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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이루미 Jun 22. 2022

남의 감정을 내가 감당해야 할 의무는 없다

자신을 함부로 대하는 너에게

 고등학교 친구 중에 공부를 잘하는 친구 H가 있었다. 친구 H는 공부에 대한 욕심이 많았다. 친구의 어머니는 친구가 성적을 잘 받을 수 있도록 열심히 뒷바라지를 했다.

 우리 학년은 15학번의 대학생이 되기 위한 2015학년 대학 수학 능력 시험을 치렀다. 이때 수능은 난이도 조절 실패로 악명이 높았던 시험으로 소문이 나있다. 지나치게 어렵게 출제한 국어 B형은 많은 수험생들에게 혼란을 주었다. 이러한 난이도로 내 친구 H는 낮은 국어 점수를 받았고 재수를 선택하게 되었다. 친구 H는 12월부터 재수를 본격적으로 준비하였고 1년간 연락이 끊겼었다.


 1년 후, 친구 H에게 연락이 왔다. 대학교가 붙었다고. 고등학교 친구들과 함께 만나 놀자고. 친구 H와의 만남에서 대학교 합격을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하였는지 듣게 되었다. 졸음이 올 때는 허벅지를 샤프심으로 찔러가며 공부를 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기겁을 했었다. 매일 해가 뜨기 전 새벽에 나가 자정쯤 집에 돌아왔다는 이야기는 박수를 쳐주고 싶었다.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까지만 해도 친구 H가 좋았다. 친구 H가 멋있고 대단하다는 생각뿐이었다. 나는 이때 친구 H의 노력을 듣고 열심히 준비해 들어간 대학인만큼 기대감이 매우 크다는 것을 알아차렸어야 했다.


 21살 때 나는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아르바이트를 14시간씩 할 때였다. 아버지는 잦은 가슴 통증이 있었음에도 병원비 걱정으로 병원에 가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당시의 나는 돈을 모으고 싶어서 내가 깨어있는 시간 동안 아르바이트만 하고 있었다.


 어느 날 그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그 친구는 나에게 자신의 생각과 다른 대학 생활에 대한 불만을 털어놓았다. 1인 매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나는 연락 답장 속도가 굉장히 빨랐다. 바로 바로 연락이 되는 나는 어느 순간부터 친구 H의 해우소가 되어있었다.     


 “좋아하는 사람 생겼는데. 그분도 나와 같은 마음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 봐. 속상하다.”

 “나는 대학교 오면 애들끼리 막 다 같이 모여서 술 먹으면서 게임도 하고 재미있게 놀 줄 알았는데. 너무 실망스럽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렇게 열심히 하지 말걸. 대학 생활을 기대한 내가 바보 같네.”     


 친구에게 여러 통의 카톡이 와 있었다. 나는 “아직 입학한 지 얼마 안 돼서 그런 거 아닐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거야.”라는 답장을 보냈다.      


 “아니야. 고등학교 친구들이랑 다르게 보이지 않는 벽이 있는 것 같아. 친해지기도 어렵고. 겉돌고 있는 것 같달까?”     


  친구에게 다시 카톡이 와 있었다. “이제 막 알게 된 사이인데 고등학교 때 친구들 같을 수는 없지. 너는 고등학교 친구랑 대학교 친구들이랑 놀게 되면 누구랑 놀 건데? 고등학교 친구들 아니야?”라는 질문을 하였다. 친구는 “당연히 고등학교 친구랑 놀지.”라는 답장이 돌아왔다. “대학교 친구들도 같은 마음인 거지. 지금 당장은 어색해도 시간 지나면 괜찮아질 거야.”라고 친구에게 말해주었다. “그래도···.”라고 친구는 말끝을 흐렸다.


 이러한 대화 내용이 반 년간 지속되었다. 힘든 일이 있거나 속상한 일이 있을 때마다 친구는 나에게 카톡을 하며 넋풀이를 하였다. 친구는 자신이 얼마나 힘들고 속상한지 나에게 인정받고 싶어하는 것 같았다. 그렇게 나는 친구의 감정 쓰레기통이 되어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친구에게 카톡이 와 있는 것이 무서워졌다. 또 오늘은 어떤 일로 얼마나 불만을 토해낼까? 기가 빨리는 느낌을 받았다. 나는 친구의 연락에 답장을 갈수록 늦게 했다. 그러면서 서서히 연락을 피하기 시작했다.


 코로나가 본격적으로 기승을 부리기 시작한 2020년. 사회적 거리 두기 정책에 따라 사람들의 칩거 생활이 시작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외부에서 활동을 하지 못하자 집에서 핸드폰으로 많은 시간을 보냈다. 이러한 상황에 힘입어 MBTI 테스트가 트위터, 인스타그램 등 SNS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MBTI 테스트는 마이어스와 브릭스가 정신분석학자인 카를 융의 심리 유형론을 근거로 개발한 성격 유형 검사 도구이다. MBTI는 개인마다 태도와 인식, 판단 기능에서 각자 선호하는 방식의 차이를 4가지 선호 지표로 나타낸다. 


 이 4가지 지표에서 많은 사람들이 판단 기능을 나타내는 사고-감정(T-F)에 많은 흥미를 보였다. 사고-감정(T-F)에 따른 반응 차이로 다양한 밈이 만들어졌다. 나는 그 밈들 중에 ‘슬픔을 나누면?’이라는 질문에 주목해 보고 싶다.      


 감정 F의 사람들은 “슬픔을 나누면?”이라는 질문에 슬픔이 반이 된다고 대답하였다. 그들은 슬픔을 공유하여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사고 T의 사람들은 슬픈 이야기를 서로 주고받으면 슬픔이 두 배가 된다고 대답하였다. 재미로 보는 밈이지만 어떠한 대답이 맞는 대답일까?


 우리는 삶을 살아가며 누군가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그 이야기가 행복한 이야기라면 함께 기쁨을 나눈다. 슬픈 이야기라면 다른 사람의 위로로 힘을 얻기도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되지 않는다. 슬픔뿐만 아니라 모든 감정들은 나누면 전염되어 커진다. 이것을 ‘감정 전염’이라고 한다.


 감정 전염이란 다른 사람의 얼굴 표정, 말투, 목소리, 자세 등을 무의식적으로 모방하고 자신과 일치시키면서 감정적으로 동화되는 것을 의미한다. 아주 짧은 순간에도 한 사람의 감정이 다른 사람에게 쉽게 전염된다. 내가 나의 감정을 누군가에게 전염시킬 수도 있으며, 다른 누군가가 나에게 감정을 전염시킬 수도 있다.

      

 친구가 나에게 한 넋풀이 역시 부정적인 감정을 전염시키는 행위이다. 또한 이런 상황을 한 번씩 겪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친구들과 다 함께 모여 놀 때가 있다. 그 모임 사이에 화가 나 있는 친구가 있거나 슬픔에 잠긴 친구가 있다. 그렇다면 다들 그 친구의 눈치를 본다. 그 모임의 분위기는 놀기 위한 화기애애한 분위기와는 거리가 멀다. 먹구름이 드리운 것처럼 어두워진 분위기이다.


 감정이 안 좋은 친구의 에너지는 생각보다 강력하다. 한 사람이 모임 전체 분위기를 좌지우지한다. 한 사람의 부정적인 에너지는 함께 있는 사람 모두의 기분을 가라앉힌다. 이 상황에서는 그 친구의 기분이 좋아지지 않는다면 그날 모임은 즐거움보다는 불편하다는 느낌으로 끝이 난다.      


 특히 공감 능력이 뛰어나거나 사람이나 자신의 중심이 단단하게 서 있지 않는 사람이라면 타인의 감정에 더 쉽게 전염되어 버린다. 이러한 사람들은 종종 다른 누군가에게 감정이 전염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내 감정이 왜 안 좋은지 눈치 채지 못한다. 타인의 감정을 짊어지고 쉽게 지쳐버린다. 심지어 자신이 감정기복이 심한 사람이라고 오해하기도 한다.      


 당신은 감정을 전염시키는 사람인가? 전염 당하는 사람인가? 만약 당신이 부정적인 감정을 전염시키는 사람이라면 당신의 행동은 당신에게 아무런 이득도 주지 못한다. 당신이 지금 얼마만큼 힘든지, 불만스러운지, 괴로운지를 밖으로 표현해도 상황은 전혀 달라지지 않는다. 그러한 말을 처음 꺼내기 시작했을 때는 당신의 가까운 사람들이 당신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공감하며 같이 화내 줄 수도 있다. 하지만 습관적으로 부정적인 감정을 토해내고 있다면 당신의 그러한 말버릇은 서서히 당신의 관계를 망쳐갈 것이다.


 반대로 감정을 전염 당하는 사람이라면 남의 감정을 당신이 감당해야 할 의무는 없다. 누군가의 감정 쓰레기통이 되지 마라. 부정적인 감정은 당신에게 좋지 못한 감정을 주는 그 사람 본인이 해결해야 할 문제이다. 누군가의 부정적인 에너지가 당신의 하루 기분마저 망친다면 서서히 거리를 두고 멀어져라. 모든 감정은 아주 짧은 시간에 한 사람에게서 다른 사람에게 전염된다. 당신의 안 좋은 기분이 다른 누군가에게 의해 생겨난 것으로 판단된다면 과감하게 흘려보내라. 타인의 감정을 책임지지 않을 때 우리는 우리의 삶은 보다 더 평온하고 즐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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