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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깨달음의 샘물 Apr 06. 2024

자신만의 색깔로 정상에 오른 "Billy Joel"

피아노 맨 빌리 조엘이 부르는 "Piano Man"에 빠져 봅시다!

1. 빌리 조엘(Billy Joel), 그는 누구인가?



(1) 전설이 되어버린 가수, 빌리 조엘

미국 뉴욕 출신의 싱어송 라이터로 1970년대 초반부터 1980년대 말까지 수많은 히트곡을 쏟아 낸 전설적인 가수가 있다. 두번씩이나 빌보드 앨범차트 1위에 올랐으며, 또한 싱글차트에서도 3번씩이나 1위에 오른 그는 바로 "빌리 조엘(Billy Joel, 1949~)"이다. 음, 본명은 William Martin Joel이네.

빌리 조엘.  사진출처: https://namu.wiki/w/%EB%B9%8C%EB%A6%AC%20%EC%A1%B0%EC%97%98

대체 빌리 조엘이 어떤 가수이길래  내가 "전설적인"이란 단어를 쓰고 있는지를 궁금해하는 사람일 있을 수 있다. 하여 다들 아는 얘기이겠지만 빌리 조엘을 조금 더 이야기해 보기로 하겠다. 빌리 조엘... 우선 수상 경력부터 화려하기 그지없다. 그래미상을 5회(6회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다)나 수상했고, 그것도 모자라 1991년에는 그래미 레전드상도 수상했다. 로큰롤 명예의 전당은 물론 작곡가협회 명예의 전당에도 입회했고. 기타 세세한 수상경력은 하도 많으니 생략하는 것으로 하겠다.


그런가하면 빌리 조엘은 정규 앨범 13장과 공연 실황 앨범 2장을 포함하여 15장의 앨범을 발매했는데, 약 1억 6천만장이 판매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래서 비틀즈, 엘비스 프레슬리, 레드제플린 등의 뒤를 이어 음반 판매량 6위에 랭크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1973년부터 지금까지 50년 동안 전세계 팬들의 사랑을 받고 있으니, 이 정도면 전설이라 칭해도 되지 않겠는가?


(2) 특별함의 대명사, 빌리 조엘을 이야기 한다.

일세를 풍미한 뮤지션들이라면 그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누구나 자신만의 특별함을 갖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유독 빌리 조엘에 대해서 특별함을 강조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건 그의 음악이 1960년대와 1970년대를 관통했던 음악적 조류인 록이나 디스코와는 상당한 거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것이 그가 음악활동 초기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던 이유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다만 그 특별함의 실체가 무엇인지를 정확히 이야기할 수는 없다. 혹자는 이러한 특별함의 원인을 그가  4살 때부터 정식으로 피아노 교육을 받아서 클래식을 기저에 깔고 있다는 것에서 찾기도 하는데, 솔직히 전적으로 동의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2. 빌리 조엘의 음악


지금부터 빌리 조엘의 음악을 이야기해보자. 빌리 조엘은 1973년에 발표한 "Piano Man"을 통하여 노래를 부르는 음유시인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큰 인기를 끌었고, 이로 인해 '피아노 맨(Piano Man)'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의 인기는 수십년에 걸쳐 지속되고 있고.


그러나 빌리 조엘의 음악인생이 처음부터 꽃길만 걸었던 것은 아니었다. 빌리 조엘은 록밴드 "더 해슬스(The Hassles)"에서 본격적인 음악활동을 시작하는데, 해슬즈 시절에 발표한 두장의 앨범, 즉 제1집 "The Hassles(1967년)"와 제2집 "Hour of the Wolf(1969년)"는 이렇다 할 히트곡 하나 남기지 못하고 상업적으로 완전히 실패한다. 이에 빌리 조엘은 1969년 해슬스를 탈퇴하여 해슬스의 드러머였던 존 스몰과 함께 듀오 아틸라(Attila)를 결성하여 1970년 1집 "Attila"를 발매하게 되는데, 이 앨범 또한 상업적으로 실패한다.

he Hassles. 가장 왼쪽이 빌리 조엘.사진출처https://namu.wiki/w/%EB%B9%8C%EB%A6%AC%20%EC%A1%B0%EC%97%98

이에 빌리 조엘은 아틸라 활동을 그만 두고 1971년  제1집 Cold Spring Harbor를 들고 솔로로 데뷔하게 되는데, 이런저런 이유로 그의 솔로 데뷔앨범 또한 참패로 돌아간다. 결국 1967년부터 1971년까지 그룹과 솔로로 활동하면서 발표한 4장의 앨범이 모두 실패한 것잉ㄴ데, 사실 이 정도면 거의 포기단계에 이르기 마련이다.


그런데 빌리 조엘은 달랐다. 이 암울한 시절에 빌리 조엘은 절치부심하며 다시 2년의 준비를 거쳐 1973년에 컨트리 록과 포크 록을 시도한 문제적 앨범 "Piano Man"을 발매하는데, 그의 제2집 Piano Man은 빌보드 앨범 차트에서 27위에 오르는 등 여러나라에서 차트에 진입한다. 이런 점에서 그의 제2집 Piano Man은 첫 성공을 거둔 빌리 조엘 앨범으로 기록될 수 있다. 한편 이 앨범의 타이틀 곡인 "Piano Man"은 싱글로도 발매되었는데, "Piano Man"은 빌보드 싱글 차트에 진입한(25위) 그의 첫 곡으로 남게 된다. 이 때문인지 몰라도 빌리 조엘을 떠올리면, 난 어느새 4전5기의 신화를 창조한 복서 홍수환의 생각에 빠져 버리곤 한다.


주지하듯이 피아노맨은 빌리 조엘이 자신의 친구이자 피아니스트였던 피터라는 인물을 회상하면서 쓴 곡이라고 하는데, 곡의 제목과 가사의 내용 모두 피아노 맨과 관련있어서 그런지 실제 라이브 무대에선 거의 피아노 반주가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이쯤에서 피아노 맨 빌리조엘이 피아노 앞에서 부르는 "피아노 맨"을 들어보도록 하자.

그러나 빌리 조엘은 "Piano Man"의 상승세를 이어가지 못한다. 물론 다음해인 1974년에 발매한 제3집 "Streetlife Serenade"가 빌보드 앨범차트에 오르고, 이 앨범에 수록된 싱글 "The Entertainer" 또한 빌보드 싱글 차트에서 ( 미국에서 히트곡 여부를 결정짓는) 40위 안에 진입하기는 했다. 그러나 제2집 Piano Man의 성공에 비할 수준은 아니었다.  "The Entertainer"라는 노래인데, 그리 익숙하단 생각은 들지 않을 텐데, 솔직히 말해 나 또한 그렇다.

1974년의 앨범이 평년작 수준에 그친 후 빌리 조엘은 2년간 절치부심하며 앨범 작업에 매달렸고, 1976년에그 결과물인 제4집 앨범 "Turnstiles"를 들고 다시 우리 앞에 나타났다. 그리고 "Turnstiles"은 음악적으로 한층 성장한 앨범이라는 호평을 받는데, 아쉽게도 그러한 평판이 상업적 성공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3, 4집의 연이은 부진에 빌리 조엘은 프로듀서를 필 라몬으로 바꾸고, 1977년에 제5집 앨범 "The Stranger"를 세상에 내놓는다. 그리고 "The Stranger"는 빌보드 앨범 차트 2위에 오르며 미국에서만 1천만 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리는 대성공을 거두었고, 평단으로부터도 호평을 받는다. 뿐만 아니라 "The Stranger"에 수록던 싱글 가운데 무려 다섯곡이 빌보드 싱글 차트 40위권 안에 진입하는데, 그 가운데 "Just the Way You Are"는 1979년 제21회 그래미 어워드에서 올해의 노래, 올해의 레코드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거두게 된다. 이쯤에서 빌리 조엘에게 그래미상을 안겨준 우리에게도 너무나 익숙한 노래, 그러나 따라 부르기에는 결코 쉽지 않은 노래 "Just the Way You Are"를 들어보기로 하자.

결과적으로 필 라몬과 손잡고 앨범 작업에 착수한 것은 그야말로 신의 한 수였다. 제5집 앨범이 빅 히트한 다음 해인 1978년에 발표한 제6집 "52nd Street" 또한 소위 대박을 쳤으니 말이다. "52nd Street"는 그의 앨범 가운데 빌보드 앨범 차트에서 1위에 오른 첫 앨범이 되었고, 그에 대한 음악적 평가 또한 호평 일색이었다. 그리고 1980년 그래미 어워드에서 올해의 앨범상을 수상하게 된다.  또한 동 앨범에 수록된 곡 중 3곡이 싱글 차트 40위권에 진입하는데, 그 가운데에 "Honesty"는 우리에게도 너무나 잘 알려진 곡이니 한번 들어보고 가기로 하자.

그런데 빌리조엘의 성공가도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1980년에 발매한 제7집 앨범 "Glass Houses"가  미국과 캐나다에서 1위, 호주에서  2위에 오르는 등 세계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고, 이번엔 1981년 그래미 어워드에서 최우수 록 남성 보컬상을 수상하게 되니 말이다. 또한 싱글로 발매한 곡들 모두가 싱글 차트 40위권 진입에 성공하는데, 특히 주목할 것은 그 가운데 "It's Still Rock and Roll to Me"이다. 왜냐하면 "It's Still Rock and Roll to Me"로 빌리 조엘은 생애 처음으로 빌보드 싱글차트 1위에 오르게 되기 때문이다. 사실 지금까지 이야기한 그의 어떤 곡들도 10위 이내로 진입한 적이 없었음을 생각하면, "It's Still Rock and Roll to Me"의 1위 등극은 정말 대단한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허니 이를 들어보지 않을 수는 없는데, 다만 이곡은 내가 열광했던 그의 이전 노래 스타일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다.

이같은 상업적 성공을 뒤로 하고 빌리 조엘은 베트남전쟁, 베이비 붐 시대의 애환,  아메리칸 드림 등과 같은 사회적 메시지를 담고 있는 독특한 앨범인 제8집 "The Nylon Curtain"을 1982년에 내놓는다. "The Nylon Curtain"는 평론가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업적으로는 조금 쉬어가는 느낌이 강했다. 물론 싱글로 발매한 두곡이  싱글 차트 40위권에 진입했고, 베트남 전쟁에 대한 곡 "Goodnight Saigon"가 벨기에와 네덜란드에서 1위를 기록하기도 했지만 말이다.


1982년에 제8집으로 잠시 숨을 고른 빌리 조엘은 1983년 제9집 "An Innocent Man"으로 다시 큰 성공을 거두게 된다. 싱글로 발매한 "Tell Her About It"이  그 생애 두 번째로 빌보드 싱글 차트 1위에 오르고, "Uptown Girl"이 영국 싱글 차트 1위에 올랐으며, 후속 싱글들도 모두 빌보드 싱글 차트 40위권에 진입했으니 "An Innocent Man"은 대성공을 거두었다고 할만 하다.


여기서는 먼저 마치 1930년대 극장가를 다룬 한편의 영화와 같은  느낌을 주는 "Tell Her About It"의 공식 비데오를 보도록 하자.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빌리 조엘의 노래들은 대부분 빠른 템포를 띠게 되는데, 이러한 변화로 인해 1980년대에 들어 그가 발표한 곡들은 히트 여부를 떠나 나에게는 다분히 생경하기만 하다.그런데 그 역시 빠른 템포의 곡이지만, "Uptown Girl"은 무언가 예전의 노래들과 같은 맥락을 띠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즐겨 들었는데, "Uptown Girl"... 이런 노래이다.

빌리 조엘은 1986년 제10집 "The Bridge"에서 뉴웨이브 음악을 시도하는데, 이 또한 나름 준수한 성적을 거둔다. 그리고 3년의 휴지기를 거쳐 1989년 제11집 "Storm Front"를 발매하는데, 이 앨범은 미국에서만 4백만 장 이상이 팔리는 큰 성공을 거두며 빌보드 앨범차트에서도 1위에 오른다. 1980년에 발매했던 제7집 "Glass Houses"이후로 9년 만에 말이다. 뿐만 아니라 싱글로 발매한 곡들도 대부분  싱글 차트 40위권 진입에 성공했으며, 리드 싱글 "We Didn't Start The Fire"는 다시 한번 빌보드 싱글차트 1위에 당당하게 오르게 되는데, 그의 3번째이자 마지막 싱글 차트 1위곡 "We didn't  Start The Fire"이다.  

빌리 조엘의 앨범 작업은 이 이후에도 계속 이어져서 1993년에 제12집 "River of Dreams", 2001년에 제13집 "Fantasies & Delusions"이 발매된다. 그러나 내가 "Uptown Girl"을 끝으로 더 이상 빌리 조엘의 음악을 듣지 않아서 그들 앨범에 어떤 곡이 담겨 있고, 어느 정도의 성공을 거두었는지는 전혀 관심이 없다. 때문에 더 이상 빌리 조엘과 그의 음악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으니, 이번 글은 빌리 조엘의 내한 공연 이야기를 덧붙이는 선에서 끝맺는 것으로 하겠다.


빌리 조엘은 제12집 앨범을 끝으로 주로 공연을 통해 팬들과 만나왔는데, 그러던 2008년 내한공연을 갖는다. 달려가 보고 싶었지만, 당시 내가 이런저런 좋지 않은 일을 겪고 있어서 달려갈 여력이 없었다는...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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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리 조엘 내한공연 포스터.


사진출처: https://m.blog.naver.com/kafei019/222604969046










그러나 빌리 조엘은 이러한 상승세를 이어가지는 못해. 물론 다음해인 1974년에 발매한 제3집 "Streetlife Serenade"가 빌보드 앨범차트에 오르고, 이 앨범에 수록된 싱글 "The Entertainer" 또한 빌보드 싱글 차트에서 ( 미국에서 히트곡 여부를 결정짓는) 40위 안에 진입하기는 했지. 그러나 제2집인 피아노맨의 성공에 비할 수준은 아니었다고 봐야 해. 어때? 그리 익숙하지 않지? 솔직히 말해 나 또한 그래.






빌리 조엘은 1976년, 2년간 절치부심하며 작업을 한 결과물인 제4집 앨범 "Turnstiles"를 들고 다시 우리 앞에 나타나. 그리고 "Turnstiles"은 음악적으로 한층 성장한 앨범이라는 호평을 받지. 그러나 그러한 평판이 상업적 성공으로 이어지지는 않았어.



3, 4집의 연이은 부진에 빌리 조엘은 프로듀서를 필 라몬으로 바꾸고, 1977년에 제5집 앨범 "The Stranger"를 세상에 내놓아. 그리고  "The Stranger"는 빌보드 앨범 차트 2위에 오르며 미국에서만 1천만 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리는 등 대성공을 거두었고, 평단으로부터도 호평을 받아. 뿐만 아니라 "The Stranger"에 수록던 싱글 가운데 무려 다섯곡이 빌보드 싱글 차트 40위권 안에 진입하지. 그리고 그 가운데 "Just the Way You Are"는 1979년 제21회 그래미 어워드에서 올해의 노래, 올해의 레코드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누려. 이쯤에서 빌리 조엘에게 그래미상을 안겨준 우리에게도 너무나 익숙한 노래, 그러나 따라 부르기에는 결코 쉽지 않은 노래 "Just the Way You Are"를 들어보자.






필 라몬과 손잡고 앨범 작업에 착수한 것은 그야말로 신의 한 수였어. 5집 앨범이 빅 히트한 다음 해인 1978년에 발표한


6집 "52nd Street"는 그의 앨범 가운데 빌보드 앨범 차트에서 1위에 오른 첫 앨범이 되었고,  평단으로부터 호평을 받아. 그리고 1980년 그래미 어워드에서 올해의 앨범상을 수상하게 되지. 또한 동 앨범에 수록된 곡 중 3곡이 싱글 차트 40위권에 진입하는데, 그 가운데에 "Honesty"는 우리에게도 너무나 잘 알려진 곡이니 함 들어보구 가자구.






빌리조엘의 성공가도는 여기서 끝나지 않아. 1980년에 발매한 제7집 앨범 "Glass Houses"가  미국과 캐나다에서 1위, 호주에서  2위에 오르는 등 세계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거든. 그리고 이번엔 1981년 그래미 어워드에서 최우수 록 남성 보컬상을 수상하기도 하지. 또한 싱글로 발매한 곡들 모두가 싱글 차트 40위권 진입에 성공하는데, 특히 주목할 것은 그 가운데 "It's Still Rock and Roll to Me"야. 왜냐하면 "It's Still Rock and Roll to Me"로 빌리 조엘은 생애 처음으로 빌보드 싱글차트 1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기 때문이야. 사실 지금까지 이야기한 그의 어떤 곡들도 10위 이내로 진입한 적이 없었음을 생각하면, "It's Still Rock and Roll to Me"의 1위 등극은 정말 대단한 사건이라 할 수 있어. 허니 이를 들어보지 않을 수는 없는데, 다만 내가 열광했던 그의 이전 노래 스타일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어.






1982년 발매된 제8집 "The Nylon Curtain"은 베트남전쟁, 베이비 붐 시대의 애환,  아메리칸 드림 등과 같은 사회적 메시지를 담고 있는 독특한 앨범이야. 때문에 평론가들의 호평에도 불구하고 상업적으론 조금 쉬어가는 느낌이 강했어. 물론 싱글로 발매한 두곡이  싱글 차트 40위권에 진입했고, 베트남 전쟁에 대한 곡 "Goodnight Saigon"가 벨기에와 네덜란드에서 1위를 기록하기도 했지만 말이얘ㅣㅣ. 그러나 5,6, 7집이 이루어 낸 성공과는 비교 자체가 안돼.



1982년에 제8집으로 잠시 숨을 고른 빌리 조엘은 1983년 제9집 "An Innocent Man"으로 다시 큰 성공을 거두게 돼. 싱글로 발매한 "Tell Her About It"이  그 생애 두 번째로 빌보드 싱글 차트 1위에 오르고, "Uptown Girl"이 영국 싱글 차트 1위에 오르게 되거던. 뿐만 아니라 후속 싱글들도 모두 빌보드 싱글 차트 40위권에  진입했고.



여기서는 먼저 마치 1930년대 극장가를 다룬 한편의 영화와 같은  느낌을 주는 "Tell Her About It"의 공식 비데오를 보도록 하자.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빌리 조엘의 노래들은 대부분 빠른 템포를 띠게 되는데, 이러한 변화로 인해 1980년대에 들어 그가 발표한 곡들은 히트 여부를 떠나 나에게는 다분히 생경하기만 해. 그런데 그 역시 빠른 템포의 곡이지만, "Uptown Girl"은 무언가 예전의 노래들과 같은 맥락을 띠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Uptown Girl", 이런 노래야.






빌리 조엘은 1986년 제10집 "The Bridge"에서 뉴웨이브 음악을 시도하는데, 이 또한 나름 준수한 성적을 거두어. 그리고 3년의 휴지기를 거쳐 1989년 제11집 "Storm Front"를 발매하는데, 이 앨범은 미국에서만 4백만 장 이상이 팔리는 큰 성공을 거두며 빌보드 앨범차트에서도 1위에 올라. 1980년에 발매했던 제7집 "Glass Houses"이후로 9년 만에 말이야. 그리고 싱글로 발매한 곡들도 대부분  싱글 차트 40위권 진입에 성공했으며, 리드 싱글 "We Didn't Start The Fire"는 당당 1위에 오르게 되는데, 그의 3번째이자 마지막 싱글 차트 1위곡 "We didn't  Start The Fire"야.  






빌리 조엘의 앨범 작업은 이 이후에도 계속 이어져서 1993년에 제12집 "River of Dreams", 2001년에 제13집 "Fantasies & Delusions"이 발매돼. 그러나 내가 "Uptown Girl"을 끝으로 더 이상 빌리 조엘의 음악을 듣지 않아서 그들 앨범에 어떤 곡이 담겨 있고, 어느 정도의 성공을 거두었는지는 전혀 관심이 없어. 때문에 더 이상 빌리 조엘과 그의 음악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으니, 이번 글은 빌리 조엘의 내한 공연 이야기를 덧붙이는 선에서 끝맺는 것으로 할께.



빌리 조엘은 제12집 앨범을 끝으로 주로 공연을 통해 팬들과 만나왔는데, 그러던 2008년 내한공연을 가져. 달려가 보고 싶었지만, 당시 내가 이런저런 좋지 않은 일을 겪고 있어서 달려갈 여력이 없었다는...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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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리 조엘 내한공연 포스터.


사진출처: https://m.blog.naver.com/kafei019/222604969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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