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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문 너머의 신호”

10대의 추억 첫번째이야기

by 으랏차차 내인생 Mar 15. 2025

“창문 너머의 신호”


고등학교 미술 수업 시간, 교실 창가에 기대어 멍하니 바깥을 보고 있었다.

바람이 살랑이고, 햇빛이 창문을 타고 들어와 나른한 분위기를 만들었다.

쉬는 시간이 되자마자 나는 창문을 열고 운동장 쪽을 내려다봤다.

거기엔 항상 그 시간에 있어야 할 친구가 있었다.


손짓으로 신호를 보냈다.

“야, 이거 있냐?”


친구는 멀뚱히 나를 보며 손을 흔들었다.

“뭐? 뭐라는 거야?”


그때 깨달았어야 했다.

그건 단순한 궁금증이 아니라, 위험 신호 였다는 걸.

뒤통수가 서늘해지는 느낌이 들었다면, 나도 바로 알아차렸겠지.

하지만 그땐 아무 생각 없이 다시 소리쳤다.


“야, 담배 있냐고 이 새끼야!”


순간, 주변이 고요해졌다.

그와 동시에, 창문 유리에 희미하게 비친 그림자를 보았다.


…그리고 그 그림자는 움직이지 않았다.


브런치 글 이미지 1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거기엔, 한 손을 허리에 얹고 날 노려보는 미술 선생님이 계셨다.

표정은 고요했지만, 눈빛이 유리 조각처럼 날카로웠다.

‘아, 끝났다.’


내 인생의 몇 안 되는 슬로우 모션 장면 중 하나였다.

선생님이 천천히 손을 들었고, 손가락을 하나씩 접으셨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그건 마치 “너 오늘 손가락 갯수만큼 맞을 준비해라.” 라는 신호 같았다.


그리고 그 예언은 현실이 되었다.


그날 나는 손가락 갯수만큼 맞았다.

아니, 정확히는 손가락 갯수보다 조금 더 맞았을지도.

도망치려 했지만, 선생님 손에 이끌려 교무실까지 끌려갔고,

친구들은 슬픈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맞고 나서의 기분은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았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꽤 웃겼다.

교실로 돌아가자 친구들은 나를 보며 낄낄대며 물었다.

“야, 몇 대 맞았냐?”

“손가락만큼 맞음…”

“야, 담배는 구했냐?”

“아니, 씨X.”


그리고 그 순간, 다 같이 웃었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십 대 때는 그런 것 같다.

그때는 모든 게 크고 중요한 일처럼 느껴졌지만,

시간이 지나면 하나의 웃긴 추억으로 남는다.

그날 나는 담배를 구하지 못했지만, 대신 친구들과 함께할 이야깃거리를 얻었다.

어른이 되고 나서도 문득 떠올리면 피식 웃음이 나는 그런 이야기.


그리고 가끔 생각한다.

그때 미술 선생님이 날 잡지 않았다면,

그날 난 담배를 피웠을까?


그렇다 해도, 별로 달라질 건 없었을 거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그날 내 뒤통수를 식히던 그 서늘한 그림자와,

친구들과 함께 깔깔대며 웃던 그 순간은,

십 대의 가장 순수하고 유쾌한 한 조각으로 남았다는 것.


나는 여전히 그때를 떠올리면 웃음이 난다.

그리고 친구들과 만나면 꼭 한 번은 이 얘기를 꺼낸다.


“야, 기억나냐? 창문에서 담배 찾다가 뒤지게 맞은 날?”


십 대의 추억이란, 결국 그렇게 남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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