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 인어공주상, 독일의 로렐라이 언덕
몇 년 전 유럽여행을 갔다가, 굉장히 기대했다가 오히려 허탈함을 느끼고 돌아온 장소들이 있다. 독일의 로렐라이 언덕과 덴마크의 인어공주상이 그곳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곳들은 ‘세계 3대 설렁 관광지’로도 불린다고 한다. 벨기에의 오줌 싸는 소년 동상, 덴마크의 인어공주상, 그리고 로렐라이 언덕. 잔뜩 기대하고 갔다가 묘한 허무함을 안고 돌아오는 장소들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여전히 이곳을 찾는다. 왜일까.
인어공주라는 이야기의 힘, 로렐라이라는 전설의 힘 때문이다.
동화를 좋아하는 나에게 덴마크는 죽기 전에 꼭 한번 가보고 싶은 나라였다. 안데르센은 덴마크 경제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 인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는 인어공주 이야기를 떠올리며, 그 유명한 인어공주상을 보러 갔다. 역시 많은 사람들이 사진을 찍기 위해 긴 줄을 서 있었다.
정작 가까이에서 본 인어공주상은 생각보다 너무 작았다.
‘엥? 저게 다인가?’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주변 풍경이 특별히 아름다운 것도 아니고, 동화처럼 환상적인 분위기도 아니었다. 바위 위에 조각상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 있을 뿐이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그 조각상 하나를 보기 위해 세계 여러 나라에서 비행기를 타고, 배를 타고 찾아온다.
물론 자세히 보면 예술적인 디테일은 있다. 지느러미와 다리를 섬세하게 표현했고, 어쩐지 인어공주는 유난히 쓸쓸해 보였다.
부산에도 인어상이 있다. 동백섬에 있는 ‘화옥왕비’다. 하지만 이 인어상을 보기 위해 전 세계 사람들이 몰려들지는 않는다. 전설이 아직 세계적으로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히려 배경만 놓고 보면 부산 동백섬이 훨씬 아름답다는 생각도 든다.
로렐라이는 내가 어릴 적 피아노로 처음 접했던 곡이다. 이후 중학교에 가서 가사의 의미를 알게 되었고, 로렐라이 언덕이라는 장소도 알게 되었다. 그때 나는 이곳을 무척 낭만적인 곳으로 상상했다. 그래서 큰 기대를 품고 로렐라이 언덕을 찾았다.
하지만 막상 도착해 보니 우리나라 풍경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여기, 독일 맞아?’
눈에 띄는 차이라면 유럽식 작은 성 하나가 보인다는 정도였다. 안동의 강변이나 충북 어딘가를 떠올리게 하는 풍경이었다. 여기가 바로 로렐라이 언덕이라고? 실망을 감추며 머릿속으로 로렐라이 노래를 떠올려 보며 애써 감탄해 보려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곳을 관광지로 만들어 전 세계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이야기의 힘 앞에서는 놀라울 뿐이다.
별거 아닌 것처럼 보이는 장소도, 의미가 부여되면 대단해진다. 어쩌면 문학의 일종의 속임수일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분명한 건, 이야기의 힘은 대단하다는 사실이다. 여행을 통해서도 그걸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우리 집 앞 하천은 지금도 별다를 것 없는 풍경이지만,
아직 이야기를 만나지 못했을 뿐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세상에 ‘설렁한 장소’란 없고,
아직 불리지 않은 이야기들만 있는 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