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마시절의 나, 약간이나마 어른이 된 나 (f. 어린 시절/미용실)
인생을 살면서 한 번쯤은 미친 듯이 나를 이해하려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는 말을
인스타그램에서 지나가듯 본 적이 있다.
그 문장을 처음 봤을 때는
나 정도면 남들보다
나에 대해 생각해 본 편에 속하지 않나? 하고
괜히 우쭐해지는 마음이 들기도 했다.
그런데 문득 이런 의문이 따라왔다.
나를 파고든다는 건 내 가치관을 파고들고, 내 중심을 흔드는 일이 아닐까?
만약 그게 맞다면,
나는 한 번도 나를 제대로 이해해 본 적이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늘 내 중심을 지키는 쪽을 선택하며 살아왔으니까.
어린 시절,
엄마 아빠 가게 근처에
작은 동네 미용실이 하나 있었다.
그곳에는
나와 동생을 유난히 잘 챙겨주고
애정 어린 눈으로 바라봐 주시던
남자 미용사 선생님이 계셨다.
정확하진 않지만,
그 당시에는 20대 초중반쯤 되셨던 것 같다.
지금은 남자 디자이너분들이 많지만
그 당시만 해도
남자 미용사는 흔하지 않았고,
다른 동네 아빠들이 놀러 오면
그분을 대놓고 멀리하는 모습도 종종 보였다.
어린 나에게도 느껴질 만큼
티가 났다.
다만,
같은 동네에 사는 아빠들은
피하지도, 욕하지도 않았다.
그 선생님은 아이들을 정말 좋아했고, 항상 웃는 모습을 보여주셨다.
마음씨와 행동이 유독 섬세했고,
남자라서 그런지
아빠들이 필요한 부분을 알아서 잘 챙겨주기도 했던 분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동네 아빠들이 동네 아이들에게
선입견을 심어주지 않으려고
나름대로 애쓰고 있었던 건 아닐까 싶다.
그 미용사 선생님도
분명 많이 힘드셨을 텐데..
아무리 주변에서 애써준다 해도
그 시절의 세상은
지금보다 훨씬 차별적이고
편견이 많았으니까.
가끔 눈이 빨갛게 부어 있거나
훌쩍거리다 멈춘 듯한 모습에
놀라 나와 동생이 인사를 하면,
아무 일 없다는 듯
활짝 웃어주시던 눈가의 주름이
아직도 선명하다.
얼마나 고단했을까.
‘내 중심이 흔들린다’는 건
어느 정도를 말하는 걸까,
그 생각을 하다 보니
이 어린 시절의 기억이
불쑥 떠올랐다.
그리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를 단단하게 만들기 위해서라도,
선입견이 가득한 세상과
한 번쯤은 제대로 맞닿아보는 시간이
나에게도 필요하지 않을까 하고.
어쩌면
나를 깊게 이해한다는 건
나 혼자만 들여다보는 일이 아니라
바쁜 부모님 대신
나를 믿어주고,
나를 드러내도 괜찮았던
그 동네 사람들을
한 명씩 기억 속에서 다시 만나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진짜 감사한 분들이 참 많았는데
나는 너무 오래
그걸 잊고 지냈다.
이제는
그분들을 하나씩 꺼내어
추억 속에서 다시 만나보려 한다.
그 시간을 통해
어떤 나를 마주하게 될지
아직은 잘 모르겠지만.
다음에는
어떤 사람을 만나
어떤 나를 이해하게 될까,
문득 그런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