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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제대로 살고 싶다면 무엇이든 취하라

나는 무엇에 취하는가?

by 은빛지원

오늘의 필사

샤를 피에르 보들레르 산문시 『취하라』


언제나 취해 있어야 한다. 모든 것이 거기에 있다. 그것이 유일한 문제다.

그대의 어깨를 짓누르고, 땅을 향해 그대 몸을 구부러뜨리는 저 시간의 무서운 짐을 느끼지 않으려면, 쉴 새 없이 취해야 한다. 그러나 무엇에? 술에, 시에 혹은 미덕에, 무엇에나 그대 좋을 대로, 아무튼 취하라.

그리하여 때때로, 궁전의 섬돌 위에서, 도랑의 푸른 풀 위에서, 그대의 방의 침울한 고독 속에서,

그대 깨어 일어나, 취기가 벌써 줄어들거나 사라지거든, 물어보라.

바람에, 물결에, 별에, 새에, 시계에, 달아나는 모든 것에, 울부짖는 모든 것에, 흘러가는 모든 것에, 노래하는 모든 것에, 말하는 모든 것에.

물어보라, 지금이 몇 시인지.

그러면 바람이, 물결이, 별이, 새가, 시계가, 그대에게 대답하리라.

"지금은 취할 시간! 시간의 학대받는 노예가 되지 않으려면, 취하라, 끊임없이 취하라! 술에, 시에 혹은 미덕에, 그대 좋을 대로."



어디서든, 언제든, 무엇이든 상관없이 ‘취하라’는 그의 외침이 메아리친다. 단순히 술에 취하라는 얘기가 아니다. 삶에 취하고, 순간에 취하고, 어떤 감각이든 깊이 빠져드는 것. 그래야만 시간의 무게에 짓눌리지 않을 수 있다고.


우리는 종종 시간을 의식하며 살아간다. 해야 할 일, 지나가 버린 순간, 다가오는 내일. 하지만 보들레르는 그런 것들을 잊고, 지금 이 순간에 몸을 던지라고 말한다. 그리고 묻는다.

"지금이 몇 시인가?"

그 대답은 하나다.

"지금은 취할 시간!"


나는 무엇에 취하는 사람인가?

두말할 것 없이 나는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취했던 것 같다.

어떤 것이든 손에 잡으면 놓지를 못 했다. 한때는 천생 여자처럼 뜨개질과 바느질에 미쳤다. 미치도록 취해서 완성이 될 때까지 밤을 지새웠다. 어떤 과정보다 완성했을 때의 쾌락을 더 즐겼다. 병적으로 집중하기도 했던 것 같다. 김장철이 되면 몇몇 엄마들이 돌아가며 김장을 했다. 나는 손을 걷어붙이고 열심히 도와주었다. 우리 집 김장은 어땠을까? 막둥이가 어릴 때라 아기도 돌봐야 하고 김장은 산으로 갈듯하여 엄마들에게 미안한 예기지만 혼자 하기로 했다. 밤을 새워 김장을 하고 나니, 어느새 아침이 밝아오고 있었다. 아줌마들은 점심에 보쌈 한 상 차리면 된다. 승질머리기 고약해서 사는 게 참 피곤하게 살아냈다


나는 시간의 노예였던가 같다. 늘 ‘해야 할 일’에 쫓겼다. 아이를 키우고, 집안을 돌보고, 손에서 놓지 못한 취미까지. 해야 할 것들은 끝없이 밀려왔고, 나는 스스로를 옭아맸다. 시간은 나를 학대했고, 나는 그 학대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던 같다. 언제부터였을까. 나는 취하는 법을 잊어버리고, 시간에 질질 끌려다니고 있었음을 인정한다.


하지만 이제는 나는? 이제는 내가 시간을 잡고, 내가 선택한 것에 취하려 한다.

요즘의 나는 어떤가? 매일 아침 나의 생체 시계기 5시에 눈을 뜨게 한다.

비몽사몽간에 기도를 하고, SNS를 점검한 후, 음양탕과 사과 한 개를 먹는다.

6시가 되면 스쾃 100개 챌린지를 한다. 30분 후에는 필사를 하고, 브런치 글을 쓰기 시작한다. 글 쓰는 시간은 한 시간 반에서 2시간 걸린다. 글이 일찍 끝나면 30분간 독서를 한다. 글이 늦었지만 독서는 오후로 밀려난다. 요즘 거의 그렇게 되어간다, 아침 준비를 하고 야채찜을 만들어 9시 30분에 가게로 출발한다.

글이 일찍 끝나면 30분간 독서를 한 다음 아침 준비로 야채찜을 만들어 9시 30분에 가게로 출발한다.


오후 3시에는 매장 일을 마치고 돌아와 낮잠을 한숨 잔다. 6시까지는 인스타그램과 블로그를 정리하고, 오전에 끝내지 못한 일들을 마무리한 후 다시 매장으로 내려간다. 8시 퇴근 후에는 하루의 마무리 단계이다.

그런데 스마트폰을 잡는 순간, 알고리즘의 늪에 빠져 시간의 흐름을 놓쳐버리기도 한다. 나 스스로 스마트폰에 취해버린 후에는 늘 후회를 하게 된다.


올해 나의 목표는 100권 책 읽기. 어찌 보면 나 자신을 시간의 노예로 학대하는 듯 보이지만,

나는 과정보다 결과를 더 중시한다. 결과에 만족하기 위해 내 스로를 살살 달래며 간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려면 11시 이전에는 잠자리에 들어야 한다. 하지만 책을 읽거나 휴대폰을 보다가 늦어지면 부족한 잠 때문에 내 몸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잠자는 시간을 사수하는 일이 내겐 큰 과제이다.

내 생체 시계는 늘 같은 시간에 나를 깨운다.

나는 시간에 쫓기지만, 시간에 취할 수도 있다.

나는 내 삶의 리듬을 만들어간다.


그리고 오늘 필사의 글처럼 나에게 묻는다.

"지금이 몇 시지?"

그리고 스스로 답한다.

"지금은 취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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