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살아내고 있다. 나답게
김금희 소설, <너무 한낮의 연애>
너의 무기력을 사랑해
너의 허무를 사랑해
너의 내일 없음을 사랑해
어느 날, 숟가락을 들다가 식탁에 떨어뜨렸다. 손에 힘을 주어 다시 잡았지만, 밥을 먹는 일이 온몸에 힘을 다 쏟아야 하는 일이 되어버렸다. 얕은 숨에도 펄럭이던 휴지조각조차 손에 잡히지 않았다. 반찬을 만들어야 하는데, 오징어 껍질조차 벗길 수 없는 내 손을 보며 생각했다. ‘내게 큰 병이 왔구나.’
숨이 깊게 들어가지 않았다. ‘이러다 숨을 못 쉬면 죽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두려움이 엄습했다. 어디선가 숨이 막힐 때 비닐봉지에 바람을 넣어 쉬라고 했던 말을 떠올렸다. 혹시라도 자다가 숨을 못 쉬면 어쩌지? 불안한 마음에 비닐봉지를 준비했다. 이 병이 왜 생겼는지 알기에, 수많은 날을 혼자 견뎌보았다. 병원에 갈 줄도 모르고 버티다가 점점 강해지는 공포에 결국 남편과 함께 한의원을 찾았다. 의사는 화병이라고 했다. 하지만 지금에서야 알게 된 그 증세, 곰처럼 끌어안고 있던 그것은 공황이었다.
시부모님과 분가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정답이지만, 아무도 해결할 수 없는 답이었다. 신앙의 힘을 믿었고, 아이들에게 집착했다. 아이들의 성장을 마치 내 성장처럼 여기며 보상을 받으려 했다. 겉모습은 멀쩡해 보였지만, 어느 순간 숨이 들어오지 않는 고통이 자주 찾아왔다. 다른 사람 눈치채지 못하게 숨 호흡을 했다. 무기력이 찾아올 때면 손을 움직이는 일을 했다. 뜨개질, 바느질, 화초 키우기. 나를 사랑하는 일보다는 오히려 내 몸을 혹사시키듯 미치듯 집착했다. 내가 집중했던 그 과정 속에서 자존감을 되찾고 나를 위로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오늘도 나는 아침 필사를 하고 글을 쓰며 추억을 소환한다. ‘너의 무기력을 사랑해.’
"무기력"이라는 단어에 한때 무기력했던 나를 떠올리고 글을 쓰고 있다. 과거의 나, 아팠던 기억을 끄집어내는 일은 유쾌하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64년의 삶에서 그것은 지나온 하나의 점일 뿐. 그리고 그 상처들 덕분에 나는 성장했고, 그것이 힘의 원천이 되었을 수도 있는 생각을 한다. 아픈 만큼 성숙한다고 했다.
좋았던 순간도, 아팠던 순간도. 나의 성숙의 시간이었으리라,
"너의 무기력을 사랑해.
너의 허무를 사랑해."
나는 이제 더 이상 과거의 나에게 얽매이지 않는다. 무기력했던 순간들조차도 나를 성장시키는 과정이었음을 받아들였고 , 무기력과 허무 속에서도 나는 나를 단련했다, 삶을 견뎌냈으며, 잘 살아내고 있다. 배움과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자세. 무너졌던 순간을 잠시 떠 올려 보았지만 과거일 뿐, 지금의 나, 내 모습 그대로 나를 사랑한다. 매일 되는 안되든 글을 쓰는 것은 나를 성장시키는 과정이고, 치유의 시간이다. 필사는 내 안의 단단한 뿌리를 찾는 일이라 생각한다. 그렇게 나는 여전히 배우고 있고, 여전히 성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