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사로 만나는 또 다른 나
멜리아 오언스소설, <가재가 노래하는 곳)
외로움을 아는 이가 있다면 달 뿐이었다. 예측 가능한 올챙이들의
순환고리와 반딧불이의 춤 속으로 돌아온 카야는 언어가 없는
야생의 세계로 더 깊이 파고들었다. 한창 냇물을 건너는데 발밑에서
허망하게 쑥 빠져버리는 징검돌처럼 누구도 못 믿을 세상에서
자연만큼은 한결같았다
"외로움을 아는 이가 있다면 달 뿐이었다."
오늘 필사한 문장은 『가재가 노래하는 곳』 속 한 구절이다.
이 문장을 읽는 순간, 마음 한쪽이 찌르르했다. 어린 시절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혼자라고 느꼈던 순간들이 떠올랐다. 사람들 사이에 있어도 문득 외롭다고 느껴질 때, 늘 같은 자리에서 빛나던 달처럼 나를 위로해 주는 것은 언제나 책이었다."예측 가능한 올챙이들의 순환고리와 반딧불이의 춤 속으로 돌아온 카야는 언어가 없는 야생의 세계로 더 깊이 파고들었다."주인공 카야는 사람들 대신 자연과 가까워지면서 위안을 얻는다. 나도 요즘 책을 순 읽고, 필사를 하면서 나만의 작은 세계를 만들어가고 있다. 책 속 문장을 따라가다 보면 나도 모르게 그 세계 속으로 들어가고, 한 글자씩 적어 내려가면서 마음이 차분해진다.
"한창 냇물을 건너는데 발밑에서 허망하게 쑥 빠져버리는 징검돌처럼, 누구도 못 믿을 세상에서 자연만큼은 한결같았다."이 문장을 읽으며 ‘책도 그런 존재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 사이의 관계는 때로 예측할 수 없고, 기대했던 것이 무너질 때도 많다. 하지만 책은 언제든 펼치면 같은 자리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 마음이 흔들릴 때마다 다시 펼쳐 읽을 수 있고, 같은 문장을 반복해서 되새길 수도 있다. 필사도 마찬가지다. 글을 잘 쓰고 싶어서 시작한 일이지만, 어느새 필사는 내게 안정감을 주는 시간이 되었다. 책을 읽고, 필사를 하며 나를 채우는 순간이 나는 좋다. 글을 제대로 써봐야겠다고 마음먹은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책도 많이 읽지 않았었고, 글을 꾸준히 써본 경험도 부족하다. 하지만 읽고 싶은 책들을 쌓아두고, 하나씩 읽어나가는 과정이 풍요롭고 부자가 된 느낌이 많이 좋다.
얼마 전 읽은 책 "시골의사 박경철의 자기 혁명"에 나온 글이다. 좋아하는 글을 10번 필사하고, 내 언어로 바꿔 다시 써보고, 필사한 글보다 내 글이 더 좋아질 때까지 써보라고 했다. 모방에서 내 글을 찾으라는 말이다. 솔직히 나는 그렇게까지 할 자신은 없다. 하지만 한두 번이라도 시도해 보려고 한다. 그래서 이번에 이기주의 『언어의 온도』와 박완서의 『사랑을 무게로 느낄 때』를 주문했다. 『언어의 온도』는 필사책으로, 『사랑을 무게로 느낄 때』는 읽기 위한 책으로...
나는 무언가를 시작하면 꼭 어디엔가 선언하는 습관이 있다. 나와의 약속, 혹은 누군가와의 약속이 되어야 지킬 수 있는 약속을 만든다. 어릴 때부터 극성맞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 아마도 관심과 호기심이 많다 보니 일을 잘 벌렸던거 같다.이제는 글을 쓰겠다고 책탑을 쌓아가고 있다. 내 극성맞은 성격이 나를 책상 앞에 앉히고, 해내겠다는 마음에 불을 지핀다.
오늘도 나는 필사한 문장을 천천히 곱씹으며 내 글을 써본다.
언젠가는 이 과정들이 쌓여 나만의 문장이 될 거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