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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이루미 Jul 05. 2022

자존감과 자존심은 다르다

자신을 함부로 대하는 너에게

 “가난한 집에 태어날 때 특히 난처한 것은 자존심 강하게 태어나는 일이다.”

- 보브나르그     


 커뮤니티에서 한 글을 읽었다. 사연자는 자기 자신을 외모, 업무 등 모든 면에서 괜찮은 사람으로 바라보고 있다고 밝혔다. 그래서 자신을 대하는 상대방들의 태도가 가볍게 느껴질 때 불쾌한 감정이 든다고 말했다. 자존감을 고의로 낮춰야 하는지 고민을 털어놓았다.     


 위의 고민 글은 자존감과 자존심의 의미를 잘 구분하지 못한 사례이다. 사연자가 상대방의 태도에 불쾌한 감정을 느끼는 것은 높은 자존감 때문이 아니라 센 자존심이 때문이다. 자존감과 자존심. 이제는 미디어에서 흔히 다루는 주제이다. 당신은 자존감과 자존심의 명확한 차이를 아는가? 많은 사람들이 글자가 비슷하다보니 자존감과 자존심을 혼용해서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자존’은 자신의 품의를 스스로 지킴이라는 사전적 의미를 가진다. ‘감’과 ‘심’ 한 글자 차이로 이 둘의 의미는 크게 달라진다. 자존감과 자존심의 의미 차이는 ‘누가 주체’가 되는가이다. 자존감은 주체는 나 자신이다. 다시 말해 내가 스스로 생각하는 나를 의미한다. 반면 자존심은 타인이 주체가 된다. 자존심은 타인에게 존중받고자 하는 마음으로 누군가가 나를 존중함으로 채워질 수 있다. 자존심은 반드시 타인이 있어야만 표출되는 마음인 것이다.


 그렇다면 자존감이 높은 상태는 어떠한 상태인 것일까? 타인이 나에 대해서 뭐라고 평가를 하건 더 나아가 비하를 하건 욕을 하던 감정적으로 흔들리지 않을 수 있는 것이 바로 자존감이 높은 상태이다. 누군가의 평가에 감정적으로 동요가 일어나는 사람은 자존심이 센 것이지 자존감이 높은 상태가 아니다.     


  5년 전, 스트레스를 받을 때마다 음식을 먹는 버릇이 있었다. 그때는 편의점 오전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을 때였다. 가족과의 관계에서 온 스트레스, 내 삶의 방향성에 대한 스트레스,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진상 손님들에게 겪는 일 스트레스 등 모든 스트레스를 음식으로 풀어나갔다. 하루 아르바이트 시간이 7시간이었는데 과장하지 않고 2시간 시급을 편의점에서 군것질을 구매하는데 사용하였다. 편의점에서 나오는 폐기 역시 내가 다 먹어 치워버렸다. 알바 하는 곳 근처에 뷔페가 있었는데 그 뷔페도 수시로 들락날락하였다.


 어마무시하게 먹자 살이 기하급수적으로 찌기 시작했다. 나 스스로 살이 쪘다는 상태를 자각하였을 때는 이미 내 체중은 60킬로그램을 훌쩍 넘었을 때였다. 이중 턱이 생기고 떡대가 생기고 배가 심하게 나오니 자존감이 떨어졌다. 음식을 조절하지 못하는 내가 한심했으며 체중이 많이 나가는 내가 너무 미워보였다. 어김없이 알바를 하는 날이었다. 점장님이 날 보시고 살짝 눈살을 찌푸리며 이야기했다.     


  너는 나이가 몇 살인데 이렇게 배가 나왔어?
어후 먹는 것 좀 봐라.
너 계속 이런 식으로 먹으면 나중에 결혼에서 애 배잖아?
남편한테 사랑 못 받고 산다.”     

 

 지금 이러한 소리를 듣게 된다면 ‘사람이 이렇게 무례할 수 있구나.’라고 상대방의 태도에 초점을 맞출 것이다. 하지만 그 당시의 나는 상대방의 태도가 아닌 말에 초점이 맞춰졌다. ‘내가 얼마나 뚱뚱해보이면 저런 소리까지 들을까.’라고 생각하며 점장님이 아닌 나에게 화가 났다. 나 스스로를 자책했으며 의기소침한 모습을 숨길 수가 없었다. 

 한 번은 또 이러한 경험도 있다. 아르바이트를 함께 하던 친구들과 술자리를 가지게 되었다. 외모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한 동생이 나에게 말했다. 

누나 정도면 꽤 괜찮게 생긴 편이지. 근데.
웃을 때 얼굴이 너무 크지.


지금 이 말을 들었더라면 “원래 모든 사람이 웃을 때면 얼굴이 조금씩 커지는 법이지.”라고 웃으며 대답할 것이다. 하지만 그 당시의 나는 그 동생의 말을 들은 이후 일주일간 물 이외 아무런 음식을 먹지 않았다. ‘내가 뚱뚱해서 그런 소리까지 듣는 구나’라고 자기 비하를 하며 나를 책망하기 바빴다.     

 

 자존감이 낮다면 과거의 나처럼 타인의 시선이나 평가에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 내가 스스로 나를 인정하지 않으니 다른 사람을 말에 휘둘리기 쉽다. 또한, 자존감은 낮고 자존심만 센 경우 과시욕과 허풍이 생겨나기도 한다. ‘소통’과 ‘목소리’로 여러 곳에서 강연을 하고 있는 스타강사 김창옥은 한 강연에서 이러한 말한다.


인간은 자아존중감이 낮으면 자기를 보호하려고 자존심에 방패가 생깁니다.
우리를 뭔가 보여줄게 필요하거든요.


  <직업의 모든 것>이라는 유튜브 채널이 있다. 우리나라의 다양한 직업인을 소개하는 인터뷰 채널로 ‘제갈건’이라는 인물을 인터뷰한 적이 있다. 제갈건은 과거 2000년대 초반 서대문구에서 주먹으로 유명한 소위 말하는 일진이었다고 한다. 현재는 과거의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사회복지사로 다른 사람들을 도우며 살고 있다. 그는 인터뷰에서 학창 시절에 온몸에 문신을 한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제가 만약에 자존감이 높은 사람이었다면 그때 아무리 친구가 저를 데리고 가서 문신을 하자고 해도 끝끝내 거절하고 안 했어도 됐어요. 근데 생각을 해보니까 문신이란 게 대다수가 세 보이려고 하는 거 잖아요 보통의 그런 문신자들 경우에는 자존감은 낮은데 자존심은 높은 경우가 많더라고요. 낮은 자존감과 높은 자존심의 간극이 클수록 문신이 더 광범위하고 더 위압적이고 더 크기가 크고 이런 경향성을 보이더라고요. 저 역시 그랬고요.”     


 우리는 그 누구도 알맹이 없는 빈 껍데기 같은 삶을 살아가고 싶지 않다. 하지만 알맹이의 근원인 자존감이 낮으면 자격지심이 생긴다. 나아가 열등감, 자기비하, 과시욕 같은 좋지 못한 마음들이 나를 에둘러 싼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스스로를 사랑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자존감을 높일 수 있을까?


 과거의 나는 자존감이 낮으니 하루에도 수 십 번씩 내가 얼마나 보잘것없는 사람인지 스스로에게 인증해 보이려고 부단히 애를 쓰고는 했다. 누군가가 나를 칭찬하면 부정하기 바빴고, 누군가가 나를 좋아하면 의심하기 바빴다. 그때의 나는 누군가에게 그럴듯해 보여야지만 자존감이 높을 수 있고, 학벌이 높거나, 커리어가 좋고 무언가를 성공한 사람만이 자기 확신을 가질 수 있는 것이라고 믿었었다.      


 자존감 스스로 품위를 지키고 자기를 존중하는 마음.

 자기 확신 스스로를 굳게 믿음 또는 그런 마음.     


 우연히 자존감과 자기 확신의 정확한 뜻을 알게 된 날, ‘스스로’라는 단어에 눈을 뗄 수 없었다. 그때 생각이 들었다. ‘아, 내가 날 존중하지 못하고 날 믿지 못하면 누가 날 존중하고 믿어줄까? 내가 날 존중하지 못하면 그 누구의 존중도 받지 못하겠구나.’라고


 자존감은 누가 대신 만들어줄 수 없다. 누군가 대신 당신의 자존감을 만들어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반대로 누군가 당신의 자존감을 부술 수도 있다는 이야기이다. 흔히 연인과의 관계에서 자존감을 채우는 관계가 이러하다. 이러한 관계로 채운 자존감은 일시적인 허상일뿐 자신의 자존감이 정말 올라가는 것이 아니다.

 진정한 자존감이란 내가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이다. 또한, 괜한 자존심은 때때로 화를 부를 수도 있다. 나는 당신이 타인의 존중을 갈구하는 자존심 센 사람이 아닌 스스로를 사랑하는 자존감이 높은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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