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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깨달음의 샘물 Apr 14. 2024

내 마음속 올타임 베스트 듀오, "사이먼 앤 가펑클"

안데스산맥에 사는 인디오의 한이 담긴 "El condor pasa"

1. 나에게 다가온 사이먼 앤 가펑클


누군가 내게 당신이 생각하는 올타임 베스트 듀오는 누구인가?를 물어온다면 난 1980년대 초중반을 온전히 그들의 노래로 물들인 왬(Wham), 그리고 1960년대 중후반에 연이은 히트곡을 발표하며 전 세계의 차트 정상을 휩쓸었던 사이먼 앤 가펑클(Simon And Garfunkel)을 두고 잠시 고민에 빠질 것 같다. 물론 조지 마이클이 솔로로 전향한 이후까지 포함하면 Wham이 빌보드 정상을 더 많이 밟았고 나 또한 그들의 노래를 많이 좋아하기는 한다. 그러나 단 한 팀만을 꼽으라면 난 역시 사이먼 앤 가펑클이다. 형의 도움으로 팝의 세계에 눈을 떴던 나를 팝이라는 심연에 빠뜨리고 그로부터 벗어날 수 없게 만든 것이 바로 사이먼 앤 가펑클이었기 때문이다. 


1972년, 이제 초등학교 6학년이 된 그때 나를 사로잡았던 것은 "El condor pasa(If I Could)"였다. 사이먼 앤 가펑클의 많은 히트곡 중에서 내가 왜 그렇게 El condor pasa(If I Coul)에 빠져 들었지는 솔직히 나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때까지 내가 듣던 팝과는 무언가 다른, 이질감이 주는 생소함이 은근슬쩍 나를 사로잡았던 것이 아닐까 싶다. 아울러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가사를 이해하기 시작한 것도 그 이유라면 이유가 될 수 있을 것 같고. 


나중에야 알게 된 것이지만, 그러한 이질감을 느꼈던 이유는 이곡의 원곡이 안데스 산맥에 사는 인디오의 염원을 담은 전통음악을 기반으로 다니엘 알로미아 로블레스(Daniel Alomía Robles, 1871 ~ 1942)가 1913년에 발표한 민중가요이었기 때문이었다. 뿐만 아니라 앨범의 편곡을 맡은 이가 차랑고(charango)와 퀘나(quena), 봄보(bombo) 등과 같은  안데스 지역을 대표하는 악기들을 사용하였기 때문에 나로서는 전혀 들어보지 못했던 신비로운 소리를 맛볼 수 있었기도 하고. 


각설하고 어린 시절의 나를 온전히 사로잡았던 "El condor pasa(If I Could)"를 들어보자. 

아, 이 노래의 원곡 El condor pasa는 안데스산맥에 사는 인디오들에게 노래 그 이상의 엄청난 의미를 갖고 있는데, 그것을 언급하기에는 내 자신은 너무 천박하기만 하다. 다행히 그를 멋있게 풀어 설명해 주는 글이 있으니, 관심 있다면 아래의 사이트를 들어가 보기를...



2. 사이먼 앤 가펑클, 그들은 누구인가?


사이먼 앤 가펑클(Simon & Garfunkel)은 폴 사이먼(Paul Simon, 1941~)과 아트 가펑클(Art Garfunkel, 1941~)로 구성된 미국의 전설적인 포크 록 듀오이다. 밥 딜런, 롤링 스톤스, 비틀스  등과 함께 1960년대 가장 많은 음반을 판 그룹 중 하나로 그 이름을 당당히 올리고 있는. 


동년배인 두 사람은 1953년 뉴욕에서 처음 만나 음악 공부를 함께 했다. 그러다가 1957년에 16살 어린 나이에 의기투합하여 Tom & Jerry라는 이름으로 자작곡 "Hey Schoolgirl"을 발표하는데, 그 분위기는 딱 그들이 우상으로 삼았던 에벌리 브라더스(Everly Brothers)의 그것이다. 어디 16살 어린 나이의 사이먼과 가펑클을 만나러 가볼까나?

그 이후에 두 사람은 각기 솔로의 길을 걷지만 큰 재미는 못 보다가, 1963년 포크 음악에 대한 대중의 관심에 귀를 기울여 재결합한다. 그리고 컬럼비아 레코드와 사이먼 앤 가펑클 이름으로 계약을 맺고서 본격적으로 음악활동을 시작하는데, 그들의 이후 음악활동에 대해서는 뒤에서 따로 상세히 이야기하도록 하겠다.


사이먼 & 가펑클은 10회의 그래미 수상 경력이 있으며 1990년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입성할 정도로 뚜렷한 음악적 성과를 냈다. 그러나 음악적 견해 차이 등으로 1970년 불후의 명반 Bridge over Troubled Water를 발매하고 해체된다. 물론 해체된 이후에도 둘은 때로 함께 실황공연을 이어갔는데, 이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1981년의 센트럴 파크 콘서트이다. 11년 만에 재결합하여 공연한 이 콘서트에는 무려 50만  명 이상의 관객이 몰려들었으며,  공연실황은 "The Concert in Central Park"라는 이름의 라이브 앨범으로 발매됐다. 그리고 센트럴 파크 공연 실황의 수익금은 공원의 재개발과 유지 관리에 사용했고.



3. 사이먼 앤 가펑클의 음악


그가 누가 되었든 간에 한 가수의 음악은 그가 발매한 음반을 가지고 이야기하는 것이 가장 쉽고 또 정확하다고 생각해 왔는데, 이는 사이먼 앤 가펑클에 대해서도 그대로 타당하다. 그런데 20세기 최고의 듀오라는 찬사를 받는 이름값에 걸맞지 않게 사이먼 앤 가펑클이 발매한 정규 앨범은 고작 다섯 장에 불과하다. 그리고 그 이유는 역시 1964년에 첫 앨범을 낸 지 불과 6년 만인 1970년에 전격적으로 해체되었기 때문에 실제로 듀오로 활동한 기간이 절대적으로 짧다는 것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물론 1968년에는 영화 졸업(THE GRADUATE)의 사운드트랙의 음반도 발매했고, 1972년에는 사이먼 앤 가펑클 히트곡 모음 앨범(SIMON AND GARFUNKELS GREATEST HITS)도 발매했기는 했다. 그러나 이글에서 난 오직 정규앨범에만 포커스를 맞추어 사이먼 앤 가펑클의 음악을 이야기하려고 한다. 

The Graduate(Soundtrack Album)
SIMON AND GARFUNKELS GREATEST HITS

(1) 제1집 Wednesday Morning, 3 A.M.

사이먼 앤 가펑클의 데뷔 첫 앨범은 1964년에 발매된 Wednesday Morning, 3 A.M.인데, 이 앨범은 단 하나의 히트곡도 만들어내지 못하고 상업적으로 완전히 실패한다. 그런데 이 음반의  프로듀서와 제작자가  Side One의 6번째 곡으로 수록되어 있던 어쿠스틱 버전의 "The Sounds of Silence"를 이들의 동의도 없이  전자기타와 드럼을 추가하여 오버 더빙을 해서 1965년에 싱글로 발매하는데, 그만 이 버전이 빌보드 차트 정상을 차지하는 이변이 발생한다. 

제1집: Wednesday Morning, 3 A.M.

(2) 제2집 Sounds of Silence

전자기타와 드럼을 추가하여 발매한 싱글 The Sounds of Silence의 대성공은 1집의 실패로 사실상 해어져 있던 사이먼과 가펑클을 다시 불러 모으는 계기가 된다. 그리고 2집 앨범 Sounds of Silence를 부랴부랴 만들어 1966년 1월에 발매하는데, 앨범 제목을 싱글로 히트한 The Sounds of Silence에서 The만 생략한 Sounds of Silence로 붙일 만큼 전적으로 The Sounds of Silence에 묻어간 측면이 강하다. 이 때문인지 이 앨범의 작품성에 대한 세간의 평가는 거의 최악의 수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심지어 긴급 컬렉션 앨범이라는 표현까지 쓰고 있을 정도니까 더 말할 것이 없다.

제2집 Sounds of Silence

자, 이제 우여곡절 끝에 사이먼 앤 가펑클에게 처음으로 빌보드 차트 1위의 영예를 안겨 준 "The Sounds of Silence"를 들어보자. 아, 유튜브에 1965년 버전으로 소개되어 있는 영상이 있어서 그를 가져왔는데, 곡 소개에는 제목이 Sounds of Silence로 되어 있다. 

아, 2집 앨범에서는 The Sounds of Silence  외에 또 한 곡이 뒤늦게 빌보드 싱글 차트 상위권에 진입하는데, 바로 3위에까지 오른 "I'm a Rock"이 바로 그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상당한 반향을 일으켰던 "I'm a Rock"을 1966년 버전으로 들어보자. 


(3) 제3집 Parsley, Sage, Rosemary and Thyme

여세를 몰아 이들은 같은 해인 1966년에 제3집 앨범 Parsley, Sage, Rosemary and Thyme를 세상에 내놓는다. 이 음반부터 비로소 사이먼과 가펑클은 자신들이 추구하는 음악을 음반에 담기 시작했으며, 특히 제3집은 사회적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들의 이러한 노력은 이 음반이 빌보드 음반 차트에서 4위까지 오르고, 미국 음반 산업 협회에 의해 트리플 플래티넘 인증을 받을 정도로 세인들의 주목을 받음으로써 보상을 받게 된다. 

제3집  Parsley, Sage, Rosemary and Thyme

이 앨범에서는 "Homeward Bound"가 빌보드 싱글 차트 5위에 오를 정도로 인기를 얻었고, 앞에서 잠깐 언급했던 1981년의 센트럴 파크 콘서트에서도 불렸는데, 여기서는 이 노래를 콘서트 실황 영상으로 들어보도록 하자. 다만, 고백하건대 이곡은 내 머릿속 저장탱크 어디에도 남아 있지 않는다.

한편 이 앨범의 타이틀곡은 우리에게도 너무나 익숙한  "Scarborough Fair"인데, 막상 Scarborough Fair는 빌보드 싱글 차트에서는 찾아보지 못한 것 같다. 아, Scarborough Fair는 영국의 전통적 발라드인데,  제목인 Scarborough Fair에 대해서는 약간의 보충 설명이 필요할 듯하다. 우선 Scarborough는 중세 말기 요크셔 지방 (현 노스요크셔 주)의 북해 연안의 행락지로 영국 내 상인들의 중요한 교역장이었다. 그리고 Scarborough에는 어릿광대나 마술사가 모여들어서 8월 15일부터  45일간의 거대한 시장이 열렸는데, 이 시장이 바로 Scarborough Fair이다. 한편 Scarborough Fair라는 노래는 16~17세기에 오래된 발라드를 개작한 것이라고 전해지며, 음유시인들이 노래를 전하고 다니는 과정에서 수없이 많은 버전으로  불렸다고 한다. 그리고 이를 사이먼과 가펑클이 편곡하여 부르게 되었는데, 오늘날에는 Scarborough Fair라고 하면 곧 사이먼 앤 가펑클의 그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폴 사이먼의 감미로운 음성이 돋보이는 Scarborough Fair를 듣지 않고 넘어갈 수는 없다. 


(4) 제4집 Bookends 

2년 전의 성공을 뒤로하고 1968년 사이먼 앤 가펑클은 제4집 앨범 Bookends를 발매하는데, Bookends는 어린 시절부터 노년까지의 인생 여정을 탐구하는 콘셉트 음반이라고 불린다.  

제4집 Bookends

이 앨범에 수록된 "Mrs. Robinson"은 이들의 노래 중 두 번째로 빌보드 싱글 차트 1위에 오르게 되고, 1969년 그래미상에서 올해의 음반상을 수상하기도 한다. 여기서 Mrs. Robinson을 앞에서 잠깐 언급했던 1981년의 센트럴 파크 콘서트 실황 영상으로 들어보도록 하자. 

(5) 제5집 Bridge over Troubled Water

1970년 1월. 사이먼 앤 가펑클은 문제적 음반 Bridge over Troubled Water를 시장에 내놓는다. 이 앨범은 사이먼 앤 가펑클의 앨범들 중 상업적으로 가장 성공했을 뿐만 아니라 평론가들로부터도 긍정적 평가를 이끌어 냈다. Bridge over Troubled Water는 빌보드 앨범 차트에서 10주 동안 1위를 했고, 무려 85주 동안 차트에 머물러 있었다. 또한 UK 앨범 차트에서도 33주 동안이나 누적 1위를 달성했고. 그 밖에도 여러 나라의 앨범 차트에서 1위를 기록했다. 뿐만 아니라 "Bridge over Troubled Water"와 "The Boxer"가 빌보드 싱글 차트 1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는데, 그 결과 1971년 그래미 어워드는 온전히 그들의 독무대가 되어 버린다. 올해의 앨범, 올해의 레코드, 올해의 노래 등등 6개 부문을 휩쓸어 버리니까 말이다.

자, 이제 "Bridge over Troubled Water"와 "The Boxer"를 연달아 들어보자. 먼저 Bridge over Troubled Water이고, 

The Boxer이다. 

한편 이 앨범에는 에벌리 브라더스(Everly  Brothers)가 1957년에 발표하여 많은 사랑을 받았고, 그 후에도 여러 가수들이 리바이벌해서 우리에게도 너무나도 익숙한 노래인 "Bye Bye Love"도 수록되어 있는데, 에벌리 브라더스의 원곡이 이렇게 유튜브에 올라 있어서 가져와 봤다. 

Bye Bye Love와 관련하여서는 한 가지 덧붙여 둘 이야기가 있어. 그건 이 글을 쓰려고 유튜브를 둘러보다가 사이먼 앤 가펑클과 에벌리 브라더스가 함께  Bye Bye Love를 부르는 영상과 마주치게 되었다는 것인데, 에벌리 브라더스... 노익장이란 단어를 떠올리게 만든다. 다시 한번 말해 두지만, 지금에야 사이먼 앤 가펑클이 더 유명해졌지만, 그들의 데뷔시절 우상은 바로 에벌리 브라더스였다.

한편 앞서 이야기했던 El condor pasa(If I Could) 또한 이 앨범에 실려 있다. 이처럼 이 앨범은 그야말로 베스트 앨범이라고 불러도 전혀 손색이 없을 만큼 훌륭한 넘버로 가득 차 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대성공을 끝으로 사이먼 앤 가펑클은 해체되는 비운을 맞게 된다. 



4. Wham을 이야기하자.


내 마음속 우선순위에서 사이먼 앤 가펑클에게 밀렸을 뿐, Wham은 세계 음악시장에서 그보다 성공한 듀오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대단한 듀오이다. Wham은 고등학교 동창 사이인 조지 마이클(George Michael,1963~2016)과 앤드루 리즐리(Andrew Ridgeley, 1963~)가 결성한 듀오인데, 1983년에 제1집 앨범 Fantastic을 발표하며 데뷔한다. 

제1집 Fantastic

그리고 다음 해인 1984년에 제2집 Make It Big을 내면서 전 세계 음악 팬들의 머릿속에 자신들의 존재를 확실하게 각인시키게 된다. 

제2집  Make it Big

그건 이 앨범에서 무려 3곡이 빌보드 싱글 차트에서 1위에 연이어 올랐기 때문인데, 그 첫 테이프를 끊은 것은 바로 "Wake Me Up Before You Go-Go"였다. 나 또한 이 노래를 통하여 Wham과 처음 만났는데, 사법시험 2차 준비에 바빴던 와중에도 즐겨 들을 만큼 좋아했던 이곡을 다시 한번 들어 보기로 하자.

이듬해인 1985년 같은 앨범에서 Careless Whisper와 Everything She Wants가 연달아 1위를 점령해 버리는데, 이 가운데 내게 조금 더 친숙한 "Careless Whisper"만 들어  보기로 하겠다는... 아, 한 가지 이상한 것이 있는데, 그것은 1985년이면 해체되기 이전인데, Wham으로는 이 곡이 유튜브에서 검색이 안된다는 것이다. 하여 어쩔 수 없이 조지 마이클 버전으로 소개하기로 한다.  

아, Wham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곡으로 1984년 12월 13일에 싱글로 발매된 "Last Christmas"가 다. 수많은 캐롤 중에서 최대 히트곡 중 하나로 손꼽힐 뿐만 아니라 빌보드 싱글 차트에서도 4위에 랭크될 정도로 인기를 끌었던 곡인데, 이 또한 듣지 않고 넘어갈 수는 없는 일이다. 

Last Christmas는 개인적으로도 Feliz Navidad와 함께 가장 좋아하는 캐롤인데, 말 나온 김에 Feliz Navidad도 들어 보기로 하자. 음, 여러 버전이 있지만, 여기서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호세 펠리치아노 버전으로 들어 보겠다는.

Wham은 1986년에 3집이자 마지막 스튜디오 앨범인 Music from the Edge of Heaven을 낸 후 같은 해 6월 28일 웸블리 스타디움에서의 공연을 끝으로 해체되는데, 해체 이유는 내가 할 이야기가 아닌 것 같아 생략하는 것으로.

제3집  Music from the Edge of Heaven 사진출처: https://namu.wiki/w/Music%20from%20the%20Edge%20of%20Heaven

Wham의 해체 후 두 사람은 각기 솔로로 전향하는데, 앤드류 리즐리는 사실상 아무런 주목을 받지 못했다. 1991년 이후엔 아예 음악활동을 접은 듯하고. 그러나 이에 반해 조지 마이클은 솔로로 전향한 후 이른바 대박을 친다. 1987년에 발매된 솔로 데뷔 앨범 Faith는 전 세계적으로 2,500만 장이 판매되어 역대 베스트셀러 앨범의 반열에 올랐고, 이 앨범에서 무려 4곡이 빌보드 싱글 차트 1위에 오르니 말이다. 

데뷔앨범 Faith

이 앨범의 리드 싱글 "Faith"는 1988년 빌보드 연말 차트에서 1위를 차지했고, 이어서  "Father Figure", "One More Try" 그리고 "MonkAlb가 연이어 빌보드 싱글차트에서 1위에 오른다. 이를 토대로 앨범 Faith는 1989년 그래미상에서 올해의 앨범 상을 수상하기도 하고. 다만 1986년을 넘어서면서 내가 팝을 즐겨 듣지 않기 시작해서 이곡들에 대해서는 할 말이 전혀 없다. Faith가 1988년을 통틀어 1위의 자리에 올랐다고 해서 들어봤는데, 역시 내 취향은 아니던데, 그렇지만 그 명성을 고려하여 올려놓기로 하니 한 번 들어보기를...

그런데 이 곡 "Father Figure"는 무언가 몽환적인 느낌을 주는 새로운 시도로 보여 좋았고, 비디오도 매력적이다. 

한편 조지 마이클의 상승가도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1990년에 발매된 그의 두 번째 솔로 앨범인 Listen Without Prejudice Vol. 1은 영국에서  앨범 차트 1위를 차지했고, 그에 수록된  "Praying for Time"은 빌보드 싱글 차트에서도 1위에 오를 정도로 말이다. 또한 비록 빌보드 차트에서 1위에 오르지는 못했지만 세계적으로 히트한 "Freedom!"도 이 앨범에 수록되어 있다. 

2집  Listen Without Prejudice Vol.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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