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장과 농부를 그리는 따뜻한 인상주의자
카미유 피사로는 농장 풍경을 자주 그린 인상주의자이다.
첫 인상주의 전시회였던 1874년, 그는 작품 ’루브시엔, 꽃이 만발한 과수원‘을 선보이며 인상주의자들의 시작부터 함께하였다. 그가 그림을 배우기 시작했던 바르비종파의 영향으로 시골 농장 풍경을 옮긴 이 그림은 흰꽃이 핀 과일나무 사이로 농부들이 씨를 뿌리는 풍경을 담담한 화풍으로 옮겨내고 있다. 자연경관이 돋보이는 정원이 아니라, 일하는 정원의 모습을 그려서일까? 당시 ‘흔하지 않게’ 인상주의에 대해 긍정적이고 통찰력 있는 평을 내렸던 평론가 쥘 앙투앙 카스타그나리는 이 그림을 ‘시장 판매용 정원을 좋아하는 개탄스러운 취향’ 이라 비판하여 눈길을 끌기도 하였다. 물론, 카스타그나리의 비평은 피사로가 사실은 ‘기업형 농장 정원’을 많이 그리지 않았다는 점에서, 그리고 경제적 활동의 대상이 되는 여부를 두고 그림의 주제를 가치 평가한다는 점에서 오히려 ‘비판’받기도 한다.
어찌 되었든, 피사로가 농장 그리고 과수원을 많이 그린 것은 사실이다.
이런 그림은, 물론 그의 작품 초기 그림 선생이었던 바르비종파 ‘카미유 코로’ 의 영향이기도 하겠거니와 또한 그가 파리 북서부의 ‘퐁투아즈’나 말년의 ‘에라니’와 같은 작은 농촌마을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 탓일 터이다. 사실주의적 화풍으로 시작했던 그는 모네와 세잔과 교류하며 인상주의에 대한 감각을 나누며 첫 인상주의 전시회에 참여할만큼 빛에 따른 자연의 변화에 진심이었고, 피사로만의 독특한 주제 곧, 농장과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주로 그려내곤 하였다.
다른 인상주의 화가의 그림에 등장하는 대상화된 자연이 계절과 시간의 흐름에 수동적으로 따라오는 빛의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하면, 피사로는 땅을 준비하고 경작하며 씨를 뿌리고 잎을 틔우고 열매를 수확하는 과정을 통해 대상화된 경관 자체의 변화를 만들어내는 보다 능동적인 흐름을 알아보는 감각을 가졌을지 모르겠다.
사실, 다양한 분야의 인간 역사는 사실 서로 상관없는듯하지만 또 스스로 알아채지 못한 가운데에서 서로 얽혀있기도 하다. 인상주의의 앙 플렝 에르를 가능하게 한 것이 당시 화학기술의 발전에 따른 튜브형 물감 발명으로부터 촉진되었다는 점이나 산업혁명과 급격한 도시화로 발전한 석탄과 물자를 나르던 기차의 교통수단이 대도시로부터 교외로의 나들이를 가능하게 하여 서로 다른 자연 환경을 찾아 빛의 변화를 좇아 다니게 하는 시발점이 되었다는 것이 그러하다. 당시 기차의 발전은 공업용 물자뿐 아니라 지역에서 생산된 농산물을 파리와 같은 대도시로 쉽게 모이게 하였고, 덕분에 파리를 넘어 영국까지 수출하는 길을 열었다. 당시 유핸하던 정물화의 하나인 ‘니스 발송품’은 1870년대 ‘파리 - 니스’간 기차가 시작된 이후로 시작된 ‘다음날 파리로 배송되는 꽃바구니’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이러한 시대적인 배경을 기반으로, 농작물이나 꽃과 같은 ‘오래된’ 소재는 ‘새로운’ 미술의 소재가 되기도 하였다.
따지고 보면, 유럽의 넓은 들판의 풍경을 가까이에서 보자면, 대부분은 동물을 키우는 초원이거나 작물을 치우는 농장일 것이다. 특히, 소도시나 마을 가까이에 있는 평원 같은 경우에는 개인적인 혹은 공공의 채소밭일 가능성이 높다. 마을을 배경으로 하는 작은 채소밭으로부터 시작하여 먼 곳의 야생 들판과 숲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경관은 인상주의 화가의 단골 소재이기도 하다.
농장을 그린 그림은 필연적으로 노동의 현장을 그리는 일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흔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당시 급격한 도시화에 따른 노동자들의 모습을 진솔하게 그렸다들지 도시 내 시장에서의 활기 넘치는 경제 활동의 모습을 그린 작품들이 있고, 밀레로 대표되는 바르비종파 화가들이 농부의 노동을 화폭에 옮기는 일이 있었지만, 자연경관을 대상으로 하는 작품은 보다 자연! 스러운 혹은 적어도 심미적인(not 노동적인) 공원 경관을 담아내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특히, 인상주의 그림의 핵심 요소를 생각하자면 더욱 그러하다. (이런 점에서 카스타그나리의 비평은 일견 타당하게 들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자연과 인간, 그리고 이에 비추는 빛에 따른 경관의 변화를 담아내는 일에 공원에서 여가를 즐기는 대중이나 정원에서 시간을 보내는 가족이나, 그리고 농장에서 땀 흘려 일하는 일꾼의 모습이나 다를 바 없는 같은 무게를 갖는 일일 것이다. 무엇보다 본질적인 정원의 원형이 집 앞 뜰에서 먹을 것을 기르는 형태에서 시작되었음을 볼 때, 당시에 그리고 현세에 작은 채소밭을 그리는 것은 어쩌면 좀 더 원형적인 인간과 자연의 통합을 찾고자 하는 일일 것이다.
카미유 피사로는 모네와 함께 인상주의의 창시자라고 불리기도 한다. 실제로 그는 파리에서 그림을 배우며 모네 그리고 세잔과 교류를 나누었으며, 보불전쟁을 피해 런던으로 이주한 1850년대 말 모네를 다시 만나 빛에 대한 감각을 배우고 완성하였다. 한편 그가 런던에 머무는 동안 파리 출신의 화상인 ‘폴 뒤랑 뤼엘’ 을 만나게 되는데, 우리가 익히 아는 바와 같이 ‘뒤랑 뤼엘’은 그 후 모네를 비롯한 인상주의 화가들의 열렬한 후원자가 된다. 그리고 프랑스로 돌아와 퐁투아즈에서 거하던 1874년 그는 동료 화가들과 인상파 전시회를 결성하였고 이후 8개의 전시를 거치는 동안 인상파전의 중심인물로 활동하였다. 폴 세잔과 폴 고갱을 비롯한 후기 인상주의 화가들에게는 인상주의 스승으로까지 칭송받은 인물이었으니, 그 실체에 비해 잘 알려지지는 않은, 인상주의의 대부라고 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인물이다.
화가로서의 그는 또한 여러 화가들과 교류하며 배우며 자신의 화풍을 변화하며 완성해 나간 것으로도 유명하다. 초기에는 스승 카미유 코로로부터 사실주의적 풍경화 기법을 배웠고 스위스 아카데미에서는 모네와 폴 세잔을 만나 서로 영향을 나누기도 하였다. 그의 그림이 무르익어갈 무렵, 그는 조르주 쇠라와 폴 시냐크를 만났고 점묘법에 큰 감명을 받아 자기의 화풍에 급진적으로 도입하기도 한다. 다양한 색의 작은 점을 지독하게 찍어내는 점묘법 화풍 덕분에 피사로는 시력을 잃어가는 어려움이 있었지만, 그의 후기 작품에 나타나는, 확실한 점묘법이지만 동시에 조르주 쇠라와는 확연히 다른!, 보다 인상주의에 가까운 새로운 시도는 상당히 매력적이다.
꽃 피는 나무, 그래서 필연적으로 과수원의 풍경은 인상주의 화가들이 좋아하는 대표적인 대상의 하나이다. 인간의 손길을 따라 조성된 과수원이, 사실은 미적인 경험을 위한 경관형 정원이 아닌 순수한 실용적 정원임에도 불구하고, 줄과 열을 맞춰 들판을 빽빽하게 채운 나무들의 계절에 다른 변화는, 그냥 바라보며 감상하기에도 충분히 즐거운 풍경이 된다. 특히, 우리가 이미 이야기한 아몬드 꽃이라든지 매화, 복숭아, 올리브와 레몬나무 등의 꽃은 이른 봄부터 여름을 맞이하는 시절까지의 꽃잎 날리는 야생 경관을 만들어내는 주요 소재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과수원의 인상주의적 경관을 넘어 그 안팎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까지 관심을 두는 카미유 피사로의 따뜻한 눈길에, 나는 오늘도 농장의 인상이 주는 유혹에 기꺼이 현혹당하고 있다.
“자연을 그리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라. 현혹당할 수도 있다는 위험을 무릅쓰고서라도 대담해져야 한다.”
_ 카미유 피사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