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영원한 큰오빠 안녕.
당연함의 시간들이 사람이 갖게 되는 착각 중 하나라는 걸 깨달았다.
얼마 전, 가족의 결혼식에서 동생과 나눈 대화 중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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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 내 결혼식 때 축의금 받는 거 누구한테 해달라고 해야 하지?
나: ○○오빠랑 ○○오빠한테 부탁해 봐야지~
동생: 그런가? 그래야겠다. 우리끼리니까 나중에 부탁해 봐야지.
나: 웅웅. 오빠들이 우리 아껴주니까 기특해할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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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다음 날 이 당연한 듯했던 대화를 한 우리를 자책했다. 곁에 있는 게 너무도 당연하다 생각해서 '소중하다.'보다 '앞으로 시간이 많다.'라고 착각했다.
오늘 출근해서 나간 사람이 집에 돌아오는 게 당연한 하루들을 보냈는데, 그 당연함이 계란껍데기 깨지듯이 순식간에 깨져버렸다.
집안어른들의 당연함보다 오빠의 당연함이 먼저 깨져버린 게 현실감이 제로지만, 현실은 냉정했다. 내 곁은 비어져버렸는데 세상은 탓할 사람을 찾고 가족을 잃은 슬픔 따위는 알바 아니라는듯한 세상의 태도들에 가족들의 공허함은 더 커진다.
모든 게 부질없다.
차리리 나였으면 하고 수차례 생각했다.
오빠는 너무 열심히 산 사람이니까, 비교적 덜 열심히 산 내가 사고가 났어야 했다고 생각했다.
내가 사고가 났다면 오빠보단 위험빈도수가 적으니까 작게 나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왜 오빠한테 이런 일이 일어난 건지.
내가 살뜰한 동생이 아니었음에 미안했다. 나는 다른 가족들에 비해 그래도 운이 좋게 최근 3년 동안 거의 매일 얼굴을 보면서 지냈다. 그럼에도 살갑지 못했다. 서로 소중하게 생각하고 가족으로 아끼는 건 알았으나 더 다가가지 못했다. 너무 조심스러워했다. 하루에 한 번은 웃으면서 인사하고 한두 달에 한 번은 오빠의 고민도 물어볼걸 그러지 못했다.
고마운 게 너무도 많은 사람,
오빠는 내가 못한 걸 해주는 사람이었다.
서로 편히 대화하거나 그런 시간들이 많지는 않았지만,
나를 부모님보다 이해해 준 오빠였다.
지나가다 내가 친구들이랑 밥 먹는 모습을 보면 챙겨주고 꼭 인사하고 갔고, 책을 한두 권씩 추천해 줬고, 고민이 있는지, 앞으로의 계획은 뭔지 또 내가 앞으로 고쳐나갔으면 하는 부분이 있으면 말해주던 오빠였다.
어릴 때부터 몸이 아픈 나를 , 나로 인해 가족들의 관심을 뺏긴 내 동생을 항상 먼저 챙기는 오빠였다.
자기나 부모님이나 언니들한테는 돈을 잘 안 쓰는 편이었다고 한다. 동생들인 우리는 전혀 몰랐다. 동생들한테는 돈도 마음도 시간도 아낌없이 주는 오빠였다.
고맙다는 말을 온 세상말로 다 말해줘도 모자라다.
오빠가 없다는 현실이 아직 느껴지지 않는다. 집도 가까웠고 같은 지역에 있는 것만으로도 보호막 같은 존재였다. 보호막이 깨졌다니 믿을 수 없다.
오빠의 빈자리를 슬퍼하는 사람이 많았다. 소식이 전해지는 게 싫으시다며 알리지 않았음에도 세상이 슬퍼하듯 하늘도 비가 내리는 그날, 여러 사람들에게도 비가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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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 안녕.
이건 시간밖에 약이 없어서
시간이 많이 흐르면
가끔은 비가 멈추는 날이 올 테지.
그러다
때때로 비가 오겠지.
아직은 그 비가 계속 오고 있지만
그래도
지금은 먹구름아래 그대로 있고 싶어.
그렇게 있다가
우리들이 늙고 죽기 전까지
오빠의 안부를 물으러 종종 오빠가 있는 곳에 갈게.
하늘에서 만날 즈음에
우리가 허약할 때 일 텐데,
또 튼튼한 오빠가 우리를 챙겨주느라
무리할까 봐 벌써 걱정이네:)
이번에 살갑게 굴지 못한 것들은
차곡차곡 모아서
세월이 너스레가 될 즈음에
가서 다정한 동생 할게:)
기다려줘라.
이번 한 번만 더 동생 떼쓰는 거 받아주면 안 될까?
다음번에도 우리 다섯 명이서 , 아니 언니 둘까지 일곱 명이서 복작복작 거리며 지낼 수 있게 같이 다시 태어나자.
진짜 안녕. 내 큰 오빠야.
(이자린 평생 오빠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