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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마음이 청춘이라면 우리는 끝없이 노래할 수 있다

by 은빛지원

심보선시, <청춘>

(중략) 사랑한다는 것과 완전히 무너진다는 것이 같은 말이었을

때 솔직히 말하자면 아프지 않고 멀쩡한 생을 남몰래 흠모했을

때 그러니까 말하자면 너무너무 살고 싶어서 그냥 죽어버리고

싶었을 때 그때 꽃피는 푸르른 봄이라는 일생에 단 한 번뿐이라는

청춘이라는~


나의 청춘은 언제까지였을까? 흔히들 청춘을 10대 후반에서 20대 중반쯤으로 생각하지만, 정말 그 시기만이 청춘일까? 아니면 청춘은 마음속에서 불타오르는 어떤 감정의 상태일까? 나이를 먹어가며 몸에서는 세월의 흔적을 피할 수 없지만, 마음은 여전히 청춘이라는 말을 떠올리게 된다.


엄마도 그랬다. 엄마는 노래를 참 좋아하셨다. 지역 노래자랑이 있으면 종종 나가서 조미미의 "삼다도 소식" "바다가 육지라면"을 불러 상품 하나는 꼭 받아오셨다. 나이가 들어도 노래를 좋아하셨고, 부르는 걸 즐거워하셨다. "나이를 먹어도 마음은 애들처럼 펄쩍 뛰고도 싶고 마음은 청춘이다." 엄마는 종종 그렇게 말씀하셨다.

라디오에서 조용필의 노래가 한창 유행이었다. 엄마는 노래를 좋아했다.

"내 이름은 구름이여" 가사를 적어달라고 하셨다. 나는 작은 쪽지에 노랫말을 적어 드렸고, 엄마는 그것을 보며 노래를 불렀다


내 이름은 구름이여

"기다려요 한마디에 긴긴 세월 살아온 나

갈길 잃어 서성이는 내 이름은 구름이여

그리워도 그대 위해 이슬처럼 잊으리라

보고파도 그대 위해 옛일처럼 잊으리라

밤새워 기도하던 이 마음 달래 봐도

갈길 잃어 서성이는 내 이름은 구름이여

그리워도 그대 위해 이슬처럼 잊으리라

보고파도 그대 위해 옛일처럼 잊으리라

밤새워 기도하던 이 마음 달래 봐도

갈길 잃어 서성이는 내 이름은 구름이여~


그 모습이 아직도 선명하다. 하지만 난 이 노래를 그리 좋아하지만은 않았다. 왠지 마음이 슬퍼지니까. 36세에 홀로 된 엄마에게 40대에 듣는 이 노래는 어쩌면 그리움의 노래였을 거란 생각이 든다. 6남매를 키우고 시부모님들 까지 농사일하며 그래도 늘 씩씩한 모습으로만 남아 있는 내 엄마의 모습이다. 엄마에게 청춘은 단순한 시기가 아니라, 마음속에 남아 있는 어떤 열정, 여전히 뛰고 싶은 마음, 노래하고 싶은 순간들이었구나 싶었다.


그리고 나는 지금, 나의 청춘을 돌아본다.

처음 가게를 열었을 때, 나도 청춘의 한가운데 서 있었다. 하루하루 살아남기 위해 버티며, 나를 증명하고 싶었다. 하지만 어느덧 12년이 흘렀다. 이제는 서서히 내려놓을 준비를 하고 있다. 경제적 자유도 물론 중요하지만, 64세의 나에게는 이제 나를 위한 삶도 필요하다. 오랜 시간 나를 혹사시켜 온 손, 언제나 누군가를 위해 움직였던 몸, 이제는 조금 쉬어도 되지 않을까. 가게를 정리하고, 나를 돌보며, 조금 더 가볍게 살아가고 싶다.


어제 친구 어머님의 부음을 들었다. 요양원에서 생을 마감하셨다는 이야기를 듣고 순간 여러 가지 생각들을 해보았다. 예전에는 부모님을 집에서 모시는 것이 당연했지만, 지금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가정이 많다. 오랜 병시중이 힘들다는 걸 알기에 요양병원을 선택하는 것도 나쁜 일은 아니지만, 어쩌면 그것이 어른들이 마지막으로 겪어야 하는 쓸쓸함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면 , 늙어가는 우리는, 과연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을까?

청춘이 불안과 열정의 시간이라면, 노년은 그 불안을 수용하고 준비하는 시간일지도 모른다. 청춘이 지나고 나면 자연스럽게 찾아오는 시간이지만, 우리는 막상 준비 없이 맞이하는 경우가 많다. 부모님이 가신 길을 보며, 이제는 우리도 그 길을 걸어갈 준비를 해야 한다는 걸 느끼게 된다.

"청춘이라는."

엄마가 그토록 좋아했던 노래처럼, 나도 나만의 노래를 부를 수 있는 시간이 왔으면 좋겠다. 마음이 청춘이라면, 우리는 끝없이 노래할 수 있을 테니까. 청춘은 과거형이 아니다. 청춘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따라, 청춘은 계속해서 새로운 모습으로 우리 곁에 머물 거란 생각이 든다. 그리고 언젠가 노년을 맞이할 준비를 하며, 그 시간 속에서도 나만의 또 다른 청춘을 찾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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