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 대신 공감이 남았다-
셜록홈즈의 <진홍색 연구>

추리소설 사색

by 천혜향

애거서 크리스티의 소설을 읽고 나서 추리소설에 흥미가 생겼다. 예전에는 추리소설에 큰 관심이 없었고, 무엇보다 읽기가 무서웠다. 살인 사건을 다루는 이야기가 많다 보니 공포스럽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읽고 나면 꿈속에 나타날 것만 같았다.

10대 시절, 언니, 오빠들이 셜록 홈즈 작품을 열심히 읽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그때는 ‘저게 그렇게 재미있을까?’ 하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죽음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조금씩 사라지고, 책을 바라보는 시선에도 변화가 생긴 것 같다.

호기심으로 읽은 『오리엔트 특급 살인』과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를 통해 나는 추리소설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그 여운이 이어져, 어린 시절 큰 인기를 끌었던 『셜록 홈즈』 시리즈 완역본을 제대로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추리문학의 가장 큰 매력은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 책을 놓을 수 없게 만든다는 점이다. 범인이 누구인지, 알리바이는 어떻게 증명되는지 스스로 추리해 보며 읽는 재미가 있다.

애거서 크리스티 역시 셜록 홈즈 작품을 읽고 추리소설의 매력에 빠졌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진홍색 연구』를 읽으며 크리스티의 작품과 닮은 점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작품 모두 범인을 단순한 악인으로 그리지 않고, 그들이 범죄를 저지를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함께 보여준다. 때로는 법의 심판을 받지 못한 죄인을 응징하기 위해 범죄를 저지르는 인물도 등장한다.

그래서인지 읽고 난 뒤에는 공포보다는 묘한 공감이 남는다.

이 소설은 전개 방식 또한 독특하다. 1부에서는 육군 군의관 존 왓슨 박사의 회상 형식으로 홈즈와의 만남과 살인 사건이 펼쳐지며 추리가 시작된다. 그리고 2부에서는 범인이 왜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 그 과거의 이야기가 자세히 드러난다.

셜록 홈즈 시리즈의 시작이라 할 수 있는 『진홍색 연구』에는 홈즈와 왓슨의 첫 만남이 담겨 있다. 홈즈는 매우 독특한 인물이다. 천재적인 추리력을 지녔지만, 의외로 일반적인 상식에는 무지한 면도 보인다. 또한 사건을 대할 때 피해자나 범인에 대한 감정보다는 사건 해결 자체에 더 큰 흥미를 느끼는 듯하다.

어떤 사람들은 드라마 속 홈즈를 보고 소시오패스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렇게 단정하기에는 무리가 있는 것 같다. 그는 명예욕에 크게 집착하지 않는다. 소설 마지막에서 사건 해결의 공이 다른 형사에게 돌아가도 억울해하지 않고 담담하게 받아들인다. 이런 모습은 오히려 그의 초연한 태도를 보여준다.

사건 해결보다 더 인상 깊었던 것은 홈즈의 말 한마디였다.


“인간의 뇌는 원래 텅 빈 조그만 다락방과 같아서 마음에 드는 가구만 들여놓을 수 있다고 생각하네. 그런데 어리석은 사람은 여기에 우연히 발견한 잡동사니까지 전부 쌓아놓지. 그래서 도움이 될 만한 지식이 뒤섞여 버려, 정작 필요한 것에는 손도 댈 수 없게 되지.

하지만 솜씨 좋은 장인은 머릿속 다락방에 무엇을 넣어야 할지 신중하게 고른다네. 일에 필요한 도구만을 가지런히 정리해 두지. 작은 방의 벽이 무한정 늘어난다고 생각하는 건 착각이야. 새로운 지식을 넣을 때마다 기존의 것을 잃을 수도 있으니까. 중요한 것은, 쓸데없는 지식으로 유용한 지식이 밀려나지 않게 하는 걸세.”


요즘은 ‘미니멀 라이프’, ‘정리하는 삶’이 하나의 흐름이 되었다. 정리를 잘하는 사람이 더 여유롭고 단단한 삶을 산다고들 말한다. 여기서 말하는 정리는 물건뿐 아니라 인간관계에도 해당된다.

나는 여기에 하나를 더 보태고 싶다. 바로 ‘지식의 정리’이다.

쓸데없는 정보를 무작정 쌓기보다, 지금 나에게 필요한 지식에 집중하고, 필요 없는 것은 과감히 내려놓는 것. 그것이 오히려 더 명료한 사고를 가능하게 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1800년대에 이미 이런 통찰을 보여준 코난 도일의 시선이 놀랍게 느껴진다.

그런데 지식은 많이 넣을수록 머리가 좋아진다고 하던데 ... 어느 논라가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다만 분명한 것은, 생각이 지나치게 복잡해지고 정리가 되지 않을 때 우리는 삶을 더 버겁게 느낀다는 점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내 머릿속 다락방을 조금씩 정리해 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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