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져 가는 무궁화호를 바라보며
나는 기차 여행을 좋아한다. 유럽을 여행할 때도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기차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던 시간이었다. 정확하고, 편안하고, 무엇보다 레일 위를 달리며 풍경을 맡길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
지난여름, 동해에서 대구까지 이어지는 무궁화호 1671 열차를 탔다. 곧 사라진다는 말을 듣고, 없어지기 전에 꼭 한 번은 타보고 싶었다. 산길을 뚫고 달리는 오래된 열차. 창밖 풍경이 분명 아름다울 거라 믿었다.
무궁화호에는 간식 카트가 없다. 점심과 간단한 먹을거리를 미리 준비해 좌석에 앉았다. 열차는 숲 속으로 천천히 들어갔다. 터널을 지나고, 다시 숲이 열렸다. 끝없이 이어지는 나무들, 비가 지나간 뒤 흙탕물이 된 계곡, 평야와 바위, 그리고 가끔 모습을 드러내는 산속의 폐가들.
다섯 시간이라는 시간이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여름의 끝자락, 녹음이 가장 짙은 순간을 마음껏 바라볼 수 있는 날이었다. 그 순간만큼은 스위스의 산악열차가 부럽지 않았다.
이 깊은 산속에 레일을 깔고 기차를 달리게 한 사람들의 시간과 노고가 떠올랐다. 기술은 언제나 속도를 자랑하지만, 이런 느린 길 위에는 다른 종류의 정성이 숨어 있다.
지금은 더 빠른 열차가 바다를 따라 달린다. 시간은 줄었지만, 대신 여유와 여운도 함께 줄어든 것 같다. 예전 기차 카페에서 마시던 커피는 유난히 달콤했다. 속 쓰림도 없었다. 지금은 각자 준비한 음료를 손에 쥔 채 창밖을 바라보는 낭만만 남아 있다.
기차는 레일 위에서만 달릴 수 있다. 레일을 벗어나면 사고가 난다.
그렇다면 내 인생의 레일은 어디로 향하고 있을까.
속도는 점점 빨라지고, 도착은 편리해진다. 하지만 풍경을 음미하는 시간은 점점 줄어든다. 스위스에서 눈 덮인 산을 기차로 넘을 때, 마치 판타지 세계에 들어온 듯한 느낌이 들었듯이, 나는 여전히 그런 느린 이동을 꿈꾼다.
어쩌면 중요한 것은 얼마나 빨리 도착하느냐가 아니라, 어떤 풍경을 보며 가느냐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