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의 글에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뮐하우젠은 중세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는도시인데,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도시의 문장에서도 성벽을 볼 수 있어(아래 부분).
뮐하우젠을 소개하는 글들은 하나같이 제국도시(Reichstadt) 뮐하우젠으로 들어가는 관문으로 "프라우엔토아(Frauentor)"를 말하고 있는데, 프라우엔토아는 시를 둘러싸고 있는 '시의 성벽(Stadtmauer)'에 있던 4개의 대문 중 하나라고 한다. 쉽게 말해 서울로 말하자면 한양 도성의 4대문 중 하나라는 이야기이다.
Frauentor는 Frauen+ Tor로 이루어진 단어인데, 독일어의 Frauen은 부인이란 뜻이고, Tor는 성이나 궁궐 등의 입구에 있는 커다란 문을 뜻한다. 아, 유럽에서 교회나 성 등과 같은 건축물에 부인(Frauen, Dame)이란 단어가 쓰이는 경우, 그것은 특히 성모(聖母)를 뜻한다. 그러니까 결국 Frauentor는 우리식으로 이야기하면 '성모문(聖母門), 또는 성모 마리아문'쯤 되는 것이다.
프라우엔토아(Frauentor)
프라우엔토아 앞에는 이렇게 넓은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으니, 자동차를 가지고 여행한다면 이곳에 주차를 하면 된다. 주차비는 (정확하지는 않은데) 대략 30분에 50센트쯤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프라우엔토아로 걸어가다 회전교차로에서 바라본 시의 성벽과 프라우엔토아의 모습.
프라우엔토아의 안내판인데, 그에 따르면 프라우엔토아는 1655년의 대화재 이후에 지금 우리가 보는 것과 같은 모습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프라우엔토아 앞에 '안쪽'이라는 의미가 담긴 Inneres라는 말이 붙어 있는 것을 보게 되면, 잠시 당황스러울 수가 있다.
이 말을 이해하려면 안내판을 좀 더 자세히 읽어보아야 할 필요가 있는데, 그에 따르면 옛날 도시의 주요 성문들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프라우엔토아 역시 이중으로 되어 있어서 아래 사진속의 2번부분에 또 하나의 프라우엔토아가 있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지금 우리가 보는 프라우엔토아는 그것 안쪽에 있었던 것이지. 아, 지금은 안보이는 또 하나의 프라우엔토아는 중간을 의미하는 독일어인 mittler를 붙여 Mittleres Frauentor라고 불렀다고 하는데(3번), 그 또한 1830년에 철거되었다고 한다. 그 결과 이제 남아 있는 것은 가장 안쪽에 있던 Inneres Frauentor밖에 없게 됐다는 것이다.
프라우엔토아를 그 좌측에 있는 라벤탑(Raventurm)과 함께 찍은 사진인데, 날씨가 흐려서(이날 결국 비를 만났다) 아쉽게도 사진이 선명하지가 못하다.
위의 사진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프라우엔토아와 라벤탑 사이에 동상이 하나 서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동상의 주인공은 독일농민전쟁을 이끌었더 토마스 뮌처(Thomas Münzer, 1489? ~ 1525)이다.
토마스 뮌처(Thomas Münzer) 동상
동상 앞에 안내판이 있는데, 그에 따르면 토마스 뮌처는 성 마리엔교회의 설교자로서 중세 독일농민전쟁(Bauernkrieg)에 있어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던 신학자였다고 한다. 이 동상은 독일 출신의 저명한 조각가 빌 람머르트(Will Lammert, 1892~1957)가 그 지역산 대리석으로 1956년과 57년에 걸쳐 만든 작품이라고 한다.
아, 토마스 뮌처는 급진적 종교개혁가로 폭력 투쟁을 통해 봉건영주의 통치권에 대항하여 교회와 하층민이 중심이 되는 이상사회를 건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하는데, 토마스 뮌처에 관해 상세한 내용은 다음의 인터넷 사이트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토마스 뮌처 기념상 왼쪽으로 보이는 이것은 Erkundigungstuhl인데, Erkundigungstuhl은 Erkundigung(정찰) + Stuhl(의자)의 합성어이다. 우리식으로 이해하면 감시초소 정도로 번역하면 크게 틀리지는 않을 듯 싶다.
문안으로 들어와서 바라본 프라우엔토어의 모습.
프라우엔토어 오른쪽에 성벽 위로 올라 갈 수 있는 계단이 있는데, 안내판에는 성벽을 '역사적인 방어시설(Wehranlage)'이라고 표현해 놓았다. 또한 안내판은 2.2km에 이르는 성벽은 잘 보존되고 있으며, 뮐하우젠의 방어력과 제국도시로서의 중요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고 이야기 하고 있다.
반려견을 키우시는 분들에게는 매우 미안한 일이지만, 반려견과 함께는 성벽 위를 걸을 수 없다.
성벽 위에는 수많은 탑들이 있는데, 프라우엔토아쪽에서 오르는 경우 제일 먼저 만나는 것은 라벤탑(Raventurm)이다. 아래 사진을 보면 탑위에 올라 뮐하우젠의 풍경을 즐기고 있는 사람들이 보이는데, 나도 곧 저들 사이에 합류할 계획이다.
라벤탑(Raventurm)
라벤탑은 그 자체가 자그마한 박물관임과 동시에, 라벤탑 뒤로 이어지는 성벽길과 탑들을 볼 수 있는 입구의 역할을 한다. 그래서 탑 위로 오르기 위해서는 입장권을 구매하여야 된다. 여기까지 와서 잠깐이나마 성벽길을 걸었고, 탑도 봤으니 그냥 돌아가도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 수 있다. 물론 선택은 자유이지만, 여기서 돌아가는 것은 보물섬에 왔다가 보물을 그대로 놓아두고 배를 타고 떠나는 것에 비유할 수 있을만큼 어리석은 짓이라고 생각한다. 바라건대 입장권을 사고 들어가 보기를...
만일에 시내로 들어가 성 마리엔교회 (St. Marienkiche)와 코른마르크트교회(Kornmarktkirche)까지 보고자 한다면, 3곳을 모두 둘러볼 수 있는 티켓을 사는 것이 좋다. 가격은 2023년 6월 현재 성인 개인 기준으로 13유로.
물론 문화사박물관을 포함해서 뮐하우젠에는 있는 4개의 박물관을 모두 둘러보고 싶다면, 17유로를 내고 이들 박물관을 모두 돌아볼 수 있는 티켓을 사는 것이 좋다. 보다시피 박물관을 하나씩 따로 보는 경우의 입장료가 5유로이니 할인률이 그리 높지는 않지만, 박물관에 들어갈 때 마다 매번 입장권을 구매하는 번거로움을 피할 수 있으니 말이다.
라벤탑 자체에 전시물이 많지는 않다. 좁은 탑위에 전시공간 자체가 얼마 안되기 때문인데, 제국도시 뮐하우젠을 운운하는 정도가 전부.
탑의 꼭대기를 탑안에서 바라본 모습.
이처럼 라벤탑 안에는 이렇다할 전시물도 없고, 탑안의 모습 또한 그리 특징적이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라벤탑에 오를 것을 강추하는 이유는 탑 밖에서 바라보는 풍경 때문이다. 아래 사진을 보면 이렇게 사다리가 걸쳐져 있고 그 사다리 끝에 자그마한 문이 있는데,
그 문이 탑 밖으로 나가는 통로의 역할을 한다. 사다리를 올라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면, 이렇게 높은 곳에서 뮐하우젠의 모습을 아무런 방해물없이 바라볼 수 있다. 이처럼 프라우엔토어와 성벽길을 바라볼 수 있는가 하면,
성밖의 모습을 바라볼 수도 있다. 사진 왼쪽 편으로 앞에서 내가 말했던 주차장과 회전교차로가 보인다.
그리고 시선을 오른쪽으로 천천히 돌리면, 이번에는 이런 모습이 눈에 들어 온다. 아, 사진 속에 보이는 교회는 성 페트리교회(St. Petrikirche)인데, 지붕이 독특해서 성안 관광을 마치고 찾아가 보려고 했다. 그런데 성안 관광을 하면서 페트리 교회의 존재 자체를 까맣게 잊어 먹는 바람에 찾아가 보지 못했다.
때문에 아쉽게도 교회의 자세한 모습, 특히 내부 모습을 전해주지는 못한다. 페트리교회의 내부모습 등에 관해 자세한 것은 아래 사이트를 참조하기를 바란다.
이제 시선을 돌려 성안을 바라보면 이렇게 성안의 풍경이 펼쳐지는데, 뮐하우젠 성안 관광의 랜드마크가 되는 성 마리엔교회(St. Marienkirche)의 첨탑이 눈길을 끈다. 정말이지, 이럴 때면 사진이라는 매체는 실제의 모습을 전하기에는 너무나도 무력하기만 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 탑위에서 뮐하우젠의 풍경을 즐기고 돌아나올 때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출입구의 문을 닫아야 한다는 것이다. 비둘기가 탑안으로 날아 들어오는 일이 없도록 말이다.
이제 성벽 위를 천천히 걸으며 뮐하우젠의 시가지 풍경을 즐기는 일만 남았다. 성벽 위를 걷다 보면 수시로 이런 탑들이 나타난다.
그리고 그들 탑안으로는 이런 전시물들이 마련되어 있다. 성벽위의 탑들이 마치 박물관의 전시실과 같은 기능을 하고 있는 셈인 것이다. 이 전시실에는 19세기에 뮐하우젠을 빛나게 했던 인물들이 소개되어 있는데, 내가 이름을 들어본 사람은 딱 한사람 뿐이다.
바로 토목기사로서 현수교건설의 선구자 역할을했던 뢰블링(Johann Augustus Röbling, 1806~1869)인데, 미국으로 이민을 갔기 때문에 미국인으로 소개하고 있는 문헌도 있을 것이다. 뢰블링이란 사람이 나조차도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을만큼 유명한 이유는 그가 뉴욕의 그 유명한 브루클린 브릿지(Brooklyn Bridge) 건설계획의 핵심적 역할을 수행했기 때문이다. 가보지는 못했지만 사진으로는 많이 보았던 브루클린 브릿지의 모습을 보여주며, 이글을 끝맺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