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색하는 독서 간이역)
내가 책을 읽는 이유
내가 쓴 글을 읽어 볼 때 과거보다 지금이 더욱 성장했음을 보게 된다. 글은 우리 삶의 원동력이다. 글을 쓰는 일을 약 8년 거의 습관처럼 하며 살고 있다. 알베르 카뮈가 말했듯이 내 인생의 가장 영향을 끼친 스승은 바로 독서다. 독서가 좋은 이유는 책을 읽을수록 내 삶의 목표가 뚜렷해지고 때에 따라 사색의 시간과 지혜가 생겨 인생의 어려운 문제의 해답을 구할 때가 많기 때문이다.
행복을 느끼는 글쓰기
2023년 7월에 쓴 문장이 있다. [적정한 삶]의 저자 김경일 작가님의 첫 문장은 '감정에 집중하라'이다. 인간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감정은 여러 가지로 인간을 변신시키며 그 감정의 방엔 색과 향과 맛을 골고루 가지고 있다. 우린 어떤 상황에서 나쁜 감정을 경험하는가? 난 오늘 이 글을 쓰면서 마음의 상태가 조금은 어지럽다.
그 이유가 내 안에 모호함, 선택의 어려움이 행복보다 더 가득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 내가 좋아하는 글쓰기를 함으로써 이런 어려운 감정들을 극복하려 애쓰고 있다. 다시 말해 난 글을 쓸 때 최대 만족 최대 행복감을 느끼며 사는 사람이다.
가족이란 무엇인가?
어느 날, 아침 가족을 출근시키고 거실 컴퓨터를 켰다. 그해가 약 8년 전. 내 책상엔 [플라멩코 추는 남자]란 책이 놓여 있었다. 그 책은 겨울 끝자락에 동글동글하고 서글서글한 눈매의 허태연 작가님의 소설이었다.
내용을 보니 두 딸과 아버지의 끈끈한 정이 담겨 있었다. 책 속 많은 단어 중 아버지란 단어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했다. 영어로는 man, adult, father 인 이 단어. 알파벳 'a'가 들어가는 단어들이다.
그런데 요즘 그 순위가 뒤로 물러나는 추세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날까? 아버지의 존재가 점점 나약해지는 이 시대. 이 책은 주인공 남훈이란 사람의 노년을 마주하며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고집세고 자기중심적인 남훈. 마치 우리 아버지랑 닮았다. 가족을 위해 평생 굴착기 일을 했던 그. 그런 그에게 딸이 한 명인 줄 알았더니 두 명.
또 다른 딸의 이름은 보연. 그런 또 다른 딸이 뒤늦게 아버지를 이해하기 위해 아버지의 언어를 배우고 가족으로 들어가기 위해 애를 쓴다. 이런 모습을 보며 난 눈물이 났다. 내 눈에서 그렁그렁 눈물이 흘렀다. 보연을 통해 난 오랜 단절로 고통받았음에도 타인 같은 아버질 용서하려는 몸부림을 보았기 때문이다.
70이 가까운 남훈의 인생. 그는 첫 결혼 후 7년 만에 재혼했던 남자다. 두 번째 가정에서 그는 선아를 얻었고 서랍 속에 일기도 적으면서 살았던 조금의 감수성이 남아 있었던 남자. 자신의 잘못을 늘 꺼내 보려 했을까? 그 서랍을 자주 여닫는 행동으로 말이다. 아니면 실수로 잊고 살았던 첫 번째 딸에 대한 후회였을까? 아니면 그리움이었을까?
대한민국을 살면서 매 순간 어려움을 맞닥뜨리는 우리 시대 아버지는 남훈 말고도 너무 많을 것으로 추정한다. 아버지의 부재란 문학 작품이 수도 없이 쏟아져 나오는 지금 우리 사회. 너무나 많은 것을 잃어 아프고 상처투성이인 이 시대.
난 남훈이 한 위대한 일 중 하나가 자신의 삶을 일기장에 고스란히 글로 써 놓은 일이라 생각한다. 자신의 삶을 글로 써 남기고 간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그것은 좋은 습관이고 양심을 살찌우는 일이다. 나도 남훈처럼 일기형식으로 수필을 참 많이 썼다.
가끔 컴퓨터를 켜 보고 지난날의 기록을 들여다보면 그것이 마치 선물처럼 느껴진다. 보연, 첫딸. 애틋함. 자식. 피붙이. 정. 그런 자식이 남훈이 지은 도서관에서 공부를 했었다니. 얼마나 세상이 좁은가? 늙다리 청년 남훈, 아니 늙다리 노년 남훈.
가족이란 든든한 뿌리가 인연이란 가지를 뻗고 썰물과 밀물이라는 열매를 맺었는데 어느새 그 가족 나무가 밀물보다 썰물이 더 많았다면 당신은 그 나무를 어떻게 할 것인가? 그 나무는 가족이라는 열매가 제대로 열려야 그 장소에 버티고 서 있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 다양한 형태로 버티며 자식이라는 열매를 맺으려 노력하는 아버지를 보게 된다. 모 광고에서 전화를 건 아빠에게 딸이 '아빠, 나 바빠. 나중에 전화해."
광고는 간단하게 흘러갔지만 아버진 속으로 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누가 이 사회에서 저 아버지의 눈물을 닦아 줄 수 있을까? 따뜻하고 인간미 넘치는 가정이 많았으면 한다. 가족은 진정한 이야기 상대가 되는 사람들의 공동체다.
난 이 책의 마지막 장면에서 남훈이 새로운 가족의 모형을 만들기 위해 스페인어 학원에 가 새로운 언어를 배우고 플라멩코 춤을 추는 모습에서 묘한 부성애를 느꼈다. 또한 보연을 찾기 위해 가족관계증명서를 떼는 모습에서도 역시 그렇다.
늘 자신은 이혼한 전처의 딸인 보연이란 딸을 잊지 않았다며 식사에 초대해 청년일지를 쓰라며 노트를 선물로 주었다니. 굴착기와 일기와 보연과 청년일지라. 내가 만약 남훈이라면 그 자리에서 잃어버렸다 다시 찾은 피붙이에게 무슨 선물을 했을까?
늦은 나이게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다시 행복한 가장의 자리에 선 남훈이란 남자를 보고 나머지 인생이 모두 잘 풀려 멋진 노년을 맞이하길. 새로운 언어를 배워 새로운 인간관계를 형성하여 멋진 인생을 살길 바랬다.
또한 그가 잘 살아왔고 현재도 잘 살고 있고 앞으로도 잘 살 것이라 믿는다. 이 책은 은퇴를 한 사람들에게 힐링이 되는 책이다.
오늘 혹시라도 당신의 아버지가 회사에서 퇴근하고 돌아오면 이렇게 외쳐 보자. 행복이 뭐 별 것 있나?
'오늘도 수고하셨어요.'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