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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의 화가 가족 2 _ 클로드 모네

야생화 _ 자연을 사랑한 인상주의의 대가

by Phillip Cho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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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들판의 전령 _ 야생화


클로드 모네는 정원을 사랑하고 자연을 그렸다.

사람의 손길이 깃든 경작지와 정원의 모습을 담기도 하였지만, 차가운 겨울 바람이 지나고 새 움이 트는 봄이 반짝이는 생동감있는 자연의 모습을 쉬지 않고 그려왔다.

< 지베르니 봄의 효과. 클로드 모네. 1890. >


모네의 눈에 담긴 자연의 봄은 야생화가 피어있다.

가을의 화려한 색감을 잃은 무채색 겨울 들판 아래에 움틀거리는 생명력을 은밀하게 감추고 견디어왔던 야생화는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꽃을 피우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신록(新綠)과 따스한 색감으로 사방을 뒤덮는다. 산들거리는 바람에 따라 이리 저리 움직이며 빛을 담아내기도 빛을 받아치기도 하여 예상치 못한 찰나의 경관들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무엇보다, 봄의 야생화는 따뜻하고 부드럽고 생동감넘치며 아기자기하게, 그 스스로 봄이다.


정원의 유행과 함께 야생화와 같은 꽃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작고 수줍은 생명력을 뽐내는 우리네 야생화로부터 아름다운 잎과 꽃을 보기 위해 도입된 외래종까지, 다양한 종류의 꽃은 구분 없이 사랑받는다.

클로드 모네의 봄 그림에는 프랑스의 들판에서 자주 볼 수 있는 꽃양귀비, 유채꽃, 라벤더, 미나리아재비, 서양벌노랑이 등이 등장한다.



< 지베르니의 양귀비 꽃이 핀 들판 >
< 지베르니의 양귀비 들판. 클로드 모네. 1890. >

양귀비꽃은 하늘하늘하는 질감과 투명하고 강렬한 빨강으로 시선을 사로잡는다.

나라를 망하게할만큼 엄청난 미모를 가졌다는 당나라 양귀비의 아름다운 자태가 절로 그려진다. 때문에, 양귀비의 열매에서 사람을 홀리는 마약, 아편 성분이 추출되는 것은 일견 이해할만하겠다. 마약성분으로 양귀비꽃은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많은 나라에서 재배가 금지되어 있다. 아직도 가끔은 양귀비를 재배하다가 경찰에 단속당한 이야기가 뉴스에 오르곤 한다. 우리가 주변에서 접하는 양귀비는 마약 성분이 없는 개양귀비, 털양귀비, 두메양귀비 등의 개량된 품종이다.

재미있는 점은 개양귀비는 중국에서 우미인초라고 불리우는 것인데, 이는 초한지 시대의 초패왕 항우의 연인이었던 우미인으로부터 유래되었다고 한다. 그녀는 항우를 깊이 사랑하여 평생을 따라 다녔고, 사랑과 충절을 지키기 위해 항우 앞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비극적인 전설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마약 성분이 있는 양귀비꽃은 사람을 홀려 나라를 망하게 한 양귀비의 이름을, 마약 성분이 없는 개양귀비꽃은 아름다움과 비극적인 사랑이 돋보이는 우미인의 이름을 따왔다는 점은 꽤나 그럴듯한 개연성으로 읽힌다.



< 유채꽃이 핀 지베르니의 봄 들판 >
< 아르장퇴유 들판 산책. 클로드 모네. 1873. >


매년 봄, 한강 공원이나 제주도의 노란 유채꽃 물결은 어느새 우리의 익숙한 풍경이다. 우리네 산과 들에 자생하기 보다는 사람이 직접 정원과 들판에 씨를 뿌리고 관리하는 모습이라 조금은 어색한 느낌이 없잖으나, 이른 봄 들판을 점령하는 깊은 샛노랑은 쉽게 지나칠 수 없는 마성의 경관이기도 하다. 큰 키와 아름다운 꽃을 가졌지만, 두해살이풀로서 지속적인 개량 작업이 없으면 관리하기 어려운 한계가 있기도 하다.

유럽 지중해가 원산인 유채는 전부터 식용 또는 기름을 짜는 용도로 넓게 재배된 식물이다. 남프랑스나 스위스의 들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야생의 꽃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에 언제 들어왔는지는 확실하지 않으나 조선시대 동의보감이나 산림경제에 ’채종유(菜種油, 유채 기름)‘ 가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꽤 오랫동안 재배되었을것으로 추정한다. 최근에는 유채 씨앗에서 추출하는 기름으로 바이오 디젤을 만들거나 건강한 기름으로 카놀라유를 찾는 손길이 늘어 유채에 대한 관심이 다시 집중되는 중이다.



< 라벤더가 피어 있는 지베르니 모네의 정원 >
< 지베르니의 화가의 정원. 클로드 모네. 1900. >


화가의 그림에서 정원의 보라색을 자랑하는 꽃은 라벤더로 보인다. 여러개의 작고 긴 꽃망울들이 모여 벼 이삭과 같은 모양으로 피어나는 라벤더는 아름다운 꽃과 향으로 고대 로마시대부터 사랑받고 있다. 라벤더 오일은 통증과 감염을 줄여주는 치료작용과 함께 신경계를 억제하여 스트레스를 완화해주고 사람의 마음을 진정하게 해 주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우리에게 익숙한 라벤더의 대표적인 모습은 일본 훗카이도나 프랑스 프로방스 지역의 넓은 라벤더 밭이다. 고랑을 이루어 드넓은 보라색 물결을 만드는 풍경은 쉽게 잊히지 않는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야생화 가득한 풍경


이름모를 들꽃에 대한 우리의 경험과 이야기는 무궁무진하다. 어디에선가 어느샌가 알지 못하는 가운데 피어난 들꽃은 참으로 ‘자세히 보아야 예쁜’ 꽃이기도 하다. 하루 하루를 살아가는 우리네를 민초라고 불렀으니 ‘이름을 불러 준 다음에야 의미를 갖는’ 우리네 사람의 모습과 들꽃의 그것이 다를바 없다.

< 꽃과 나비. 남계우. 조선 후기. >


때문에 사실 야생화를 감상하기 위한 장소를 찾는다는 것도 조금은 억지스럽다. 야생에서 자라나는 꽃이니 일상의 오가는 길 어디에서든 보는것이 보다 자연스러운 자연의 꽃 모습이 아닌가. 그럼에도 꽃과 정원에 관한 관심이 높아지는 요즘에는 야생화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초화 정원들을 어렵잖게 찾아볼 수 있다. 최근에는 우리네 아파트의 조경 공간에도 초화 정원을 조성하고 있는데, 특히 국내외 정원박람회의 성장과 더불어 전문 정원가의 손길로 조성되는 공간이 많아지고 있어 색상과 밸런스를 잘 갖춰진 야생화원들을 감상 할 수 있게 되었다.

< 서울국제정원박람회 2024 >


정원에 대한 관심은 다양한 식물 소재의 발굴로 이어지는데, 앞서 등장한 유럽의 야생화 종류인 양귀비며 유채꽃 역시 점차 대중화되고 있다. 특히, 씨앗을 통해서 쉽게 발아시킬 수 있는 꽃양귀비는 넓은 녹지를 복원하는 씨앗뿌림공법의 소재로 자주 사용되어 개발지역의 산기슭에서는 붉은 양귀비 무리를 어렵잖게 찾아 볼 수 있게 되었다. 유채꽃도 꾸준한 관리가 필요한 두해살이 꽃이지만, 봄철 깊은 인상을 남기는 색감으로 여러 지역의 유명한 관광명소로 역할하며 일상의 경관에 익숙하게 스며들고 있다.

< 절개지를 덮은 꽃양귀비 >


좀 더 자연스럽고 전통적인 야생화를 즐기고 싶으면 가까운 등산로를 찾아보는 것도 좋다. 양귀비, 유채꽃, 라벤더에 버금가는 꽃무릇, 애기똥풀, 수국 등의 자생꽃이 숲 속 이곳저곳에서 우리를 반기며 피어 있다.

꽃무릇은 군락으로 모여 붉은 꽃 물결을 이루는 경관을 자랑한다. 옛부터 절에서 길러 탱화를 그리는데 활용했다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유명한 군락지도 사찰 근처가 많다. 특히, 전북 고창의 선운사와 전남 영광의 불갑사 등의 군락지가 유명한데, 거칠게 서 있는 나무 아래에 붉은 융단을 깔아놓은듯한 풍경은 압도적인 경험을 가능하게 한다.

< 전남 영광 불갑사 꽃무릇 군락지 >


수국은 아름다운 꽃과 넓은 잎의 대비가 특징적인 꽃으로 정원 식물로도 많이 사용되고 있다. ‘델피니딘(delphnidin)’이라는 성분을 가지고 있어 토양의 성질에 따라 꽃의 색이 하얀색, 청색, 붉은색 그리고 보라색 등으로 바뀌기도 한다. 최근에는 개량된 수국들이 많아서 더욱 다양한 색상을 뽐내고 있기도 하다. 화려한 꽃의 모양에 비해 사실은 향기가 없는 무성화라는 점도 특이하다. 우리나라에서는 거제도 해안도로나 제주도 오름의 산수국이 유명하다. 특히, 샤려니숲길이나 상잣성길을 따라 제주의 깊은 숲을 산책하다 보면, 야생의 다복한 산수국들의 신비로운 푸르름을을 만끽할 수 있다.

< 제주도 사려니숲길의 산수국 군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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