edith Meusnier. 2010(오른쪽)>


또 한편으로는 도시 농업에 대한 관심이다. 문화 culture의 경작 agriculture 로의 회귀라고 할까? 농사 지을 땅조차 없이 도시화되는 자연에 대한 경각심으로 시작되었을만한 도시농업은 이제 각 도시의 녹시율을 높이고 자연화를 추구하면서도 동시에 건강한 먹거리를 얻을 수 있는 다기능의 문화적 요소로 작용하기 시작하였다. 인간의 본질로 돌아가고자 하는 노력들이 노동을 보다 중요시하는 것은 어쩌면 이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한편으로는 동시에 예술을 등한시 여긴다고 하면, 사실 서로의 다른 모습일 뿐인 노동과 문화를 애써 구분하고자 하는 무지의 산물일지도 모르겠다.

건물 옥상에 여러 개의 화분을 갖다 놓고 고추며 상추를 기르던 어머니의 작은 텃밭에서부터 옥상 녹화를 유도하는 지자체의 당근책까지 더해지며, 양봉과 수직농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방식으로 발전하고 있다. 최근 태국의 대학 캠퍼스 건물을 조성하며 옥상 조경에 벼농사를 위한 공간까지 계획함 과감성은 또한 앞으로의 도시 농업에 대한 기대를 품게 하기도 한다.

< 태국 탐마삿 대학교의 옥상 정원. 실제 벼농사를 지을 수 있도록 계획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