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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이루미 Jun 28. 2022

나와 맞지 않는 사람과는 거리를 둬라

자신을 함부로 대하는 너에게

 “행복의 90%는 인간관계에 달려 있다.”

- 키르케고르     


 다른 사람의 고민을 들으면 대게 누군가와의 갈등에서 비롯된 스트레스를 이야기한다. 약속을 지키지 않는 남자 친구에게 실망한 이야기. 감정을 그대로 표출하는 친구에게 당황한 이야기. 무례한 직장 상사 이야기. 의견이 맞지 않는 부모님과의 갈등 등등.


 당신의 인간관계는 어떠한가? 당신 또한 주변 사람과의 관계에서 큰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가? 나는 단순히 당신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사람과 관계를 멀리하라는 말을 하려는 것은 아니다. 흔히 듣는 당신의 기분을 지속적으로 망치는 사람과 관계 정리를 하라는 말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나는 당신이 당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가려 할 때 당신의 생각과 행동을 통제하려는 사람과 거리를 두라는 말을 하고자 한다.


 사람은 자기의 삶의 주도권을 자신이 가지고 있지 못할 때 불행함과 무력함을 느낀다. 당신에게도 당신 삶의 주도권을 빼앗으려고 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어쩌면 당신은 불행하게도 벌써 다른 누군가에게 당신의 삶에 대한 통제권을 넘겨주었을 수도 있다. 타인의 지시에 무조건적으로 따르고 있지 않은가? 다른 사람의 기대를 맞추기 위해 당신을 희생하고 있지는 않은가? 주변을 돌아보기를 바란다. 대부분이 가장 가까운 사람에 의해 이러한 일이 일어난다.     


 ①가족

 당신은 연고주의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대게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학연, 지연, 혈연이 중요하다는 말을 종종 듣고는 한다. 살았던 지역이 같고, 출신 학교가 같고, 가족이 엮여 있으면 일면식이 없던 관계라도 금세 친해진 기분을 들게 한다. 공통점이 생긴 사람들은 뭉쳐 서로를 돕고 편의를 봐준다. 그중에서도 특히 혈연은 가족 구성원끼리 언제 어디서나 서로를 지지하고 응원하는 관계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과연 그러할까?  


 유명한 심리학자 웨인 다이어는 강연에 나갈 때마다 청중에게 과거에 자신이 희생양이 되었던 상황을 적어내도록 한 적이 있다. 그는 수천 개의 사례가 수집되었는데 그중 83퍼센트가 가족과 관련이 있었다. 안 좋은 기억의 83퍼센트가 가족 간에 발생하였다. 우리는 이 수치를 통해서 한 가지 사실을 알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가족에게 응원과 지지를 받기보다는 압박과 스트레스를 더 많이 받는 사실 말이다.


 가족이 가족에게 행하는 압박의 방법은 무수히 많다. 언니니까 너보다 나이가 어린 동생을 챙겨야 한다. 어른이 하는 말씀이니 참고 들어야 한다. 자식이니까 무조건적으로 일 손을 도와야 한다 등등 일반적으로 이러한 일들은 가족 간에 당위적이거나, 도의적으로 마땅히 지켜야 할 예절로 여겨진다. 하지만 이러한 일을 한다고 해서 가족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듣는가? 부모님에게 칭찬을 듣는가? 대부분은 아닐 것이다. 그들은 ‘가족이니까’ 당연한 일을 한 것이라고 말하며 당신의 시간, 노동, 감정의 소모를 아무렇지 않게 여긴다.


 명절 스트레스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특히 명절에는 가족이라는 명목 하에 존중 없는 말들을 쏟아진다. 명절에는 당신은 당신의 소중한 시간을 들여 가족을 만난다. 고향에 내려가거나 자주 보지 않던 가족들을 보게 된다. 오랜만에 만난 즐거움은 뒤로 한 채 그들은 당신에게 말한다.     


 “어서 결혼해야지. 출산은 언제 하려고. 아기는 될수록 빨리빨리 낳아야지. 노산은 위험해.”

 “취업은 언제쯤 할 거니? 걔는 어디 대기업 들어갔다더라. 너는 도대체 언제 직장 잡을래!”

 “시험은 잘 봤니? 그래, 어디 대학교 들어갈 수 있니?”    

 

 위의 질문들은 다른 사람들에게는 쉽사리 묻지 못할 질문들이다. 하지만 가족 간에는 민감할 수 있다는 개념 따위는 없다. 그들은 “다 너 잘 되라고 하는 말이야.”, “나 때는 말이다.”를 초문으로 듣는 상대방의 감정과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쏟아낸다. 혈연관계라는 이유로 당신의 삶에 대해 끊임없이 감 놔라 배 놔라 하며 개입하려고 한다. 달라진 시대의 새로운 생존 비법을 주제로 한 강연에서 작가 조승연은 이러한 말을 한다.     


 나라가 너무 빨리 성장하면서 배운 사람이 모자랐어요.
과거에는 공부만 열심히 하면 딱 공부가 끝나는 순간
기업이, 국가가 내 일자리를 찾아주던 시대였어요.
그것이 우리 부모님이, 저 같은 사람들이 경험한 대한민국이에요.
그래서 제가 항상 여러분에게 강의할 때 하는 말이 있어요.
어른의 말은 반만 들으세요.    

 가족이 소중하다는 것을 부정하려는 것은 아니다. 가족은 우리 삶에 커다란 보상이며 원동력일 수 있다. 하지만 칼의 양면성처럼 가족의 존재가 재앙이 되기도 한다. 상황을 가정해 보자. 당신이 당신의 가족 앞에서 앞으로의 꿈이나 포부에 대해 이야기한다고 생각해 보자. 당신의 가족은 어떠한 반응을 보이는가?     

 

“야, 네가 그걸 무슨 수로 해내냐?”

 “아직 어려서 세상 물정을 뭘 모르네. 허황된 소리를 하고 있어.”     


 이러한 부정적인 반응 보이는 가족이라면 자신이 경험하지 못한 부분에 대해서는 허황된, 말도 안 된다는 표현을 하는 가족이라면 당신은 가족일지라도 어느 정도 거리를 유지할 필요가 있다. 거리를 두지 않고 계속 가족에게 끌려니는 순간 당신의 삶은 당신이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흘러가게 된다. 당신의 생각과 행동에 지지와 응원을 보내는 가족이 아닌 압박과 개입을 하는 가족이 있다면 당신은 스스로를 가족에게서 지켜내야 한다. 그들의 입맛대로 움직임 당하지 마라. 당신의 삶의 통제권을 넘겨주지 마라.     


 ②친구

 우리는 학창 시절 매일 등교를 하였고 그렇게 매일을 함께하던 친구들이 있었다. 하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생이 되고 직장인이 되면서 매일을 함께하던 친구들을 쉽게 만나볼 수가 없어졌다. 함께하지 못한 시간만큼 서로 다른 경험이 쌓이고 가치관과 생각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혹시 이러한 느낌을 받아 본 적이 있지 않은가? 오랜만에 친구를 만났을 때 ‘어? 얘한테 이런 면이 있네?’라는 생각을 한 번쯤은 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때 당신이 느낀 친구의 어떠한 면모가 상식적으로 이해가 전혀 되지 않고, 눈살이 찌푸려지게 된다면 당신은 어릴 때 친했던 친구였을지라도 어느 정도 거리를 둘 필요가 있다.


 당신은 살면서 ‘유유상종’, ‘끼리끼리’라는 말을 많이 들어 보았을 것이다. 내가 어린 시절 이러한 말들은 하나의 고사성어에 지나지 않았다. 금전적으로 비슷하지 않아도, 성향이 달라도, 배움의 정도가 차이 나도 같이 잘 어울려 놀 수 있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사회생활을 할수록 사람은 자신과 비슷한 관심사와 공통점이 있는 사람에 끌린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예를 들어보자. A는 유흥을 좋아하고 게임을 좋아한다. 사람과 어울려 노는 것을 즐긴다. B는 책을 좋아하고 자기 계발을 즐기며 집에 있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다. 그 둘은 어울려 놀기 힘들다. A와 B의 대화 주제가 겹치지 않기 때문이다. 그 둘이 만날 때 A가 대화를 시작한다고 생각해 보자. “B야 이번에 나온 게임 알아? 근처에 새로 생긴 술집 안주가 진짜 맛있는데 가봤어?” B는 높은 확률로 새로 나온 게임도 , 술집 안주의 맛도 모를 것이다. 그렇다면 B가 대화를 시작한다고 생각해보자. “A야 내가 근래 책을 읽었는데 내용이 너무 인상 깊더라고. 너도 한 번 읽어볼래?” 이 말에 A가 웃으며 좋다고 말해도 실제로 책을 받으면 반도 읽지 않고 B에게 돌려줄 가능성이 크다.


 우리는 바쁜 시간을 내서 친구를 만난다. 하지만 만난 친구와 대화 주제가 전혀 맞지 않다면 얼굴은 웃을지 언정 실제로는 재미없고 무의미한 시간을 보내게 된다. 그러다 보니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과 비슷비슷한 사람만이 주변에 남게 된다.

 김태광의《독설》에서 저자는 말한다. “나는 내 주변 5명의 평균이다.” 오래된 친구일지라도 당신과 맞지 않는다고 판단이 된다면 당신은 그들과 함께 시간을 보낼 필요가 없다. 누군가에게 당신이 당신의 친구에게 본 단점을 가진 사람으로 보이고 싶지 않다면 그 관계를 멀리할 필요가 있다.     


 가족으로 인해 언짢은 기분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면, 나와 맞지 않는 친구와의 관계에 계속 의문이 든다면 당신은 그러한 사람과 어느 정도 거리를 둘 필요가 있다. 거리를 두라는 것이 그들과의 관계를 단절하고 외톨이가 되라는 것이 아니다. 당신이 스트레스받지 않을 정도로만 함께하라는 것이다. 당신의 삶이 누군가에 의해 고통받고 있다면 그러한 사람과 멀리함으로 당신의 고통을 줄일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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