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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필사
베르톨트브레히트 시, <살아남은 자의 슬픔>
물론 나는 알고 있다
단지 운이 좋았던 덕분에
나는 그 많은 친구보다
오래 살아남았다
그러나 지난밤 꿈속에서
이 친구들이 나에 대해
이야기하는 소리를 들었다
"강한 자는 살아남는다"
그러자 나는 자신이 미워졌다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읽으며 마음 한편이 묵직해졌다.
"운이 좋았던 덕분에"라는 말에서 어떤 씁쓸함이 배어난다. 강해서 살아남은 것이 아니라, 그저 운이 따라줬을 뿐.
그런데 세상은 살아남은 자에게 강했다고 말한다.
살아남은 자의 슬픔은, 단순한 그리움이 아니라 존재 자체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다.
왜 나는 살아남았을까?
내가 대신 사라졌어야 했던 건 아닐까?
어제까지 함께했던 사람들이 사라지고, 그 빈자리에 내가 남아 있는 게 너무도 뼈아픈 일이다. 혼자 남은 삶이라면 ...
삶이 단순히 개인의 의지나 강함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는 걸 알려준다.
때로는 운이, 때로는 시대가, 때로는 전혀 예상치 못한 것들이 우리의 자리를 결정한다.
하지만 남겨진 자는 그저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미워하는 순간마저 견뎌야 한다.그게 살아남은 자의 몫이니까.
나는 어릴 적부터 앞에 나서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공부도, 운동도, 놀이도 언제나 내 맘대로 되지 않았다.어쩌면 자존감이 부족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아니, 근성이 부족했던 걸까?.
"난 안될 거야"라는 생각이 늘 앞섰을 것이다.
오징어 게임처럼 죽을힘을 다해도 결국 나에게 승리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는 선입견, 그것이 나의 행동을 소극적으로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12년간 장사를 하며 여기까지 왔다.
진심으로 운이 좋았고, 무엇보다 강하게 버텼다. 좋은 소리도, 안 좋은 소리도 들었다.
힘든 날도 있었고,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도 있었다.하지만 결국 나는 살아남았다.
지금 자영업자들의 상황은 녹록지 않다.
물가도, 인건비도, 임대료도 끝없이 오르는데, 소비는 줄어든다. 거기다 손님들은 배달앱으로 편하게 주문을 한다, 결국은 또 지출이다. 버텨내는 것이 기적처럼 느껴지는 이 시기에도, 호황을 이루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정말 강하게 최선을 다하며 살아낸 사람들이다. 운이 좋아서가 아니라, 살아남을 만큼 최선을 다했기 때문이다.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 아니라, 살아남은 자들에게 응원을 보내고 싶다. 버티고 있는 당신이 이미 강한 사람이다라고...
살아남은 것, 그 자체가 이겨낸 것이다.
이 힘든 시간을 견디고 있는 모든 자영업자들에게, 그리고 이 시대를 살아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당신이 살아남은 것만으로도 충분히 잘 해내고 있는 것이다.
3일연 연휴를 보냈다. 매일 하는 루틴은 지켰고 집안일을 무리했나보다. 아침에 눈이 빠질 듯 아프다. 매일 아침 시간에 글을 쓰고 있는데 오후로 미루어 볼까 잠시의 갈등은 나를 쎈 사람으로 만든다.오후엔 집중이 안된다. 눈 찜질질 좀 하고 루틴을 마쳤다. 오늘 아침을 잘 살아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