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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 trainer Mar 21. 2024

3천 권의 책을 읽을 때까지는


지인들과의 모임에서 건강과 운동으로 이야기꽃이 피더니 어느 사이 투자 얘기로 화제가 옮겨졌다. 주식, 코인, 부동산 등 여러 시장 흐름과 전망 그리고 각자경험담이 쏟아져 나왔다. 난 아는 게 별로 없어서 조용히 듣고 있었는데 모두들 내게 한 마디 하라고 했다. 무슨 말을 할까 망설이다 짧게 말했다. "내가 생각하는 가장 효율적인 투자는 책입니." 이 말에 사람들이 얼마나 수긍할지 모르지만 난 최소의 비용으로 최고의 가치를 얻는 투자는 책(독서)라고 생각한다.


예전에 일이 잘못되어 바닥으로 내려갔을 때, 내겐   한 장 보태사람도 조언 구할 사람도 없었다. 이리저리 찢긴 내면도 바닥이었다. 이 난관을 어떻게 견디며 일어설 힘을 키울까? 고민 끝에 얻은 결론은 책이었다. 이후 미친 듯이 책을 찾아 읽었다. 책을 통해 위로받으며 내실을 다졌다. 그리고 힘을 얻어 다시 일어섰다.
책은 저자가 오랜 시간 경험하고 깨달은 것을 심혈을 기울여 쓴 글이다. 독서는 약간의 돈과 시간을 투자해 그것을 모두 얻는 것이니 이 얼마나 효율적인 투자인가? 특히 가진 것 없는 사람이 삶을 바꾸고자 할 때 독서는 최고의 투자 방법이다.


나는  읽기를 좋아한다. 보증건으로 바닥에 떨어져 방황했던 때를 제외하고 늘 책을 가까이하며 살아왔다. 이제 자연스러운 습관이 되어 어쩌다 책을 읽지 못하게 되는 날엔 뭔가를 빠트리고 온 것처럼 허전하다. 책과 가까이 지내지만 이제까지 누구에게 먼저  얘기를 하거나 소개한 적은 없다. 책에 대한 얘기를 하려면 내 독서 습관에 영향을 끼친 두 번째 사람 Y선배가 생각나 입이 다물어지기 때문이다.

학창 시절 친구와의 술자리에서 만나 알게 된 Y, 얼마 후 친구 심부름으로 선배 자취방에 갔다가 발 디딜 틈이 없을 만큼 가득 찬 책을 보고 깜짝 놀랐다. 술을 무척 좋아하는 잡기에 능한 사람이라고 들었는데 알고 보니 그는 어마어마한 독서광이었다. 그 일을 계기로 내가 가끔씩 소주를 들고 찾아가 책에 관해 물어보면, 선배는 라면을 끓여 내오며 책 얘긴 하지 말고 술이나 마시자며 화제를 돌렸다. 그렇게 하다 친해져 알게 됐는데 그가 책을 가까이하게 된 것은 부친의 영향이었다.     

선배 부친은 중학교 졸업하기도 힘든 시절 서울대를 나온 수재였지만, 625 때 부상당한 인민군을 보호했던 祖父의 이력으로 인해 높은 곳에 오르지 못하고 사립 중등 교사밖에 할 수 없었다 한다. 부친께선 가슴속 울분을 책으로 달래셨고 책으로 외아들인 선배를 양육했는데, 유언처럼 3천 권의 책을 읽을 때까지는 책에 대해서나 사람에 대해서 말하지 말라고 하셨단다.

용돈이 생기면 먼저 책을 사는 선배는 이후에도 책 얘기나 사람 평은 일절 하지 않았다. 이듬해 그가 농협에 취직해 떠나면서 인연은 끊겼지만, 선배의 사람과 책에 관한 태도는 내 삶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선배를 따라 나도 용돈의 많은 부분을 도서 구입에 썼으며 차츰 독서의 폭을 넓히고 깊이를 더하게 됐다.
 
왜 그토록 3천 권의 독서를 강조했을까? 그 오랜 궁금증은 내가 30년 세월을 통해 그 길을 걸으면서 풀어졌다. 3천 독서는 오랜 시간과 정성이 어우러져 이르게 되는 힘든 여정이다. 그 여정을 통해 세상 귀한 지혜와 훌륭한 이들을 만나며 자신의 부족한 점을 깨닫게 되기에, 그 단계를 제대로 거치고 나면 책이나 사람에 대해 함부로 말할 수 없게 된다. 그 3천 독서에는 아들이 지혜로운 자가 되길 바라는 아버지의 깊은 사랑이 담겨 있었던 것이다.       

얼마 전 우연히 선배 소식을 들었는데, A시에 살고 있으며 요즘은 산의 아름다움에 깊이 빠져 산행을 한다고 한다. 연락처를 알아내 선배에게 안부 인사를 하며 만나서 책에 대해 인생에 대해 조언을 듣고 싶다고 했다. 선배도 가끔 그 시절이 생각난다며 한 번 만나자고 답했다. 그는 어떤 삶을 살아왔을까. 벌써부터 만날 날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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