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 키우기로 깨달은 인구론
학교에서 학생들과 함께 1인 1 식물 키우기 활동을 했다. 식물은 바질, 화분은 종이컵만 한 작은 크기였다. 모두 같은 식물, 같은 흙, 같은 조건에서 출발했지만 시간이 지나자 자라는 모습은 놀라울 만큼 달라졌다.
씨앗은 화분마다 대략 5~6개씩 심었지만 어떤 화분은 싹이 3개 이하만 올라왔다. 일주일쯤 지나 싹이 트고, 한 달이 지나자 잎은 커지고 향도 퍼졌다. 그때 문득 한 가지 깨달음이 찾아왔다.
화분이 좁다 보니 식물들 사이에 보이지 않는 자리다툼이 일어나는 것처럼 보였다. 어떤 화분은 여러 식물이 비교적 고르게 촘촘히 자랐지만, 높이 뻗지는 못했다. 모두가 비슷비슷하게, 조금씩만 자란 셈이다. 또 어떤 화분에서는 한 식물만 유독 높게 쭉 자라고, 나머지는 겨우 생명만 부지하는 듯했다. 반면, 한 화분에 단 하나의 식물만 자라는 경우는 달랐다. 잎은 크고 튼튼했고, 위로 힘차게 뻗어 올랐다. 충분한 공간 덕분에 스트레스 없이 성장하는 모습이었다.
식물이 계속 자라 공간이 부족해지면 더 큰 화분으로 분갈이를 해 주어야 한다. 분갈이는 화분을 넓히는 일이 아니라, 뿌리가 숨 쉬고 다시 자랄 수 있게 환경을 바꾸는 일이다. 그렇지 않으면 식물은 살아는 있어도 더 이상 뻗지 못한다.
이 모습을 보며 나는 자연스럽게 인간 사회를 떠올렸다.
과거 베이비붐 시대, 남아선호 사상이 강했던 시절에는 아들 하나에 딸이 여러 명인 가정이 흔했다. 그런 집에서는 아들 하나를 ‘쑥쑥 키우기 위해’ 딸들이 희생되는 경우도 많았다. 집은 좁고 식구는 많아 모두가 스트레스를 안고 살아갔다. 그 결과, 누구도 충분히 뻗어 나가지 못하거나, 혹은 자녀 중 한 명만 선택적으로 밀어주는 일이 생기기도 했다.
반대로 무남독녀나 무녀독남의 경우는 확실히 달랐다. 자신만의 공간을 가질 수 있었고, 방 하나, 음식 하나를 두고 다툴 필요도 없었다. 원하는 것을 비교적 온전히 누릴 수 있었다.
1970년대의 우리나라는 땅은 좁고 가난한데 인구는 많았다. 그래서 산아 제한 정책이 시행되었고, 셋째부터는 각종 혜택이 중단되었다. ‘대아를 위해 소아를 희생해야 한다’는 논리가 통하던 시대였다. 인권이라는 개념조차 희미했던, 강자만이 살아남는 구조였다.
나 역시 그 시대의 피해자 중 한 사람이다. 우리 집은 아들이 태어나지 않아 나까지 계속 아이를 낳았다. 여덟 명이나 되는 대가족이 북적이며 살았다. 나의 오랜 소망은 단 하나, 나만의 공간을 갖는 것이었다. 그 시절에는 사생활이라는 것이 없었고, 존중받는 삶 또한 없었다. 훗날 내 방이 생겼을 때 느꼈던 행복은 아직도 선명하다.
그런데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뒤바뀌었다. 경제 성장을 이룬 뒤 저출산이 심각해지자, 이제는 아이를 낳아 달라고 사정하는 시대가 되었다. 셋째부터는 온갖 혜택이 주어진다.
저출산의 원인은 복합적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현재의 40·50세대가 극심한 경쟁과 스트레스를 견뎌온 세대라는 점이 크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자신의 자녀에게 같은 불행을 물려주고 싶지 않은 것이다.
유럽에서도 오래전부터 모두를 키우는 방식이 아니라, 한 사람을 선택해 키우는 방식이 존재했다. 중세 봉건 사회에서 장남 상속은 가문의 생존 전략이었고, 다른 자녀들은 자연스럽게 밀려났다. 화분이 좁을수록 한 줄기만 살아남는 식물처럼 말이다.
북유럽 국가들의 행복지수가 높은 이유 역시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중 하나는 인구가 많지 않다는 점일 것이다. 충분한 개인 공간이 보장되고, 사생활이 존중되며, 학교에서도 개별 맞춤 교육이 가능하다.
저출산이 심각한 문제인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지금 태어난 아이들과 이미 살아가고 있는 모든 국민이 자신의 공간 속에서 사생활을 보호받고 존중받으며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일 아닐까.
그 토양이 마련된다면, 인구 문제 역시 언젠가는 자연스럽게 풀려갈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