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마주할 따듯한 언어
라이너 마리아 릴케 서간문,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슬픔이 한 번도 본 적 없는 거대한 모습으로 눈앞을 가로막터라도
놀라지 마십시오. 그리고 믿어야 합니다. 삶이 당신을 잊지 않았다는
것을. 당신의 손을 잡고 있다는 것을 결코 그 손을 놓지 않으리라는
것을
초등학교 3학년 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셨다.여섯 남매와 시부모를 책임져야 했던 엄마에게 슬퍼할 겨를은 없었다.
그날 이후,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것이 전부였을 것이다.
어느 날, 툇마루에 엄마가 읽고 놓아둔 편지 한 통이 있었다.아버지의 사촌 여동생이 엄마를 위로하는 편지였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그때는 그저 엄마를 위한 말이라 여겼다.
하지만 시간이 흐른 뒤에야 그것이 푸시킨의 시라는 걸 알게 되었다.짧은 문장 속에는 단순한 위로가 아니라, 삶을 바라보는 깊은 통찰이 담겨 있었다.
"고통의 날을 참고 견디라.
기쁨의 날이 반드시 오리니."
어린 시절엔 ‘고통’이라는 단어가 싫었다.
어쩌면, 엄마의 고통을 알기에 더더욱 인정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그러나 살아가면서 점점 깨닫게 된다.어려운 시간을 지나고 나면 결국 따뜻한 순간이 찾아온다는 것을.
오늘 필사한 릴케의 문장.
"슬픔이 한 번도 본 적 없는 거대한 모습으로 눈앞을 가로막더라도 놀라지 마십시오.
그리고 믿어야 합니다. 삶이 당신을 잊지 않았다는 것을."
푸시킨의 시와 맞닿아 있는 느낌이었다.
그때는 알지 못했다.슬픔이 단지 견뎌야 하는 것이 아니라,삶의 일부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시간이 흘러보니,슬픔을 마주하는 태도가 곧 삶을 대하는 태도가 된다는 걸 깨닫게 된다.
살아가면서 힘들고 고단할 때마다 떠올린 문장들이 있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푸시킨)
"고통의 날을 참고 견뎌라. 기쁨의 날이 반드시 오리니." (푸시킨)
"넘어지고 깨어지더라도 한 조각의 심장만이 남거 들랑, 고지가 바로 저긴데." (이은상, 고지가 바로 저긴데)
어린 시절 스쳐 지나갔던 문장들이,
지나고 보니 삶을 해석하는 언어가 되어 있었다.
언젠가의 슬픔이,지금도 어딘가에서 누군가를 가로막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삶은 우리를 잊지 않는다.
슬픔조차 지나가고,그 너머에는 반드시 다시 마주하게 될 따뜻한 언어가 기다리고 있다.
어쩌면 오늘 내가 남기는 이 글이,지금 슬픔 속에 있는 누군가에게 작은 위로가 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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