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순수한 인상주의자
‘나는 그림을 그릴 때 항상 하늘부터 그리기 시작한다’ _ 알프레드 시슬레
시시각각 변하는 빛의 움직임을 잡아내려 애쓰는 인상주의자들에게 그 빛의 원천인 하늘은 단순한 그림의 배경에 그치지 않는다. 하늘은 빛과 공기의 변화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주인공으로 역할하며 인상주의자들의 붓끝을 매혹시키곤 하였다. 클로드 모네의 ‘인상, 일출’에서 기존 화풍의 ‘형태’ 그림을 대신하여 ‘인상’을 각인시키는 것은, 거친 붓터치로 주황색 태양과 푸른빛의 대비를 표현해 낸 ‘하늘’로부터 시작한다. 태양이 사라진 밤하늘에 빛나는 작은 별빛들이 빈센트 반 고흐의 붓을 빌려 생명의 에너지가 소용돌이치는 역동적인 효과로 확장되며 화가의 감정을 오롯이 담아내는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알프레드 시슬레는 ‘가장 순수한 인상주의자(by 카미유 피사로)‘로 불리운 화가다.
프랑스에서 태어난 영국인인 그는 무역업을 하여 부유했던 아버지의 뜻을 따라 런던으로 비즈니스 유학을 갔지만, 정작 당대 영국의 풍경화가인 존 컨스터블과 윌리엄 터너의 그림을 보는데 심취했다. 결국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그는 화가의 길을 선택하기로 하고 1862년 ‘샤를 글레르’의 아틀리에로 들어간다. 그는 그곳에서 클로드 모네, 오귀스트 르누아르, 프레데릭 바지유와의 운명적인 만남을 시작한다.
전통적인 화실 교육에 따분함을 느껴 외광작업(en plein air)을 시작했던 이들은 오랜 시간 동안 서로 어울리며 인상주의 시스템을 고안하기 시작한다. 마침내 1874년 이들은 사진가 나다르의 작업실을 빌려 첫 인상주의 전시전인 ‘화가, 조각가, 판화등의 익명 협회‘ 를 개최하게 된다.
시슬레는 인상주의 화가 중에서도 빛의 움직임을 반사하는 자연경관을 그린 ‘풍경화’에 가장 충실했다. 유학시절 접했던 영국 풍경화가들의 영향임은 분명하겠거니와, 또한 섬세하고 온화한 화가의 성격을 그대로 드러내며 서정적이고 목가적인 화풍을 추구하기도 하였을 것이다. 어찌 보면, 유복한 배경에서 그림을 시작하여 사랑이나 심리적 변화, 평단의 비난 등과 같은 드라마틱한 이벤트를 피해 간 화가의 인생과도 닮아 있기도 하다. 때문에, ‘가장 순수한 인상주의자’라들지 ‘풍경의 시인’, 그리고 이러한 이유로 동시대의 위대한 화가들 사이에서 가장 부당하게 잊힌 존재‘라고 불리기도 하였다.
시슬레의 풍경에는 하늘이 많은 지분을 차지하고 있다. 영국 풍경화의 전통을 따라 도로나 다리, 건물등 공간의 원근법과 주조적 형태가 명화학게 표현된 배경으로는 그림의 전체적인 바이브를 결정하는 하늘이 자리하고 있다. 시슬레의 하늘은 화폭의 절반 이상을 차지할 만큼 비중이 높은 경우가 많았으며, 빛을 품거나 반사하는 공기의 질감과 색감을 생동감 있게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시슬레는 하늘을 담는 그릇으로, 하늘로부터 내려온 눈의 풍경을 자주 담곤 하였다. 사실 눈 자체는 인상주의 화가들에게 있어 매력적인 자연 소재이다. 흔히 ‘하얗다’라고 당연하게 평가받는 ‘눈‘이겠지만, 사실은 빛을 가장 정직하고 역동적으로 반사하는 물질로서 시시각각 변하는 색감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그림에서 눈은 푸른색, 보라색, 분홍색 등 다양한 색감으로 표현되며 차가운 겨울 공기의 질감과 무게감을 자랑하고 있다.
클로드 모네의 설경 그림의 그림자를 보라. 밋밋한 검은색을 넘어 ‘눈’이 발현하는 푸른색과 보라색을 당당히 표현함으로써 인상주의 화풍의 시작을 알리고 있다.
1870년 프랑스-프로이센 전쟁의 여파로 시슬레의 가세는 급격하게 기울었고, 화가는 파리 주변의 작은 동네를 전전하는 경제적 어려움에 처하게 되었다. 그가 처음 머물렀던 곳은 근교의 루브시엔인데, 서정적인 풍경 가운데 빛의 극적인 연출을 관찰하기에 적격이라 여러 인상파 화가들의 그림에 등장하기도 한 동네이다. 유독 한파와 폭설이 잦은 그 무렵이라 동네는 눈에 파묻히기 일상이었고, 화가는 이 풍경을 따뜻하고 서정적인 붓길로 옮겼다.
루브시엔에 머물렀던 4년 동안, 시슬레는 눈이 오는 풍경을 여러 번 그려내며 연작으로 묶어냈다. 대부분 그림의 가운데에는 마을 길을 두어 우리의 시선을 집중시켰고, 나무나 담장에 쌓인 눈과 같은 소박한 일상의 모습으로 장식하였다. 그러나 무엇보다 시선을 잡는 것은 여러 장으로 그려낸 비슷한 풍경 속의 ‘눈’의 모습이 어느 하나 같은 색감과 질감을 가지지 않는 다양한 반사체로 그려졌다는 것이다. 차가운 공기와 하늘을 반사하는 눈의 표면은, 그날그날의 날씨와 기운에 따라 푸른색과 보라색을 오가는 다양한 색상의 레이어를 담아내고 있다. 때문에, 루브시엔의 눈을 그린 그의 연작을 보고 있자면, 길가의 눈을 하얀색과 검은색으로밖에 구분하지 못하는 우리의 막돼먹은 눈을 원망하면서, ‘색깔’을 논할 수 없겠다 싶은 ‘눈’에서 더욱 깊이 있고 풍부한 색감을 찾아내는 인상주의자들의 독특한 ‘시선’을 시기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