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깨달음의 샘물 Dec 29. 2023

슬픔과 한을 간직한 나라, "리투아니아"

Chapter 6. 리투아니아 심장 카우나스, 그 2 - 구시가지


# 첫째 마당: 카우나스 구시가지, 어떻게 다닐 것인가?



신시가지의 중심을 관통하고 있는 자유로를 따라 서쪽으로 걷다 보면 자연스레  빌뉴스 거리(Vilniaus gatvė, 아래 지도 중간 부분에 핑크빛으로 표시되어 있다)와 마주치게 되는데, 여기서부터 네리스 강과 네무나스 강이 만나는 지점까지가 카우나스의 구 시가지이다. 재미있는 것은 리투아니아의 경우 꼭은 아니지만 구시가지로 이어지는 중심 도로의 이름이 수도의 이름을 딴 빌뉴스 거리인 경우가 많다는 것인데, "모든 길은 로마로!"를 외쳤던 로마처럼 리투아니아인들은 "모든 길은 빌뉴스로!"라고 외치고 싶었던 것 같다.

빌뉴스 거리는 구시가지로 이어지는 도로답게 고풍스러운 분위기의 자갈길이 만들어져 있고, 거리 양옆으로는 아기자기한 건물이 들어서 있다. 그리고 그들 건물은 하나같이 벽화나 조각 기타 귀여운 소품들로 장식되어 있는데, 이로 인해 빌뉴스 거리에 들어서면 내가 유럽 도시에 와 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다. 문제는 내가 빌뉴스 거리의 모습을 제대로 사진에 담지 못했다는 것인데,  이하의 사진들은 아래 블로그에서 가져온 것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빌뉴스 거리의 건물들은 거의 예외 없이 건물의 외벽과 그 앞의 공간을 벽화와 조각을  통해 아기자기하게 꾸며 놓고 있다. 물론  유럽의 대다수의 도시들의 경우 역시 건물을 꾸미는 데 많은 노력을 들이고 있기는 하지만, 내가 유독 빌뉴스 거리의 건물들을 이야기하는 이유는 건물을 장식하고 있는 벽화나 조각들이 일정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어서 보는 이를 즐겁게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카우나스 구시가지 관광을 위한 기본정보는 구시청사 광장에 있는 관광안내소에서 얻을 수 있는데, 구시가지의 볼거리는 모두 이 광장에서 100미터 안쪽에 자리하고 있다. 그러니 카우나스 구시가지를 둘러보고 싶다면 무조건 구 시청사광장으로 갈 일이다.

카우나스 구시가지 관광을 효과적으로 하려면 구시가지의 골목골목을 상세하게 보여주는 아래 사진과 같은 지도가 필요하다. 이 지도는 관광안내소에서 제공하는 팜플렛 속에 들어 있는데, 여기에는 보다시피 구시가지에서 꼭 보아야 할 것 베스트 10이 사진과 함께 소개되어 있다. 자, 이제 이 팜플렛을 기초로 카우나스 구시가지 관광에 본격적으로 나서 보도록 하겠다. 



## 둘째 마당: 카우나스 구시가지의 볼거리들



1. 구 시청사와 구 시청사 광장


카우나스 구(舊) 시청사 광장은 오래전부터 지금까지 변함없이 카우나스 사람들의 삶의 터전이었고, '광장'이라고 불리기에  전혀 손색이 없을 만큼 넓다. 또한 광장 안과 광장 주변에 볼거리들이 몰려 있어 구시가지 관광의 출발점으로 삼기에도 적당하다. 갑자기 내린 비로 사람들이 사라지면서 다소 허전한 느낌을 주기는 하지만, 한가한 풍경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오히려 고마운 시추에이션이다. 다만 날이 흐리다 보니 얻어진 사진이 조금 어둡다.  

카우나스 구(舊) 시청사 광장

(1) 구 시청사

카우나스 광장의 전체 풍경을 보여주는 위 사진에서 오른쪽에 보이는 하얀 건물이 카우나스의 구 시청사인데, 관광안내지도에 1번으로 표시되어 있을 정도로 이 도시의 랜드마크 역할을 하고 있다. 1542년에 지어졌고, 그 이후 계속되는 보수공사를 통하여 지금의 모습을 갖게 되었다고 하는데, 현재 지하는 도자기박물관으로 이용되고 있다.   

처음 축조된 이후 근 500년을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는 이 건물은 그동안에 계속 보수공사가 행해지면서 고딕, 바로크 등 다채로운 건축양식이 적용되어 있다. 구 시청사는 건물의 모습과 하얀 색깔로 인해 "하얀 백조"라는 애칭으로 불리고 있는데,  앵글을 이렇게 잡으면 백조의 느낌이 들기도 한다.   


(2) 성 프란체스코 사비에르교회

구시청사 광장에 접하여 두 개의 첨탑과 핑크빛이 특징적인 교회가 서 있는데, 이 교회는제주이트교단 소속의 교회로 공식명칭은 "성 프란체스코 사비에르교회"이다(지도상의 5번). 제주이트 교회가 이곳에 처음 자리 잡은 것은 1642년이고, 후기 바로크양식이 적용되어 지금과 같은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은 1666년-1720년에 걸쳐 행해진 오랜 작업의 결과라고 한다. 아쉬운 것은 내가 이곳을 찾았을 때는 한창 보수작업 중이어서 교회의 제 모습을 충분히 보지 못한 것인데, 이런 일이야 유럽의 도시들을 여행할 때 흔히 겪게 되는 여행의 상소(常素)이다.

교회건물의 외관을 보수 중인 경우에 교회의 내부는 (동시에 보수작업을 하지 않고) 일반에게 공개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는 힘들게 자기 교회를 찾은 이들이 아무것도 못 보고 돌아가게 하고 싶지는 않기 때문인데, 성 프란체스코 사비에르교회는 조금은 이례적으로 교회 내부도 함께 보수공사를 진행 중이어서 입구에서 제단 쪽으로 나아가는 길이 꽉 막혀 있었다. 해서 먼발치에서 사진 한 장만 달랑 남기고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는...


2. 카우나스 대성당(Arkikatedra bazilika)


(1) 대성당의 외관

구시청사 광장에서 관광안내소 쪽으로 시선을 돌리면 건물들 사이로 붉은색의 첨탑이 눈에 띄고, 그 첨탑 위로 자그마한 십자가가 보인다. 이것이 카우나스 대성당인데,  광장에서 바라보면 '대성당'이란 이름이 어울리지 않을 만큼 작아 보인다.  

그렇지만 광장을 벗어나 골목 안으로 들어서서 다른 건물에 가리어져 있지 않은 성당을 바라보면, '대성당'이라 불려도 손색이 없을 규모를 자랑한다. 물론 이태리 등에서 볼 수 있는 대성당과는 비교 자체가 불가능할 정도로 소박한 규모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리투아니아의 경우 가톨릭교도가 압도적으로 많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규모로만 보면 (루터파) 개신교 교회나 러시아 정교회 소속 교회들이 더 크고 장엄한 모습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사전에 관광안내서 등을 통해 카우나스 대성당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가 없어 무작정 찾아온 카우나스 대성당인데, 대성당 옆 커다란 나무 앞의 안내판에서 비로소 대성당에 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1408년에 처음으로 축조되었다는 것, 17세기까지는 리투아니아에서 제일 큰 건물이었다는 것, 그리고 리투아니아에 남아 있는 유일한 고딕양식의 바실리카라는 것 등등이 안내판에 빼곡하게 적혀 있다.


(2) 성당 내부

성당 안으로 들어서면 밖에서 보았던 조금은 초라한 모습의 그것과는 전혀 다른 느낌을 주는 화려함이 성당 내부를 지배하고 있다. 비록 오른쪽 기둥과 설교대가 보수작업 중이어서 화려함이 잘 전달되지 않기는 하지만, 중앙 제단으로 이어지는 신랑의 모습과 천장은 충분히 화려하다.  

금빛으로  화려하게 빛나는 중앙 제단과 중앙 제단 뒤쪽의 기둥 및 조각상을 바라보면, 성당의 내진(內陣)에도 신경을 많이 썼다는 것을 알 수 있다(왼쪽 사진). 또한 성당 후면의 파이프 오르간은 그 자체가 성당의 모습을 띠고 있어 이채롭다(오른쪽 사진).

기둥, 그리고 기둥 사이의 벽면은 아주 잘 꾸며져 있다. 아니 시선을 어느 곳에 머물게 해야 할지 모를 정도로 과도하게 장식되어 있다. 개인적으로는 이렇게 과도한 장식을  싫어하는데, 이는 기둥과 벽면이 이런 정도에 이르면 성당의 실질적 주인이 거하시는 중앙제단에의 몰입을 방해하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성당 안의 별도의 예배당인데, 성당 안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공간이다. 여행으로 인한 들뜬 기분과 피곤함을 잠시 내려놓고 나 자신을 돌아보기에는 이만한 공간이 없는데, 이런 나보다 앞서 우리 집사람이 이 공간을 차지해 버렸다.

무덤 같은 것이 있고 또 그 앞에 수없이 많은 촛불이 타오르고 있는데, 누구의 무덤인지를 확인할 수 있는 설명이 전혀 없었다. 카우나스 대성당 안에 리투아니아의 유명한 국민 시인이자 성직자로서 이 성당에서 봉사하기도 했던 마이로니스(Maironis)의 무덤이 있다는 것을 들었는데, 혹 그의 무덤인가?


3. 페르쿠나스의 집


시청사 광장에서 일렉소토(Aleksoto) 거리를 조금만 걸어 내려가면 '페르쿠나스의 집(Perkūno namas)'이라는 이름이 붙은 건물을 만나게 되는데, 제주이트 교단 소속의 성 프란체스코 사비에르교회 뒤쪽에 자리하고 있다(지도 3번). 이 건물을  '페르쿠나스의 집'이라고 부르게 된 것은 19세기에 건물 보수공사 도중에 리투아니아의 전통신인 페르쿠나스(천둥의 신)의 석상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페르쿠나스의 집은 처음에는 길드 연합회 건물로, 그 후 제주이트 교단의 예배당 등으로도 사용되었는데, 현재는 동유럽 최대 문호 중 한 명인 폴란드의 민족시인 아담 미츠키에비치(Adam Mickiewicz, 1798~1855)의 행적을 전시하는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현지에서 입수한 카우나스 여행안내서는 페르쿠나스의 집을 "빌뉴스의 성 안나성당과 함께 리투아니아에서 가장 아름답고 보전상태가 양호한 고딕건물로서 리투아니아의 중세 건축양식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건물"이라고 설명해 놓고 있다. 물론 건물 전면의 파사드 부분은 성 안나 성당과 상당히 비슷한 느낌을 주는 면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페르쿠나스의 집을 성 안나 성당과 같은 레벨에 놓고 평하는 것은 솔직히 조금 지나치다는 생각이 든다.


Tip: 아담 미츠키에비치는 누구?


아담 미츠키에비치는 폴란드 사람들의 절대적 사랑을 받고 있는 시인인데, 그건 이 사람의 행적이 여느 시인과는 달라도 너무 많이 다른 면이 있기 때문이다. 대학 재학 때부터 학생 비밀결사인 필로마트 회(會)를 조직하여 혁명운동에 참가하였고, 폴란드 군단(軍團)을 조직하기도 했으니 말이다. 때문에 폴란드를 여행하다 보면 정말 곳곳에서 그의 동상을 만날 수 있는데, 대표적인 것으로는 폴란드의 고도(古都) 크라쿠프(Kraków)의 중앙시장 광장(폴란드어로는 Rynek광장이라고 한다) 한가운데 우뚝 솟아있는 동상을 들 수 있다.



4. 비타우타스 교회(Vytautas Church)


페르쿠나스의 집 앞에 서서 네무나스강변 쪽으로 시선을 던지면 바로 눈앞에 보이는 교회가 카우나스에서 최초로 건립된 고딕양식의 교회인 비타우타스 교회이다(지도 4번). 고딕양식의 특징인 높은 첨탑을 갖고 있고 또한 강가에 위치하고 있으므로 첨탑에 오르면 네무나스강을 굽어볼 수 있다고 하여 찾았건만, 주일인 오늘에도 어찌된 일인지 교회의 문은 굳게 닫혀 있다.

때문에 교회의 내부를 보지는 못했다. 물론 첨탑에도 올라 보지도 못하고. 사정이 이러하니 이 교회에 대해서는 할 말이 전혀 없다. 그저 팜플렛에 있는 말 하나만 적어 놓으면, 교회의 건립은 그 역사가 1400년에까지 거슬러 올라가는데, 리투아니아 대공 비타우타스가 프란체스코 수도사들을 위하여 지어 준 교회라고 한다. 교회 앞에 이런 팻말이 있던데, 정식명칭은 "성모승천 - 비타우타스 교회"네.

네무나스 강변에서 바라본 비타우타스 교회. 강변이 조경이 잘되어 있고, 물도 맑았으면 강변을 따라 거닐어 보는 호사를 누려 보자는 마음을 먹을 수도 있었을 텐데... 좀 삭막한 풍경이 이어져서 강변에서의 산책은 포기했다.


5. 카우나스 성(Kauni pilis; Kaunas Castle)


어떤 도시 또는 그 도시의 외곽에 오래전에 축조된 '성(城)'이 있으면, 그 도시의 관광포인트는 성이 되는 것이 보통이다. 심지어 인근 국가인 라트비아의 시굴다(Sigulda)나 체시스(Cesis) 등의 경우처럼 그 성들이 온전히 보존되어 있지 않은 경우에도 그러하다. 그런데 카우나스 '성'은 이상하리만치 전혀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다. 이렇게 나름 훌륭한 모습을 갖추고 있는데도 말이다.

원기둥 위에 원뿔형 탑이 올라앉은  형태의 망루도, 또 망루와 연결되어 있는 성벽의 모습도 흠잡을 데가 전혀 없건만, 세인의 관심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연유는 무엇인지는 암만 생각해도 이해가 잘 안 된다.     

물론 웅장한(?) 성벽의 실체는 이런 수준이고, 성벽 뒤쪽으로는 아무것도 없기는 하다. 그러나 1030년에 축조된 리투아니아 최초의 방어요새로서 그 역사적 의미가 충분한데도 이렇게 방치되어 있다는 것 자체가 이해가 안 된다. 

자신들도 너무 허전하다고 생각했는지 리투아니아 기사상을 하나 만들어 놓고, Flag도 하나 꽂아 놓기는 했다. 그런데 아니러니 하게도 그 때문에 막상 카우나스 성은 더 초라해 보이기만 하다.


6. 먹거리 - 리투아니아 (전통) 식당 DVARAS


구 시청사 광장의 존재를 알고 난 후 자연스럽게 든 생각은 광장 주변에 레스토랑들이 밀집해 있을 것이니 그 가운데 괜찮아 보이는 곳을 택하여 시간을 아끼면서 식사를 해결하는 것이었다. 물론 이런 곳에 자리한 식당 중 상당수는 뜨내기 관광객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라는 문제점은 있지만, 그건 오늘의 운에 맡길 수밖에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역시, 내 예상 그대로 구시청사를 마주 보는 광장가에 레스토랑들이 밀집해 있다.

여행 일정상 다시 돌아올 것이지만 오늘이 잠시 리투아니아를 떠나는 날인만큼  리투아니아를  떠나기 전 점심은 리투아니아식으로 해결하기로 마음먹었는데, 그 순간 거짓말처럼 정통 리투아니아식 음식을 내는  DVARAS라는 식당이 눈에 들어왔다. 다른 레스토랑들에 비하여 규모가 커 보였고, 무엇보다도 돌출 간판의 비주얼도 괜찮아서 망설임 없이 오늘 점심 장소로 이곳을 선택하고, 고고씽!!

돌출 간판 밑으로 이른바 "리투아니아식 음식" 사진을 게시해 놓았는데, 그다지 특별해 보이는 메뉴는 없었다. 그렇지만 동유럽 내지 북유럽의 음식들이란 것이 모두 거기서 거기란 것을 이미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이것은 DVARAS를 점심 장소로 선택하는 데 아무런 걸림돌이 되지 않았다.   

벽돌건물이라는 것부터 유리와 철제로 입구를 장식한 것까지 전체적으로 분위기가 있어 보였고, 서빙하는 종업원의 의상(특히 체크무늬 스커트)에서도 왠지 모르게 리투아니아의 필이 느껴지기도 했다.

입구에 들어서면 오른쪽으로 Chef 사진이 있는 입간판이 세워져 있다. 어쩌면 전통요리 대회에서 수상한 경력을 갖고 있는 요리사가 Chef로 있다는 것을 알리는 입간판일 수도 있는데, 리투아니아어를 전혀 모르니 그 내용은 알 수 없다. 어쨌거나 Chef 사진을 내 걸고 있는 것에서 약간의 자부심이 느껴졌다.

주문을 하고 나서 비로소 사방을 둘러보았다. 은은한 조명 덕분인지 적당히 차분하다는 느낌을 받았고, 아기자기하게 꾸며 놓은 인테리어 또한 별로 나무랄 데가 없다.  

보통 때도 그러하지만, 특히 비라도 내리시는 날에는 창가자리를 무척 선호한다. 창문 너머로 떨어지는 빗방울을 보고 있노라면 뭐라 표현할 수 없는 안온함을 느껴서 말이다. 창문 너머로 주차되어 있는 자동차들과 구 시청사를 바라보는 지금 또한 완벽한 편안함을 만끽한다.    

레스토랑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뭐니 뭐니 해도 제공하는 음식의 종류와 그 맛이다. 그러나 리투아니아 전통 음식에 대해서 전혀 모르기도 하고, 리투아니아식 음식이라고 게시되어 있는 사진을 보아도 막상 그리 특징적인 것도 보이지 않아서 메뉴의 설명을 참고로 하여 주문을 했다. 우선 이것은 우리식의 감자전과 비슷할 것이라는 생각으로 주문한 것이었는데, 비주얼은 물론 밀가루를 섞지 않고 감자를 강판에 갈아 만든 느낌을 주는 것이 우리네 감자전과 정확히 일치한다.   

이것은 너무도 뻔한 브레드 수프인데, 브레드 수프 자체야 딱히 리투아니아식이라고 할 수 없을 만큼 전 세계에 보편화되어 있는 아이템이기는 하다. 다만  수프를 담고 있는 빵의 색깔이 짙고, 무언가 밀가루 이외에 다른 것을 많이 함유하고 있다는 느낌이 조금 새롭다. 수프 자체 또한 조금 걸쭉한 것이 오트밀을 생각나게  하던데, 어쨌거나 전체적인 평가를 하자면 여기까지는 성공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둘만으로는 식사가 안될 듯싶어 야채와 고기가 듬뿍 들어간 스튜를 생각하며 한 가지를 더 주문했다. 뭐 예상과 크게 틀리지 않았고 먹을 만도 했는데, 다만 이것저것 야채와 고기를 닥치는 대로 넣었을 뿐, 비주얼은 다소 소홀히 한 듯 하다. 결론적으로 음식의 평가를 함에 있어 보는 맛(비주얼) 또한 중요하다고 여기는 나로서는 B+ 이상은 주기 곤란한 수준이다.



### 셋째 마당: Epilogue



유럽의 역사 깊은 도시들의 경우 관광지로서 사람들을 잡아끄는 매력은 구시가지가 갖고 있다. 뿐만 아니라 구시가지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정치(행정)와 경제의 중심지로서 그네들의 삶 깊숙이 자리하고 있다. 그런데 카우나스의 구시가지는 언젠가부터 그와 같은 역할의 상당 부분을 신시가지에 넘겨준 듯하며, 그로 인하여 오늘날에는 신시가지가 카우나스 사람들의 삶의 축이 되어 버린 듯한 느낌을 강하게 준다. 낯선 이방인인 내가 보기에도 카우나스의 구시가지는 날로 쇠락하여 가는 듯한 인상이 강하던데, 언제나 그렇듯 사라지는 모습을 바라보는 마음에는 잔잔한 아쉬움이 밀려온다.






이전 05화 슬픔과 한을 간직한 나라, "리투아니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