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화 _ 정원을 사랑한 인상주의의 대가
모네로 대표되는 인상주의 화풍은 여러가지 면에서 인상적이다. 변하지 않는 실내의 정물이나 전설이나 종교에 등장하는 유명한 인물들이 주요 소재였던 이전 화풍에 비하여 햇빛의 변화에 따라 변화하는 야외 풍경의 찰나의 순간을 포착해내거나 가족 친구와 같은 특별할것 없는 인물들의 평범한 모습을 그려낸 인상파의 그림은 충분히 익숙하며 충분히 놀랍고 충분히 새로운 자극이었을것이다. 인간세상으로 내려온 신의 현현이라고나 할까, 혹은 고풍스러운 저택에 걸려 있을 초상화의 인스타그램화라고나 할까 하는 이야기이다.
클로드 모네는 이러한 일상의 주제, 곧 도시의 사람들과 배경의 자연을 화폭으로 옮긴 대표적인 화가다.
‘에밀 졸라는 초기의 모네에 대하여 이렇게 평하였다. “그는 화려한 복장을 한 신사 숙녀를 덧붙이지 않고는 풍경화를 그릴 수 없는 사람이다. 자연이 삶의 흔적을 담고 있지 않으면, 그는 관심을 두지 않는 것 같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모네의 풍경화에서는 인물이 사라지고, 문명화의 조짐들은 자연의 직접적인 인상으로 바뀌게 된다.’
< 클로드 모네, 39p, 크리스토프 하인리히, 마로니에 북스, 2005 >
화가가 그의 모델이었던 카미유와 열애 끝에 결혼하고 가정을 이루는 과정에서 그림의 주인공들은 그의 가족 중심으로 치환되었다. 자연에 담겨지고자 한 삶의 흔적은 화가 가족의 일상을 기록하는 것으로 전환되었고, 카미유의 사망 후 엘리스와 두번째 가족을 이룬후에까지 이 화풍은 간헐적으로 유지되었다. 그림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빛을 풍성하게 담아내는 자연의 들판과 숲을 배경으로 삶의 흔적을 만들어가는데, 특히 다양한 색상을 자랑하는 야생화 들판에서 한때를 보내는 모습이 자주 그려졌다.
‘정원의 화가 가족(The Artist’s Family in the Garden)’ 은 이러한 인상파 화풍 그리고 모네 그림의 특색을 모두 담아내고 있다.
화면의 앞쪽에는 다채로운 색상의 꽃이 채워져 있고 소풍을 즐기는 가족 뒤로는 커다란 나무 숲이 빽빽하게 위치한다. 자연의 총림에 가까운 나무 숲에 비하여 꽃 무리의 색상과 배열은 관리된 정원의 그것처럼 질서있는 모습이다. 나무와 꽃의 자연 소재들은 명확한 형태보다는 겹겹이 덧칠해진 물감이 만들어내는 번지는 덩어리의 느낌으로 표현된다. 그림속의 인물도 자연의 한 구성으로서 빛을 담아내는 반사체마냥 부분부분 대비되는 명암을 통해 강조되고 있다.
그림에서 볼수 있는 특징적인 명암은 인물이 앉아 있는 숲의 아래 부분에 표현되었는데, 보통 어둡게 보이겠다 싶은 공간임에도 오히려 나무를 통과하여 내리앉는 빛을 통해 밝게 그려지는 모습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찰나의 순간을 찾는 클로드 모네에게 이 시간의 햇볕은 소풍을 즐기는 가족의 밝음을 극대화하는 장치로서 작동하고 있는 게 아니었을까 한다. 그림을 그리는 대상으로서 자연과 인물은 확정적이지만, 화가가 정말 그려내고자 하는 모습은 우리가 지금 경험하는 이 인상! 이 시간의 여유와 느낌과 낭만일것이다.
이것은 클라우드 모네의 정원의 화가 가족이다.
야생화를 배경으로 하는 모네의 그림에는 그의 첫번째 부인 카미유 돈시에가 자주 등장한다.
카미유는 젊었을때부터 여러 화가의 모델로 활동하고 있었다. 카미유의 강렬한 눈빛에 끌린 모네는 그녀를 주인공으로 한 여러 작품을 그렸고 평단의 호평을 받기도 하였다. 몇 년의 열애끝에 결혼한 둘은 장과 미셸 아들 둘을 낳아 가정을 이루며 화가로서 초반의 힘든 시간을 함께 보냈고, 카미유는 모네에게 아내를 넘어 예술적 뮤즈에 가까운 관계로 자리잡혀갔다. 그러나, 여느 신화의 결말이 그러하듯이 화가의 뮤즈는 젊은 나이게 숨을 거두게 되고, 뮤즈의 죽음 앞에선 화가는 과연 신화의 마지막을 기리는 가장 예술적인 방법으로 그녀를 추도하였다.
‘새벽녘에 나는 내가 가장 사랑했고 앞으로도 사랑할 한 죽은 여인의 옆에 앉아 있었네. 그녀의 비극적인 잠을 응시하고 있었지. 그리고 문득, 내 눈이 죽은 사람의 안색의 변화를 좇고 있음을 깨달았네. 파랑, 노랑, 회색의 색조. 내가 뭘 하고 있는 거지? 내 곁에서 사라져가는 그녀의 모습을 마음속에 새겨두고 싶다는 소망이 생기더군. 하지만, 소중한 사람을 그려보겠다고 생각하기도 전에 그 색채가 유기적인 감동을 불러일으켜서 나는 반사적으로, 내 인생을 지배해온 무의식적인 행동을 하고 있었던 거야. 연자매를 돌리는 동물처럼 말일세. 나를 동정해 주게, 친구‘
< 클로드 모네가 카미유의 임종을 그린 후, 친구 클레망소에게 보낸 편지 >
1876년도의 ’야생화 들판에서‘ 도 야생화를 배경으로 아내 카미유를 그린 대표작이다.
화가의 뮤즈는 키가 높은 야생화 사이에 푹 파묻힌채 책을 읽고 있다. 노란색 꽃 물결속에 자리한 여인은 재빠르게 변하는 세상의 모습은 신경쓰지 않는듯한 달관한 표정으로 책에 집중하고 있다. 살짝 불어오는 바람에 흔들리는 듯한 꽃 물결은 한편으로는 야생화 카페트에 누워 혹은 흔들거리는 파도에 몸을 맡긴채 자연스래 이끌려가는 신화적 존재를 돋보이게 하는 장치이기도 하다.
동시대의 작품 ‘파라솔을 든 여인’ 과 비슷한 배경으로 배경과 보이는 야생화 들판은 노랗고 하얗고 보라색의 여러 꽃들이 수북하게 쌓여 빛의 반대편에 있는 짙은 어두움의 배경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대조적으로 햇볕을 받으며 밝게 반짝이는 여인의 실루엣은 커다란 꽃 모양의 모자가 보여주듯, 야생화와 구분되지 않는 자연의 하나로 읽히는 듯 하다.
‘정원의 화가 가족’ 다음편 _ 야생화 이야기 & 우리네 야생화 정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