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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바다 Aug 03. 2021

탱크

잊을 수 없는 영화

늦었다. 영화는 이미 시작되었다. 돌아서고 싶었다. 하지만 손에는 표가 있었고 영화관 안에는 동료 교사들이 있었다. 담임 업무를 젖히고 동료들과 같이 출발하지 않은 걸 후회했다. 나에게 영화를 본다는 것은 영화 제작사 로고가 뜨는 화면부터 보는 걸 뜻했다. 집에서 비디오 테이프로 영화를 봐도 그 원칙을 깬 일이 없는데 하물며 본영화 앞부분을 놓치다니 여간 찝찝한 게 아니었다. 1999년 3월 셋째 주 수요일 오후 네 시 무렵. 교사 동아리 영화감상부 활동이 있는 날이었다. 4년간 근무한 가원중학교를 떠나 구의중학교로 전근하여 한 달이 채 되지 않은지라 한 달에 한 번 퇴근 시각까지 당겨 가며 권장하는 동아리 활동을 빠질 수는 없었다. 유니폼을 입은 여성의 안내를 받아 허리를 숙이고 영화관 안에 들어가 후레쉬 불빛에 의지해 자리에 앉았다. 영화에 대한 기대는 접었다. 1,2분도 아니고 5분도 아니고 10여 분을 도대체 어디서 벌충한단 말인가.

끝났다. 강변 CGV 영화관의 스크린 옆쪽에 있는 문이 열렸다. 관객들이 줄을 서서 경사로를 따라 그 문으로 빠져나갔다. 다 나가고 나만 남았다. 유니폼 여성이 내 곁으로 와서 섰다. “고객님. 영화 상영이 끝났습니다.” “네. 제가요, 늦게 들어와서 앞부분을 못 봐서요, 다음 회에서 그 부분만 보고 나갈게요.” "그건 안 됩니다.” “영화 시작되면 빈 자리 찾아서 앉을게요.“ ”그러실 수 없습니다. 회사 방침상 안 됩니다.“ ”왜 안 된다는 거죠? 빈 자리가 많던데요. 누구한테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니잖아요.“ ”들어오는 문과 나가는 문이 별도로 있어서요.“ ”아. 그러면 끝까지 볼게요.“ ”그것도 안 됩니다. 지금 나가 주셔야 합니다.“ 결국 나왔지만 마음이 복잡해서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가게 되지 않았다. 1층에서 공중전화를 찾았다.

 

  “저예요.” “네, 선생님.” 전화를 받은 사람은 서울텔레콤 프러덕션의 PD였다. EBS 국어 강사인 나를 카메라 렌즈로 봐 오던 그에게 전화한 이유는 그가 영화광이기 때문이었다. 그는 연대 국문과를 나오고 시를 쓰면서 프러덕션에서 일을 하는 한편 영화에 조예가 깊어 MBC 라디오 음악 프로의 영화 코너에 출연하고 있었다. 나는 구의동 단칸방에서 밤에 라디오로 그의 목소리를 듣곤 했었다. "뭐가 이래요? 제가 지금 영화를 보고 나왔는데요, 영화관이 말이에요, 휴머니즘을 담은 영화를 틀어주고는 정작 자신들은 비인간적이에요. 두 시간 동안 인생을 아름답게 보라고 홀려 놓고 불 켜지자마자 자본 논리로 사람을 쫓아내는 이런 간극을 어떻게 생각해요?“ 그는 웃었다. ”선생님. 영화는 태생부터 상업자본이에요. 제작부터 배급까지 그거 빼고는 성립할 수 없는 상품이에요.“ 전화를 끊고 차 있는 데로 가면서 마음이 더 복잡해졌다.

 

  열등감. 영화 보면서 생긴 감정은 이것이었건만 애먼 사람한테 애먼 내용으로 툴툴댔구나 하는 자괴감이 들었다. 귀도가 아들 조수아한테 물려준 유산은 ‘인생을 아름답게 보는 눈’이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가 놀이터가 되고 게슈타포가 게이머가 된 덕분에 조수아는 아빠의 마지막 행진을 웃으면서 지켜볼 수 있었다. 참혹한 인생을 한판 게임으로 변장시키느라 수고한 귀도. 아버지로서 어린 아들을 보호하느라 그가 벌인 연극은 장대하고 거룩했다. 그 귀도 옆에 서니 나는 죄인이었다. 남편이 부도를 내고 한국을 떠난 지 일 년 반이 지나는 동안 일곱 살 네 살에 아빠를 못 보게 된 두 사내애한테 나는 얼마나 무심했던가. 밤마다 집으로 찾아와 두 애가 듣는 데서 남편 있는 데를 대라며 눌러앉았던 중년 여성, 수업하고 오면 책상 위에 쌓여 있던, 은행과 카드 회사 전화 메모지들, 교무실로 들어와 소리소리 지르던 초로의 남성, 주말이면 찾아와 자신이 얼마나 비참해졌는지를 하소연하던 남편 친구, 차압당하고 돌아오는 절반의 월급, EBS 강사료만이 살길이어서 스튜디오 한구석에 두 애들을 앉혀 놓고 스탭들 눈치 보며 찍은 강의들, 주채권자에게 중곡동 집을 내주고 화장실도 부엌도 없는 구의동 단칸방으로 옮겨앉은 첫날 밤......평범한 사정이 아니었대도 귀도 앞에서는 명함도 못 내밀 터였다. 조수아만한 두 애들이 그 난장판에서 인생을 어떻게 볼 것인지를 당신은 생각했어야 했다고 귀도는 말할 것이었다.

 

  영화 보면서 귀도라는 인물에 눌렸다. 답답했다. 영화가 끝났는데 안 일어난 건 귀도를 더 알고 싶었던 한편 그 심정을 돌볼 시간이 필요해서이기도 했다. 부모가 돼서 자식을 보호한다는 것이 이런 식으로까지 끝간 데 없어야 하나 기운이 빠졌다. 내가 정신 똑바로 차리면 되었으려나, 그렇게 정신 차린 뒤 두 애한테, 지금 우리는 탱크가 걸린 게임을 시작했다고 신나했어야 했나. 영화관을 나오니 다시 현실이었다. 누군가에게, 정말 인생이 아름다우냐 시비를 걸고 싶었다. 그래서 전화해 놓고 영화관 행태를 성토했다. 속을 들킬까 봐 엉뚱한 걸로 논쟁을 하려 들었다. 다음 날 동료 교사들은 학교에서 나에게 물었다. 영화 끝나고도 못 봤는데 영화를 본 거냐고. 봤다고 하니 영화 정말 좋지 않았냐고 물었다. 나는 그렇다고 했다. 좋았던 이유를 묻지 않아 줘서 다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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