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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토 Nov 22. 2022

미지와의 조우 (1977)

우리에겐 모두 경이로웠던 첫 순간이 있었다


워낙 대단하고 유명한 필모그래피가 많은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중 씨네필이라면 봐야 한다는 그 영화 <미지와의 조우>를 봤습니다. 스필버그 감독 작품도 사실 제가 안 본 게 굉장히 많은데 이걸 보니까 시네필 된 것 같고 뿌듯하네요.


77년에 이런 영화가 만들어질 수 있다고? 이런 표현이 가능하다고? 하면서 놀라지는 않았습니다 사실... '이게 옛날 영화라고' 소리가 나오는 작품 최고봉은 역시 스페이스 오디세이이기 때문에... 기준이 많이 높아진 것 같아요. 그리고 77년에 나온 또 다른 블록버스터 대작이 있죠. 바로 <스타워즈> 인데요, 우주선과 외계인, 우주를 배경으로 한 또 다른 세계를 상상하고 구현해 낸 수준이 당시 웬만한 영화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세련되고 어마어마한 스케일을 자랑하지요. <미지와의 조우>도 비슷하면서도 다른 측면이 있는데요, 참으로 77년은 대단한 해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2022년을 살아가며 현대의 블록버스터 영화들에 익숙해진 입장에서, 외계인과 대면하는 이야기는 그렇게 특별하고 신비로운 이야기가 아니게 되었습니다. SF라는 장르 타이틀을 달고 나오지 않더라도, 이미 너무 많은 작품들이 우주적 스케일을 배경으로 하고 있고, 외계인은 자연스럽게 등장하는 단골손님이 된 것 같아요. 마블 시리즈만 해도 그렇지요. 그들은 당연히 인간과 닮았고, 자연스럽게 영어를 사용하고, 인간의 적이 되기도 하지만 곧 친숙한 존재로서 우리 사이에 스며들어 있습니다. 


넘쳐나는 미디어 속에서 우주나 외계 생명체가 우리에게 익숙해질수록, 많은 것들에 무감각해지는 것 같습니다. 별이 쏟아지는 밤하늘을 바라볼 때의 경이감을, 우리가 사는 세상 밖의 미지의 존재와 처음으로 마주하는 것이 어떤 느낌일까 상상할 때의 벅차오름을 잊게 되는 것 같아요. <미지와의 조우>는 바로 그런 무감각해진 감각들을 돌려놓는 영화였습니다. 



영화 스크린을 통해서 보게 되는 것이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번쩍거리며 지나가는 UFO, 하늘에서부터 거대한 그림자를 드리우는 우주선, 그곳에서 내리는 '상상 속 외계인의 전형'처럼 생긴 외계인들... 그러나 그것들이 처음부터 당연하고 익숙한 것이었을까요. 

처음으로 어떤 새로운 세계를 맞닥뜨릴 때의 경이로움과 황홀함, 두려움인지 설렘인지 기쁨인지 모를, 요동치는 심장... 잊고 있었을 뿐 우리 모두 언젠가 한 번쯤 느꼈던 그 감각을 이 영화는 되살려 줍니다. 미지와 조우하는 순간을 직접 겪는 극 중 사람들의 눈으로, 이 영화를 극장에서 보던 77년 당시 관객들의 눈으로요. 그 점에서 이 영화가 대단하다고 느꼈습니다. 시대가 변하고 처음이었던 것이 익숙하고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이게 되어도, 우리가 새로운 것을 경험할 때 느끼는 경이로움의 감각 자체는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미지와의 조우>는 그 감각 자체를 전달하는 힘이 있는 영화입니다.



<미지와의 조우>를 보면서 여러모로 올해 개봉한 영화 <놉>이 많이 떠올랐습니다. UFO가 지나갈 때 그 주변은 정전이 되는 것이나, 돌풍에 휩쓸리는 것, 구름 속에서 형체를 숨기고 빛으로만 드러나는 모습이 <놉>에 나온 비행체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둘 다 UFO를 소재로 했으니 영향을 받지 않았으려나요...

예술에 관한 영화로 느껴진다는 점도 비슷한 것 같았습니다. <놉>에 대해서는 여기서 길게 소개할 수는 없지만 결국 '영화에 관한 영화'라고 할 수 있는데요. <미지와의 조우>에서도 외계인과 소통하는 방식이 음악과 형형색색의 빛이라는 점, UFO를 목격했던 사람들이 외계인이 도착할 장소에 초대받는 방식이 일종의 예술적 영감이라는 점에서 이건 예술에 대한 영화이구나 싶었습니다. 



예술은 일상을 벗어나 새로운 세계로 진입하게 하는 창구이기도 합니다. 그러니 극 중에서 사람들이 외계인과 조우함으로써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는 감각은 곧 우리가 음악을 통해, 글과 그림을 통해, 영화를 통해 느끼는 감각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요. 그것이 무엇인지 '이해'하지 않더라도 무언가 마음에 와닿는 느낌, 소통하는 감각을요. 극 중에서 외계 우주선과 그들 앞에 선 사람들은 서로 음계를 주고받으며 대화합니다. 그 소리가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 그들이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는지는 아무도 몰라요. 그들의 대화는 그 자체로 하나의 음악이 됩니다. 그것의 아름다움을 서로 나누었다는 것만으로 양측이 평화롭게 교류하고자 하는 의지는 통한 것이지요.


https://youtu.be/W9pFv20Bhck

음악으로 대화하는 바로 그 장면의 음악...


예술은 극 중에서 외계인과의 만남의 수단이면서, 극 중의 만남(close encounter) 자체가 어떤 예술을 처음 접하는 우리에 대한 비유이기도 합니다. 그 예술을 영화에 한정해서 생각해도 좋을 것 같아요. 외계인이 빛과 소리로 나타나듯이 영화가 빛과 소리로 이루어진 예술이니까요. 


극 중에서 영화 <피노키오>에 대한 언급이 나오고, 영화 말미에 이르러서는 <피노키오> ost가 삽입되기도 합니다. 등장인물 중 '로이'라는 인물이 어릴 적 피노키오를 보고 열광했던 것을 떠올리며 자신의 아이들에게 피노키오를 보지 않겠느냐 말합니다. 별 거 아닌 듯 지나가는 대사이지만 로이라는 캐릭터를 압축해서 보여주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최초로 예술을 접한 순간을 간직하며 살아가는 그는 UFO가 출몰했을 때 앞장서서 하늘을 바라보며 신비로움을 쫓는 사람이었고, 마지막에는 결국 일반인이지만 통제된 구역에 들어와 외계인과 접촉하는 순간의 경외감을 눈앞에서 체험하는 사람이 됩니다.


영화가 마무리되며 배경음악에 피노키오 ost인 'When you wish apon a star'의 멜로디가 섞여 들어올 때 이렇게 벅찰 수 있나 싶었습니다. 마치 어릴 적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처음 본 순간으로 돌아간 듯이요. 저는 어쩌다 보니 이렇게 영화를 좋아하는 인간으로 성장했는데 아마 제가 최초로 본 영화가 디즈니 애니메이션이었을 거예요. 잊고 있었지만 내 안에도 그때 느꼈던 어릴 적 순수했던 감탄이 남아 있었던 듯합니다. 영화 속 외계 우주선이 아름다운 노래를 들려주는 것을 바라보던 사람들이 느낀 감정도 그런 것이 아니었을까요. 경험하던 좁은 세계 밖으로 처음 발을 내딛던 순간의 어린아이가 된 것 같은 체험을, 어른이 된 우리에게도 다시 일깨워 주는 것. 그것이 영화가 할 수 있는, 예술이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아름다운 경지인 것 같습니다.



너무 신기한 게 리뷰를 8주째 쓰면서, 볼 때는 별생각 없었는데 몇 번씩 곱씹어 가며 글로 쓰다 보니까 좋아지는 영화가 많은 듯해요. <미지와의 조우>도 담백하고 현대 블록버스터 영화 같은 재미를 기대하기에는 어려운데, 담백한 맛으로 그 안에는 진한 감정을 깊이 있게 담아낸 것 같다고 할까요(마치라잌 사골국물...) 우주를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시대를 상상하는 데 익숙해진 지금, 조그마한 지구에 발붙어 살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하늘을 올려다볼 때의 감동적인 아름다움을 다시 느끼게 해 줘서 고마운 영화라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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