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꽃이 지고 나면 무엇이 남을까?

나는 오늘도 글을 심는다

by 은빛지원

오늘의 필사면

F. 스콧 핏츠제럴드소설. <위대한 개츠비>

그 이웃집에서는 여름 내내 밤마다 음악이 흘러나왔다. 개츠비의 푸른 정원에서 신사와 숙녀들은 별빛과 샴페인 사이를 불나방처럼 오갔다. 나는 오후 만조 때, 그들이 다이빙대에서 물로 뛰어내리거나 해변의 뜨거운 모래 위에서 일광욕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곁에서는 두 대의 모터보트가 폭포처럼 물보라를 일으키며 바다를 가르기도 했다.


필사를 시작한 지도 어느덧 65일.

요즘 쓰고 있는 ‘더 나은 어휘를 쓰고 싶은 당신을 위한 필사책’이다. 필사를 하며 내 글을 정리하고 나의 이야기로 연결해 가고 있다. 때로는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기도 하고, 책의 문장과 상관없는 생각이 툭 튀어나오기도 하지만, 그렇게 나만의 글이 만들어지고 있다.

오늘 필사한 『위대한 개츠비』 속 장면은 화려하다.

불나방처럼 분주히 오가는 사람들, 해변에서 햇빛을 즐기는 찰나의 순간들. 하지만 그 안에는 어딘가 모르게 허무함이 스며 있다. 개츠비의‘푸른 정원’이라는 표현은 그의 이상과 꿈을 상징하는 듯하지만, 결국 그 꿈이 허무하게 흩어질 것을 암시하는 듯하다.

화려한 파티가 끝나면 찾아오는 고요한 아침처럼, 삶도 그런 것이 아닐까.?

"개츠비의 정원이 사라진다면, 나는 어떤 정원을 남길 수 있을까?"

이 질문에서 나는 내 삶을 되돌아보게 된다.

어떤 날은 하루가 빨리 지나가길 바라며 무심히 흘려보냈고, 또 어떤 날은 시간이 조금만 더 있었으면 하고 아쉬워하기도 했다. 열정에 차 달렸던 순간도 있었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그저 시간이 흐르길 기다리던 날도 있었다. 돌아보면, 우리 삶에도 반짝이는 순간들이 있었다.

기쁨과 환희, 꿈과 열망으로 가득 찼던 시간들. 하지만 그 빛이 사라진 뒤, 우리에게 남는 것은 무엇일까? 결국 남는 것은 내가 맺어온 인연, 그리고 그 인연 속에서 쌓아온 나의 진짜 이야기일 것이다.

요즘 문득, 문득. 내 나이는 몇인가 할 때가 있다.

"80세를 기준으로 보면 이제 십여 년 남짓, 나는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이며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 걸까?"

말로는 내려놓아야 한다고 하면서도, 화병에 꽂힌 꽃을 시들어 가게 두지 않고 뿌리를 내리게 하고 땅에 심으려 한다. 무모함 일일까? 나는 가능하다고 믿는다. 내가 키우는 꽃들은 뿌리를 내릴 수 있는 꽃이니까.

그러니 이루어질 확률이 꽤 크다고 본다. 내 마음에도 꽃이 있다. 그 꽃을 피우기 위해 나는 여전히 삶을 붙잡아야 할 이유를 찾고 있다. 마치 몇백 년을 더 살아갈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얼마나 오래 사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마무리하느냐에 있다고 본다.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비워내야 할까?

어제 친구 어머님의 상가에서 오랜만에 어린 시절 선후배들을 만났다.

한때는 세월이 멈춘 듯했던 얼굴들. 이제는 세월의 흔적이 깊이 스며 있었다. 반갑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시간이 이렇게나 빠르게 흘러갔다는 사실이 낯설게 느껴졌다. 그들의 모습에서 또 내 얼굴을 보게 된다.

삶은 흘려보내는 것이 아니다. 그 흐름 속에서 어떤 씨앗을 심고, 어떻게 가꾸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좋은 날과 나쁜 날은 형편에 따라 다르게 보일 수 있지만, 결국 모든 순간이 모여 지금의 나를 만든다.

그렇다면 오늘 하루를 어떻게 살아야 할까?

나는 다시, 나의 손으로 하루를 정성껏 만들어 가야겠다.

그리고 이제 나는 또 다른 씨앗을 심는다.

올해는 글쓰기 작가 선생님들과 함께 종이책 출간을 위한 글을 쓰기로 했다.

막연히 글을 쓰겠다는 생각만 하고 있었지만, 작가님들과 미팅을 하면서 내가 전하고 싶은 메시지, 어떤 글을 쓸 것인지 방향을 잡고 목차를 만들었다. 역시 전문가의 지도가 중요함을 느께게 된다.

힘든 과정이 되겠지만, 이 또한 내 삶의 한 페이지를 기록하는 일이 될 것이다.

나는 다시, 글을 쓰고, 삶을 기록하며, 나만의 이야기를 만들어갈 것이다,

어떤 꽃이 피어나든, 그것이 나였다고 말할 수 있도록.





keyword
작가의 이전글청춘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