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달의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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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하루를 살다보면 아무것도 아닌것 같은일에
코끝이 찡해져
늙었나...
오늘 아침, 핸드폰에 문자가 도착했다.
“자양동 아홉시 반 도착 부탁드립니다.”
알람보다 먼저 울리는 일이 있는 날이면, 괜히 하루가 조금은 든든해진다.
회사에 주차된 탑차를 가지러 간다.
조수석 옆엔 늘 그렇듯 보리차 한 병을 챙겨 두고, 마음속으로 중얼거린다.
“제발 오늘은 일이 이어졌으면… 하나 끝나고 또 하나, 그렇게.”
첫 번째 일은 ‘일반이사’.
포장이사가 아닌 일반이사는, 이삿짐이 미리 정리된 상태에서 운반만 도와주는 형태다.
오늘 이삿짐이 있는 곳은 스무 살 후반의 친구들이 함께 지내던 집.
좁은 원룸 세 개가 복도로 이어져 있고, 각자의 박스와 이불이 놓여 있다.
자취를 처음 시작했던 대학 시절이 떠올랐다.
내가 살던 반지하 방, 새벽까지 라면 끓이며 수다 떨던 친구들.
코끝이 찡하다.
짐을 옮기며 박스를 하나 둘 트럭에 싣고 있으면,
도와주러 온 친구들 사이의 소소한 농땡이도 보이고,
“야, 니가 이거 좀 해!” 하며 티격태격하는 모습도 보인다.
어느새 나도 그들 대화에 웃게 된다.
“천호동으로 이사 가요. 드디어 이 동네를 벗어나요!”
반짝이는 눈으로 말하는 그들.
왠지 모르게 그 설렘이 전염된다.
부디 앞으로의 삶에 행운이 가득하길 바란다.
두 번째 일은 ‘당근 가구 배송’.
요즘 당근마켓으로 거래되는 가구를 배송해달라는 요청이 부쩍 늘었다.
고가의 가구가 많아 포장에 더 신경을 쓰게 된다.
오늘 배달한 집은 아이가 두 명 있는 가정이었다.
가구를 옮기느라 땀을 뻘뻘 흘리고 있을 때,
엄마가 조심스레 내 손에 무언가를 건넨다.
“이거 드세요, 애들이 좋아하는 과자인데…”
과자 한 묶음.
순간, 또 코끝이 찡해진다.
어느 날은 아무도 눈길 안 주는 노동자 같다가도,
이런 따뜻한 마음 하나에 하루가 달라진다.
일이 끝나고 돌아오는 길,
문득 유튜브 채널을 시작하려 했던 게 떠오른다.
“이런 하루를 영상으로 남기면 좋을 텐데…”
하지만 요즘 일이 뜸해서 촬영은커녕 마음만 앞선다.
현실은, 썰렁한 일정표와 자꾸만 줄어드는 일감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일도 보리차를 챙기고
희망 하나를 실은 채 탑차에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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