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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을 읽고

더불어 행복한 세상을 향해 나아가며

by 메리골드

장마가 기승을 부리는 아침이다. 연이어 떨어지는 빗줄기가 작년보다 강수량이 많이 불어 휴가인데 옴짝달싹을 못 하고 앉아 독서를 하고 있다. 그동안 읽고 싶은 책이 많았는데 홈캉스를 하면서 책을 읽고 있으니 이게 바로 행복이 아닐까 한다. 우연한 기회에 공상과학 소설을 접했다.

김초엽 작가님의 〈인지공간〉과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은 같은 맥락의 SF 소설이다. 단발머리의 젊은 작가임에도 불구하고 탁월한 상상력과 인간미가 넘치는 글은 읽는 내내 많은 즐거움도 주었고 앞으로 일어날 미래의 삶을 예측하게 했다. 알 수 없는 미래 100년 뒤, 아니 그보다 훨씬 먼 미래의 일을 궁금해하면서 그것이 현실적으로 가까이 오고 있지 않을까 하는 작은 희망도 가지면서 적잖은 기대를 하게 만들었다.


우리 앞에 놓여 있는 것 중 시급히 해결할 우선순위를 둔다면 난 미래의 일보다 지금 당장의 코로나의 해결이 더 위중하다. 인간이 만든 재앙 앞에서 얼마나 우리가 고초를 당하는지 현재가 미래를 만든다고 생각하면 지금 보아서는 우리의 미래도 그다지 행복하지는 않을 거 같다는 불길한 생각도 든다. 책 속의 자잘한 많은 등장인물의 삶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지천명의 나이에 나랑 비슷한 속도감을 가진 연령의 안나를 생각해 보기도 하고 미래의 아이들도 같이 생각해 보았다.

아이를 계획하는 미래세대에 인공 자궁에서 아이들이 자란다고 하니 마음이 서글퍼졌다. 엄마의 태동을 느끼고 자라지 않고 태어난 것도 불행한데 엄마의 손결이 아닌 보육 로봇의 품에서 자란다면 얼마나 인간미가 없는가?


기계문명이 뛰어나도 모성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문명이 지금과 다르더라도 로봇이 인간의 지성이나 감성, 창의력을 뛰어넘고 대체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 아닐까 한다. 지금도 현대인들이 감성이 사라지는 세대에 살고 있는데 인문 도서관이 아닌 감성이 없는 논리만 가득한 도서관이 미래에 생길지도 모른다. 그것도 또한 생각만 해도 슬프다.

어머니의 손길이 아이의 감성을 자극하고 인간의 지성이 아름다운 감각기관을 통해서 맑은 정서가 흘러나와 독립된 인간으로 자라도록 많은 역할을 하는 미래세대라면 빛의 속도가 아무리 빠르더라도 가 볼 만한 게임이라고 생각한다.


미래의 기계문명의 무분별한 개발은 결국, 인간을 기계의 노예로 만들고 인간의 삶을 더 삭막하게 할 것이다. 스마트폰이 발달하면서 인간의 의사소통이 얼마나 단절되었는지 누군가는 분명히 알 것이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이라는 질문에 하고 싶은 말은 참으로 많다. 어차피 미래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우주를 개척하고 우주선을 만들어 인간이 달에 도달하려고 몸부림쳐도 인간은 그 우주 공간에서 외로움과 고독과 싸워야 하는 존재이다.

우리가 사는 이 지구가 우울하고 슬프고 복잡하더라도 난 이 지구를 우주보다 몇 곱절 더 사랑한다. 슬랜포니아로 가는 우주선을 기다리는 노인의 모습을 떠올리면서 우리 인간이 주변의 사람들과 내면이 서로 통하는 관계의 형성이 없다면 삶이 무의미하다고 생각한다. 먼 미래의 일보다 현재 주변을 살피고 성찰하는 참된 인간의 아름다운 모습을 더 바란다.

내가 소설 속 딥프리징 기술을 연구하는 안나였다면 난 어떻게 그 상황을 살아갈까? 우주선을 타고 다른 행성으로 가는 길을 극복하기 위해 인간을 냉동 수면 상태로 만드는 시대라니 과학이 도대체 얼마나 발달해야 그런 일이 가능한 걸까? 냉동이 되었다고 해도 인간의 세포가 아무 탈 없이 기능할 수 있도록 깨어나게 한다니 약간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그 정도의 과학 실력이면 거의 신의 경지의 수준이 아닐까?


그 시대에 안 태어나서 잘 모르겠지만, 지금 이 시대에 태어나 지구에 발을 딛고 우주 공간에서 오랫동안 수면 상태로 떠돌지 않고 있다니 너무나 감사할 뿐이다. 난 냉동고기도 별로 안 좋아하지만, 냉동이란 말 자체가 왠지 모르게 내 팔의 한쪽이 마비되는 것 같아 느낌이 안 좋다.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는 것이 인간이고 과학이라면 가져갈 것도 남길 것도 없는데 왜 인간들은 서로 아웅다웅하면서 치열하게 살아가는지 잠시 이 책을 통해 자신을 돌아보고 성찰해 보는 시간을 갖게 되어 좋았다.


책을 통해 새로운 지식을 쌓기도 하지만, 미래도 예측해 볼 수 있어 일거양득이 되는 휴가였다. 이런 점에서 난 책을 자주 읽는다. 더운 여름에 몽한적인 상상을 하는 게 재밌기도 했고 류드밀라 행성처럼 아름답고 눈물 흘리게 하는 감성을 자극하게도 해서 소박하면서 즐겁고 특별하면서 짜릿한 독서를 하게 되었다. 책의 전반적인 것을 다 믿지는 않지만, 나름 읽으면서 우주를 상상할 수 있어 재미가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먼 우주인 슬렌포니아행 우주여행도 흥미로웠다. 그런 우주여행이라면 한 번쯤은 해 볼만하다고 생각한다.

이는 분명 신기한 체험일 것이다. 하늘도 등급이 칠천 하늘 구천 하늘이 있다고 들었는데 우주는 도대체 몇 겹의 우주가 존재할까? 밤하늘의 별을 무수히 바라보면서 지구와 우주 사이의 광활한 공간을 상상하는 것은 흥미롭다. 그런 면에서 이 소설은 그동안 잠자고 있던 상상력을 자극했고 많은 호기심도 불러일으켰다.


알면 알수록, 읽으면 읽을수록 더 빠지게 되는 이 소설이 가진 장점은 책을 읽는 내내 내가 속한 이 지구라는 세계가 한 줌의 모래처럼 작은 공간이라는 사실이다. 그런 위치로 보면 인간이 자연 앞에서 겸허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우주 앞에서는 왜 도전적이 되는지 의문이 든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인간의 지적 호기심이 만든 우주탐사, 공상과학, 더 나은 미래세계의 추구는 인간이 해 볼만한 도전이다.


나사(NASA)와 차별을 다룬 영화 〈히든 피겨스〉도 보았지만, 우주라는 공간이 아직은 모순투성이고, 언제든지 떠날 수는 있어도 결코 돌아올 확률이 없어 보이니 외로운 섬 같기도 하다. 외로운 노인이 우주라는 섬에서 고독한 냉동 기간을 견딜 것을 생각해 보니 얼마나 마음이 짠했는지 모른다. 나이 든 것도 슬픈데 우주에서 그리운 사람을 만나기 위해 홀로 그 어려운 시간을 감내해야 한다고 하니 여간 마음이 씁쓸했다.


작가님이 말하는 자원도 풍부하고 살기 좋은 곳이 제3행성, 그런 곳이 우주에 진정으로 존재한단 말인가?


그게 바로 슬렌포니아란 말인가?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와는 다른 곳에서 살아보기를 희망하는 많은 지구인들의 꿈의 장소, 낭만적인 장소, 미지의 유토피아가 있다면 당연히 빛의 속도를 넘어서라도 가야 할 것이다.

냉동 수면 기술, 즉 베타 부동액과 나노봇을 이용하여 딥프리징 기술을 개발하여 우주 개척시대를 기여한 한 노인, 170세가 된 안나의 이야기는 정말 흥미로웠다. 잠든 채로 우주로 사람을 보내는 시대라니 더더욱 놀라웠다.


성경에서 가장 오래 산 노인의 이름이 969세까지 산 ‘무드셀라’라고 알고 있는데 자연재해가 그때는 없었는지, 무엇이 인간의 수명을 그토록 오래 유지하게 하는지 그 많은 세월 동안 인간이 얼마나 많은 기억을 간직하고 살아야 했는지 등 소설 속 안 나와 연관도 해 보았다. 좋은 기억도 있고 나쁜 기억도 있었을 텐데 아무튼 인간은 알 수 없는 존재이다.


이 책을 읽고 내가 알고 싶은 점이 있다면, 인류의 황금 시기는 도대체 언제였는가? 와 왜 인간들은 그렇게 많은 비용을 들여가며 우주를 가고 싶어 하는가? 끊임없이 연구하고 개발하면서 미래의 또 다른 공간을 얻고자 하는 걸까?이다. 주변의 사람들마저 외면하면서 사는 세상이면서 왜 먼 우주만을 바라는 건지 알 수가 없다. 우리의 생명이 고작 100년이라면, 인간이 우주 사이클에 맞추어 우주를 항해하는 것은 매일 우주 시간을 계산해야 하는 무척 고된 도전이 아닐까 생각한다. 우주의 시간은 수시로 변하여 불특정 하지만, 식을 줄 모르는 인간의 끈끈한 사랑은 늘 언제나 정확하다고 생각한다.

불특정 한 미래, 불확실한 미래를 바라보기보다 지금 현재의 사람들과 사랑하고 배려하며 살아간다면 우리가 미래를 가지 않아도 삶은 얼마든지 충분할 거 같다.


과학기술보다 나은 것은 인간의 지성이고 감성이라 생각한다. 주변 사람을 사랑하고 아끼고 배려하는 삶을 살기를 바란다. 첨단 과학이 아무리 발달해도 인류는 살기가 좋아지기보다 인간관계가 더 복잡해지고 단절되어 가고 있으며 계층이 차별화가 심하여 점점 더 살기 어려워지고 있다. 장애인의 삶이나 이주민의 삶을 보아도 그렇다. 그들의 삶이 정확히 어떻게 어렵다고 말하기는 곤란하지만, 더 사회가 발달하고 지식이 넘쳐나고 과학이 발달하더라고 인간의 삶의 질은 나아지고 있지 않다.


많은 흥미로운 이야기를 한 권의 책으로 접하게 되어 좋았다. 조금도 쉬지 않고 긴 호흡을 하면서 읽은 것 같았고 다소 예리한 비판력도 가지게 되어 많은 통찰력도 생겼다. 좋은 책은 이야기가 잘 통하는 친구와도 같지 않을까 한다.


다시 한번 그 책의 목록을 보면 이렇다.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 스펙트럼. 공생 가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감정의 물성. 관내분실. 나의 우주 영웅에 관하여. 모든 부분이 아주 매력적이다. 우주탐사를 떠났다 실종된 지 40년 만에 돌아온 희진의 이야기도 흥미로웠다. 작은 책이라는 공간에서 색채로 기록을 하는 외계인도 만나게 하는 김초엽 작가님은 가능하게 하는 마술의 힘을 가진 분 같다. 한 번도 가 보지 않은 우주를 멋지게 표현한 정말 매력적인 책이었다.

무더위에 어반스케치 밑그림을 드로윙해 보았습니다.

( 이 글은 약 5년전에 우연히 작성한 걸로 기후로 고통받는 인간의 모습을 보며 우주 낯선 곳으로 눈을 돌리는 실험적 모습을 보며 sf소설을 첨 접한 날 작성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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