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깨달음의 샘물 Dec 15. 2023

슬픔과 한을 간직한 나라, "리투아니아"

Chapter 4. 빌뉴스의 몽마르트에 머물기를 거부한 "우주피스공화국"

# 첫째 마당: 우주피스 공화국 알아가기



1. 우주피스 공화국(?)



벨라루스(Belraus)와 리투아니아의 국경지역에서 발원(發源)하여 79km를 달려온 빌넬레(Vilnelė) 강은 빌뉴스의 동쪽 지역을 따라 빌뉴스를 휘감고 돌아서는 네리스(Neris) 강으로 흘러든다. 아래의 빌뉴스 지도를 가지고 이야기하면 지도 위쪽에 비교적 직선에 가깝게 흘러가는 푸른색의 강이 네리스 강이고, 지도 오른쪽에 구불구불 굽이쳐 흐르는 푸른색의 강이 빌넬레 강이다. 지도상으로도 확연히 드러나듯이 네리스강이 리투아니아를 관통하는 강으로 강폭 또한 상당히 넓다면, 빌넬레 강은 우리네 관념으로는  강이라고 부르기 부끄러울 정도로 강폭이 좁다. 


이처럼 빌넬레강은 강 자체로서는 대단한 위용을 자랑하는 강은 아니라고 할 수 있지만, 리투아니아의 수도이자 리투아니아 최대의 도시 빌뉴스의 이름이 빌넬레 강의 이름에서 비롯한다는 것만으로도 빌넬레강은 무시할 수 없는 의미를 갖는다.       

우즈피스 공화국을 이야기하기에 앞서 빌넬레강을 언급한 이유는 바로 이 빌넬레 강 동쪽에  빌뉴스 안의 작은 나라(?)  '우주피스 공화국(Užupis Respublika)'이 있기 때문이다. 우즈피스 공화국? 처음 들어보는 나라일 수도 있는데, 어찌 보면 금시초문인 것이 당연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우주피스 공화국은 1997년에야 비로소 그 모습을 드러냈고, 그나마도 국제적으로 국가로서의 지위가 공식적으로 인정된 나라도 아니니까 말이다. 다만 얼마 전에  TV 프로그램을 통해 이곳이 소개되면서, 근래 들어서는 우리나라 사람들 가운데에도 우즈피스 공화국의 존재를 아는 사람들이 많아졌는데, 이런 것을 보면 매스컴의 위력이 정말 대단하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된다. "경마장 가는 길"의 작가 하일지가 이미 오래전에 "우즈피스 공화국"이란 소설을 출간하고, (말뿐인 직함이고 하는 일이 없기는 하지만) 한국 대사로 활동을 하기도 했었음에도 불구하고,  TV를 통해 방송되기 이전에는 우주피스 공화국에 대한 최소한의 관심조차 나타낸 사람들이 없었으니 말이다.  


2. 우주피스 공화국의 성립과정


언젠가부터 빌넬레 강변에 예술가들이 모여들어 거주하기 시작했는데, 그 수가 차츰 늘어나더니 급기야는 이 공간에 예술가들의 동호인 마을이 생성되기에 이르렀다. 예술가들 가운데에서도 특히 미술을 하시는 분들이 많이 거주를 하셨는데, 이 때문에 사람들은 이곳을 '빌뉴스의 몽마르트'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예술하시는 분들은 비교적 기존의 권위에 대한 도전 의식이 강하며, 삶의 방식 또한 무언가 독특한 구석을 갖고 계시다. 빌넬레 강변에 모여든 예술가들 또한 그러했는데, 그리하여 조금은 장난스럽게 그리고 때로는 조금은 진지하게 이곳을 그들만의 해방구, 나아가 자신들만의 나라로 만들어보자는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나름대로 나라 꼴을 갖추는 작업을 착착 진행하기 시작하는데, 먼저 재미있는 내용을 가진 헌법을 제정하고, 장관을 임명하고, 군대를 조직하고, 대통령도 선출했다. 그리고 이러한 일들을 너무나도 재미있게 지켜보고 심지어 적극적으로 호응을 보내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맨 처음에 예술가들이 일을 벌일 때보다 일이 훨씬 커져 버렸고, 드디어는 1년에 하루쯤만이라도 이 지역을 진짜 독립국가처럼 운영해 보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러한 예술가들의 생각은 속칭 대박을 치기에 이르렀는데,  그것은 전적으로 우주피스 공화국의 탄생에 얽힌 이야기를 너무도 재미있어하고, 그의 탄생을 손뼉 치며 열렬히 환영했던 많은 사람들 덕분이었다.     


오늘날 우주피스 공화국은 매년 4월 1일, 하룻 동안은 실제로 독립국가가 되어버린다. 따라서 이 지역으로 들어가려면 반드시 여권을 챙겨야 되고, 입국심사를 받아야 한다. 이는 입국심사가 이루어지는 4월 1일이 아니라면 우즈피스 공화국으로 들어가기 위해 특별히 준비할 것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리투아니아란 작은 나라 안에 이처럼 또 하나의 나라가 태동하는 것에 대해 리투아니아 정부의 반감은 없었냐고? 이나저나 장난인데 그리 민감하게 반영할 필요는 없다고들 생각했는지, 실제로 우주피스 공화국의 탄생을 부정하는 시각은 전혀 없었다고 한다. 허긴 일 년 중 하루 독립국가로서의 지위를 부여받는 날짜가 4월 1일, 서양친구들이 만우절(April's Fools Day)이라고 부르는 날인 것만 보아도 이 일이 장난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을 충분히 알 수 있었을 테니까 말이다.   


3. 우주피스 공화국 현황


우주피스 공화국의 지금의 모습을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간단한 기본정보를 말해두기로 하겠다. 1997년 4월 1일에 탄생했고, 면적은 0.6 제곱킬로미터이며, 인구는 약 7,000명에 달한다. 비록 우주피스 공화국 내에서만 쓰이고 있기는 하지만 독자적인 화폐도 갖고 있고, 아래 사진 중앙에 보는 것과 같이 손바닥을 펼친 모양을 하고 있는 국기도 갖고 있다. 다만, 이 글을 쓰기 위해 백방으로 뒤져봐도 우주피스 공화국의 국기가  무엇을 상징하는 것인지에 대해서까지는 알아낼 수가 없었다. 아, 아래 사진은 2019년 3월 28일 자 뉴욕 중앙일보에서 퍼온 것임을 밝혀둔다. 


## 둘째 마당:  우즈피스 공화국, 어떻게 찾아갈까?



1. 성안나 성당/프란치스쿠스 & 베르나르디나스 성당 찾기


빌뉴스의 동쪽을 흐르는 빌넬레 강변에 멋진 성당 2개가 나란히 붙어 서 있다. 이들 두 개의 성당은 수많은 사람들이 찾을 만큼 그 자체가 아름다운 성당들인데, 바로 성 안나 성당(아래 사진 왼쪽)과  프란치스쿠스 & 베르나르디나스 성당(아래 사진 오른쪽)이 그것이다. 이들 2개의 성당은 빌뉴스 지도에 크게 표시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워낙 유명한 성당들이어서 거리를 걷고 있는 모든 사람들, 심지어 리투아니아 시민들이 아닌 관광객들조차도 이들의 위치를 잘 알고 있다. 


2. 빌넬레 강변을 따라 걷기


성당을 찾았다면, 먼저 성당을 꼼꼼히 둘러보는 것을 게을리하면 곤란하다. 그리고 2개의 성당을 모두 찬찬히 둘러봤다면, 이제 성당이 있는 곳에서 빌넬레 강변을 따라 4~500미터가량을 걸어 내려가야 한다. 앞에서 말했듯이 빌넬레강은 우리네 관념으로 보면 (실) 개천을 간신히 벗어난 수준의 것이어서 강이라 부르기에는 민망할 정도이며, 강가로의 접근이 용이하지 않다. 따라서 빌넬레 강변을 따라 걸으라는 이야기는 빌넬레 강을 직접 바라보며 걸으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빌넬레 강가의 숲  뒤쪽으로 나 있는 보도를 따라 걸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빌넬레강

3. 러시아 정교회 찾기


빌넬레강을 따라 10분쯤 걸어 내려가면 진행방향 기준으로 오른쪽에서 멋진 외관을 갖춘 러시아 정교회 건물을 만날 수 있다. 다만 역사적 의미가 크지 않은지, 아니면 교회 내부에 이렇다 할 볼거리가 없는지 빌뉴스를 소개하는 어떤 안내책자에도 이 교회에 관한 설명이 없다. 그래서 나 또한 이 교회를 skip 했고, 덕분에 저 러시아 정교회는 교회의 이름조차 알지 못한다. 어쨌거나 사진 속의 러시아 정교회를 찾았다면, 우주피스 공화국을 제대로 찾아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4. 다리를 건너서 강 저편으로...  


우주피스(Užupis)가 "beyond the river", 즉 "강 건너 저편"을 의미하는 리투아니아어라는 것을 알게 되면, 우주피스 공화국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어디에선가 한 번은 강을 건너야 한다는 것을 추론할 수 있다. 실제로 빌넬레강의 여기저기에 우즈피스 공화국으로 들어가는 다리가 놓여 있는데, 그 가운데 우주피스 공화국 내의 메인 도로와 직접 연결되는 것은 아래 사진 속의 다리이다. 이 다리는 위에서 언급한 러시아 정교회 앞을 흐르는 빌넬레강 위에 걸려있는데, 이런 점에서 결국 위의 러시아 정교회가 우즈피스 공화국을 찾아가는 길의 이정표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길이가 얼마 되지 않는 위 사진 속 다리의 마지막 지점에 이르면 "여기서부터 우주피스 공화국입니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안내판이 서 있다. 그러나 거의 모든 나라들의 입국장에서 볼 수 있는 환영의 문구는 이 안내판에서는 눈 씻고 뒤져봐도 찾아볼 수가 없다.   



### 셋째 마당:  우주피스 공화국 둘러보기



1. 우주피스 공화국. 무엇부터, 어떻게 보아야 할까?


우주피스 공화국에서 무엇을 보아야 할 것인가? 사실 우주피스 공화국을 둘러보는 데 굳이 지도의 도움을 받을 필요는 별로 없다. 지도를 펼치고 자시고 할 것도 없을 만큼 워낙 좁은 곳이니까 말이다. 그렇지만 아래 사진 왼쪽에 우주피스 공화국 지도가 있으니, 잠깐만 지도를 가지고 이야기를 해 볼까 한다.


먼저 우즈피스 공화국을 휘감고 도는 물줄기는 볼 것도 없이 빌넬레강이고, 우리가 조금 전에 건넜던 다리는 지도 왼쪽 아랫부분에 하얀색 화살표로 표시되어 있다. 그 다리와 이어지는 길을 따라 조금 더 안쪽으로 들어서면 우주피스 공화국의 중심이 되는 3각형의 넓은(?) 광장이 나타나고, 그곳을 중심으로 동서남북으로 4개의 길이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그 광장 중앙에 우즈피스 공화국을 상징하는 "우주피스의 천사"의 상이 세워져 있다. 한편 그 광장의 오른쪽(동쪽)으로 연결되는 길을 따라가면 우즈피스 공화국의 또 하나의 볼거리인 "헌법기념물"을 만나게 되는데,  우주피스 공화국을 들어선 이상, 적어도 이 두 곳은 반드시 들러 보아야 한다.  

이 두 곳을 둘러본 다음부터는 각자의 취향에 따라 자유롭게 돌아다니면 된다. 다만 관광객들이 상대적으로 많이 찾는 곳은 광장 위쪽(북쪽)의 우주피스 윗동네와 우주피스 공화국으로 들어섰던 다리 주변, 즉 빌넬레 강변이다. 우즈피스 윗동네로 이어지는 길에는 카페나 레스토랑 그리고 김나지움(Gymnasium, 우리나라로 말하면 인문계 중고등학교에 해당한다) 등과 같은 공공건물이 들어서 있고, 빌넬레 강변에는 Bar들이 성업 중이다. 


2. 우주피스의 천사를 안고 있는 광장


우주피스 공화국의 상징은 뭐니 뭐니 해도 중앙광장에 있는 "우주피스의 천사(Angel of Uzupis)"라는 애칭으로 불리고 있는 동상이다.  2001년에 세워진 높이 8.5미터의 우즈피스의 천사가 없는 중앙광장은 이젠 상상할 수도 없는 것이 되어 버렸는데, 이런 점에서 우주피스의 천사야말로 자유와 예술을 꿈꾸며 탄생한 우즈피스 공화국의 명실상부한 심볼이라고 할 수 있다. 아, 우즈피스의 천사 앞에 있는 허름한 수도꼭지에서 해마다 4월 1일이면 맥주가 흘러나온다는 이야기가 있다. 직접 경험해 보지 않아 실화인지는 모르겠는데, 만약 실화라고 하면 보나 마나 인간들로 이 광장이 미어터질 텐데, 맥주 한잔을 제대로 받아 마시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릴는지 모르겠다.  

'우주피스의 천사'가 있는 광장이 우즈피스 공화국의 랜드마크인 만큼, 그에 걸맞게 광장 주변에는 이런저런 레스토랑이나 바 등이 몰려있다. 그렇지만  한 여름의 휴가철임에도 불구하고 손님들로 미어터지는 모습은 보여 주지 못하고 있다. 다만 축구경기라도 있는 날이면 TV를 가져다 놓은 허름한 카페 앞에는 구름처럼(?) 인간들이 모여드는데, 유럽의 축구 열기를 다시금 실감하게 되는 풍경이다.


중앙광장을 둘러싸고 그 주변으로 꽤 많은 카페와 레스토랑이 줄지어 늘어서 있다. 다만, 그들 레스토랑이나 바에 앉아 술이나 음식을 먹어보지는 않았기 때문에 어느 곳을 꼭 집어서 추천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레스토랑의 외관과 그곳에 앉아 있는 손님들이 자아내는 분위기로만 보자면, 사진 속에 보이는 AMSTEL이라는 곳이 가장 고급져 보인다. 



3. 헌법기념물


우즈피스 공화국은 헌법도 가지고 있다. 원래 어떠한 형태로든 이념적 통일체로서의 국가가 존재하면 헌법은 존재하기 마련이니, 우즈피스 공화국이 헌법을 갖고 있는 것은 전혀 놀랄 일이 아니다. 그렇기는 하지만, 예술인들이 그들만의 공간을 꿈꾸며 모여들기 시작한 작은 마을에 헌법이 존재한다는 것은 그것만으로도 족히 이야깃거리가 될만하다. 그런데 안내책자를 통해 우즈피스 공화국 헌법의 제정을 기념하는 기념물까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래서 "헌법 기념물"을 찾아 나섰다. 


그렇게 헌법기념물을 찾아 나섰지만 헌법 기념물을 발견하기가 쉽지 않았다. 틀림없이 헌법기념물이 있다는 곳을 두세 차례나 왔다 갔다를 반복했는데도 불구하고 문제의 헌법기념물은 보이지 않더라는 이야기이다. 이런 문제의 발단은 전적으로 헌법'기념물'을 리스본의 "발견의 기념물"과 같은 정도로, 아니 그 정도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우주피스의 천사상" 정도의 형태를 띠고 있을 것이라는 내 고정관념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우주피스 공화국의 헌법기념물... 이렇게 아주 소박한 모습으로 있다. 아래 사진을 보고도 어디?라고 되묻는다면, 그것은 여러분들이 나보다도 훨씬 더 심각한 고정관념에 빠져 있다는 명백한 증거이다. 노란색 담벼락에 일렬로 주욱 붙어 있는 동판들, 그게 바로 헌법기념물이니 말이다. 

현재 우주피스 공화국의 헌법은 35개국의 언어로 번역되어 동판으로 제작되어 저 벽에 붙어 있다. 물론 한글로 번역된 것도 있는데, 제작 순서는 32번째라고 들었다.   




Tip: 우즈피스 공화국 헌법


우주피스 공화국의 헌법은  모두 41개의 조문으로 이루어져 있다. 재미있는 사실은 우주피스 공화국의 헌법은 통상적인 헌법들이 중점적으로 규율하는 "국가최고기관의 조직과 작용 및 그들 간의 관계"에 대해서는 전혀 규율하지 않고, 오로지 '기본권'과 그에 상응하는 의무에 대해서만 규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만 우주피스공화국 모든 조문을 소개할 필요성은 별로 없어 보여, 여기서는 그들 조문 가운데 특히 내 맘에 들었던 조문 몇 개만 소개해 보기호 하겠다.  


제1조: 모든 사람은 빌넬레 강변에서 살 권리를 가지며, 빌넬레 강은 모든 사람 곁에서 흐를 권리를 가진다... '강'이란 사물을 기본권의 주체로 바라본 것은 참으로 놀라운 발상의 전환이다.  

제3조: 모든 사람은 죽을 수 있는 권리를 가지나, 이것이 의무는 아니다. 

제4조: 모든 사람은 실수할 권리를 가진다... 나처럼 실수투성이의 인간에게는 많이 위안이 되는 기본권 목록이다. 

제5조: 모든 사람은 독특한 존재가 될 권리를 가진다 

제8조: 모든 사람은 인기가 없어도 되고, 다른 사람이 몰라도 되는 권리를 가진다... 맞다. 누구나 셀럽이 되고 싶어 하지는 않는다. 나처럼 시골 훈장으로 조용히 살아가고 싶은 사람에게는 너무도 중요한 기본권이다. 

제9조: 모든 사람은 게으르거나,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권리를 가진다... 이미 충분히 게으르게 살고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국가가 이를 공식적으로 인정해 준다면 한층 뿌듯할 것 같다.



4. 우주피스 윗동네 


우즈피스의 천사가 있는 중앙광장의 위쪽(북쪽) 길은 광장 주변에 보이는 몇몇 카페를 제외하면 관광객의 시선을 확 잡아당길만한 무언가를 갖고 있지는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약간의 경사까지 있는 이 길을 걸어 올라가고 있었는데, 그 이유는 이 동네의 제일 위쪽에 빌뉴스 시가지가 내려다 보이는 분위기 좋은 카페 겸 레스토랑이 있다는 이야기 때문이었다. 우즈피스 공화국 어딘가에 앉아 잠시 여행의 피로도 풀어가며 동반자들(이라고 해 보았자 집사람과 딸아이이기는 하지만)과 이야기 꽃을 피우기에는 그곳이 딱일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인데, 경사진 길을 열심히 걸어 오르고 있는 나에게 현지 주민은 그 카페 겸 레스토랑의 폐업 소식을  전해 준다. 눈물을 머금고 황당한 마음을 다 잡으며 다시 내려오는 길에서 우즈피스 공화국 내의 다른 건물에 비해 육중한 건물을 만났는데, 관공서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이 건물은 김나지움이다. 

가파른 길을 걸어 오르고 내리느라 생긴 육체적 피로에 목적지를 찾지 못함으로 인하여 생긴 심적 피로가 더해진 상태에서 터덜터덜 중앙광장 쪽으로 내려오는 내 눈에 "Maghrib"이란 이름을 가진 카페가 들어왔다. Maghrib은 원래는 "해가 진후 그 붉은 기운이 서쪽 하늘에서 사라질 때까지의 짧은 시간에 드리는 저녁 예배"를 뜻하는 것이지만, 근래 들어서는 이슬람 세계의 서쪽 끝에 해당하는 북아프리카의 모로코, 알제리 또는 튀니지 등의 나라를 가리키는 용어로도 많이 쓰이고 있다. 결국 둘 중 어떤 의미로 쓰이든 간에 Maghrib이란 단어는 아랍과 이슬람을 떼놓고는 이야기할 수 없는 것이다.

Maghrib이란 아랍 냄새가 물씬 풍기는 이름을 가진 카페가 동북유럽의 대표적 가톨릭 국가인 리투아니아, 그것도 수도인 빌뉴스 동쪽의 우주피스 공화국에 자리하고 있다는 것이 흥미로워 다가가 보았다. 역시 Maghrib은 내가 예상했던 대로 모로코식 카페를 지향하고 있는데, 아  '모로코'라는 유럽식 이름은 모로코의 도시 중 하나인 마라케쉬(Marrakesh)에서 파생된 것이다.

Maghrib의 실내 풍경 또한 아랍 이미지가 강한데, 다른 여행객들이 있어 촬영을 못한 관계로 아쉽게도 실내 분위기를 전해 주지는 못한다. 우리 가족 여행에 있어 카페 등을 찾았을 때에 불문율이 있으니, 그건 나는 그곳이 어디가 되었든 간에 로컬 맥주를 맛보는 것이고, 딸아이나 집사람은 지금까지 맛보지 못했던 새로운 것을 주문하는 것이다. 때문에 우리네 테이블은 늘 이런 구도를 취하기 마련이다. 

맥주만 마셔도 물론 좋지만 무언가 주전부리감이 있다면 그야말로 금상첨화라고 할 수 있는데, 이곳의 메뉴에는 특이하게 "모로코 1001 야화(Marocco 1001 Nights)"라는 이름하에 주전부리감을 모아 놓은 섹터가 별도로 마련되어 있다. 


재미있는 것은 이곳의 주인장이 삼성전자에서 2년간이나 근무했었기 때문에 꽤 유창한 한국어 실력을 자랑한다는 것인데, 우리나라의 국격(國格)이 날로 높아가다 보니 외국 여행 중에 이런 일이 생각보다 자주 심심찮게 일어난다. 주인장과 말을 섞다 보니 자연스레 안주감을 선택할 수 있는 우리의 권리는 박탈되고, 주인장이 추천하는 것을 주문하는 일이 발생했다. 그 결과 우리 앞에 놓인 것은 중동지역에서는 꽤나 즐겨 먹는다는 달콤한 과자인 "할바(Halva)"라는 것인데, 보기에는 그리 맛있어 보이지 않을는지 모르지만 숟가락이 자주 갈 만큼 맛은 꽤 좋다. 아, 할바는 밀가루를 베이스로 하는 것과 견과류를 베이스로 하는 것의 두 종류가 있는데, 아몬드와 참깨씨 등 견과류를 베이스로 하는 할바의 가격은 5,500원(4유로, 2018년 기준)이다. 


5. 빌넬레 강변 


비록 빌넬레 강이 우리네 관념으로 바라보면 강이라고 하기엔 많이 부족하지만, 우주피스 공화국에 들어섰다면 그를 감싸고 흐를 권리를 가진 빌넬레강은 한 번은 바라보아 주어야 한다. 해서 빌넬레 강에 눈길을 한번 던져줬는데, 역시 졸졸졸 흐르는 시냇물을 간신히 넘어선 수준이다.  

우주피스 공화국을 들어올 때 건넜던 다리를 기준으로 할 때 다리의 남쪽에는 우주피스 공화국의 행정, 즉 마을 일을 보는 공간이 있다.  4월 1일에 입국심사도 하고 여권에 스탬프도 찍어 주고 하는 일이 여기서 이루어진다고 들었는데, 보다시피 시간이 늦어 이미 문은 닫혀 있었다.  우주피스 공화국의 헌법 전문을 인쇄한 종이를 나눠 주는 카페 또한 이 쪽에 있다고 하여 수소문해 보았는데, 그마저도 찾지를 못했다. 하여 하릴없이 밤이 내린 빌넬레강의 모습 한 장을 사진에 담고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되돌아 나와 이번에는 다리 북쪽으로 접어들어 보았더니, 남쪽과 달리 완전히 활력이 넘친다. 처음 만난 공간부터 사람들도 많이 모여 있는데, 모든 사람들이 서 있다. 의아해하며 다가가 보니 벤딩 머신들이 저 공간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고, 좌석 자체가 없다. 

아쉬운 마음에 강변을 따라 조금 더 내걸었더니, 그제야 내가 생각했던 강변 풍경이 펼쳐진다.  생각 같아선 "일배 일배 부일배(一杯 一杯 復一杯)"를 외치며 오늘 밤을 지새우고 싶었지만, 그를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다. 내일 아침에 또 하루의 여정이 기다리고 있는 데다가 술 한잔을 시작하면 제어하기 힘든 내 술욕심이 무슨 일을 만들어낼지 몰라서였는데, 나이가 들어가면서 자제력 또한 조금은 늘어난 듯하다.   



#### 넷째 마당: Epilogue...



다시 한번 말하지만 우주피스 공화국은 예술과 자유를 외치며 모여든 예술가들에 의해 탄생된 곳이다. 그들은 이곳 빌넬레 강변의 작은 집에서 창작활동에 전념하며, 자신들의 작품을 그냥 길거리에 내놓았다. 그렇지만 주변 모습과의 조화를 생각하며 작업을 행하였기에 막상 그것이 작품인지, 아니면 생활의 도구로 예전부터 거기에 놓여 있었는지를 분간하기가 쉽지 않다. 


건물의 벽들 또한 그네들에겐 중요한 표현 공간이 된다. 그러하니 우주피스 공화국에서라면 각자의 방식으로 강변에서, 길거리에서, 또 골목 어귀에서 길을 걷다가 마주치는 모든 것들을 즐기면 될 일이다. 내 경우는  그래피티(Graffiti)에 빠졌었는데, 나를 즐겁게 만들어 준 여러 작품들 가운데 드라클르와(Delacroix, 1798~1863)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을 패러디한 것으로 보이는 작품 한 점만 소개해 본다. 바라건대 여인의 젖무덤이 드러나 보인다는 것을 이유로 불경스러워 보인다는 이야기는 하지 말기를. 원작 속의 여신 또한 한쪽 가슴을 드러내고 계시니 말이다. 벽에 쓰인 자유, 평등이라는 글씨 또한 좋다. 이런 작품들을 보고 있노라면 벽화와 그래피티를 구분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라는 의문을 절로 갖게 된다.

이제 돌아가는 일만 남았다. 우즈피스 공화국을 들어올 때 입구가 되었던 다리가 이제는 출구로서의 기능을 수행한다. 비단 이 다리뿐만 아니라 우리네 인간사라는 것 자체가 이렇게 돌고 도는 것이니, 입구는 입구여야만 한다는 고정관념에 매몰되지 않기를 바란다. 20세기 최고의 아티스트 중 하나로 꼽히는 네덜란드 판화작가 에셔(Maurits Coenelis Escher, 1898-1972)처럼 2차원과 3차원을 넘나드는 환상의 세계를 만들어 낼 정도까지는 아니라고 하더라도, 고정관념으로부터 벗어나 자신만의 독특한 세계를 꿈꾸며 살아가기를 바란다.    

이것으로 즐거웠던 우주피스 공화국 이야기를 끝맺는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오늘 하루만큼 정보의 중요성을 절실히 느낀 적도 없었던 것 같다. 우주피스 윗동네에 있다는 전망 좋은 카페 겸 레스토랑을 찾아보겠다고 헛심을 쓴 일, 우주피스 공화국 방문 기념으로 공화국의 헌법 전문을 얻어 보겠다고 빌넬레 강변을 헤집고 다닌 일 등을 생각해 보면 말이다. "UN 경제개발협력기구(OECD)가 1980년에 ‘정보보호지침’를 통하여 개인정보보호에 관한 8개의 기본원칙을 제시하면서, 그중에 처리정보의 정확성 및 최신성을 보장하여야 한다는 ‘정보정확성의 원칙’을 포함시켰다"라고 책으로만 읽었던 말의 진정한 의미를 이곳에서 이런 방식으로 절감하게 된다.   


이전 03화 슬픔과 한을 간직한 나라, "리투아니아"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