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하나뿐인 생일 케이크/ 가장 완벽한 생일 케이크)
12월의 끝자락. 옷깃을 여미는 날. 사위가 온다고 보일러를 틀었다. 온기. 방안에 온기가 가득했다.
12월 마지막 우리 집 풍경은 어느 가정과 다르다. 가족의 생일이 있는 날. 아침에 난 케이크를 굽거나 산 게 아니라 케이크를 몸소 그렸다.
언젠가 울 딸 생일에 사위가 식탁 위에 글씨를 적어 음식을 차린 모습을 보았다. 어떤 글자는 갈비, 어떤 글자는 잡채. 또 어떤 글자는 생선. 찌개. 국... 이런 생일상을 받고도 좋아하던 딸. 사랑을 전하는 방법이 이색적이었다.
바쁜 세상. 사랑 표현도 다양했다. 빼빼로 데이엔 온갖 종류의 빼빼로를 사서 집으로 배달하던 모습. 참 귀여웠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사랑은 늘 표현하기 마련이다. 오늘 이 아침 캘리를 쓰고 거기 위 색을 입히고 케이크를 만들고 별을 달고 색을 입혔다.
그랬더니 이런 케이크가 완성되었다.
캘리는 남편이. 그림은 아내가. 우린 몇 년째 이런 삶을 이어가고 있다. 난 드로잉을 좋아하고 남편은 글 쓰는 일을 좋아한다. 그러니 우린 이별하지 못한단다. 서로가 필요한 존재라나. 남편의 나이 개수만큼 별을 세기려다 그냥 포기했다. 별을 넣다 보니 너무 많았다.
세상은 주황, 가장은 파랑, 소중한은 분홍. 남편이 좋아하는 색이란다. 오늘을 위해 남편 옷을 샀는데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오늘은 한국에서 생일을. 그리고 일월엔 대만 가서 생일을. 일 년에 생일을 두 번 맞이하는 남편.
그 이유가 올해 남편의 한 갑. 어느새 이렇게 나이를 먹었냐며 마음이 울적한 남편. 고운 모습은 다 어디로 가고. 이마에 주름만 가득한지.
난 오늘 오헨리의 [크리스마스 선물]을 떠올려 보았다. 크리스마스 선물이라면 모두가 일단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가난한 자에게 주는 선물이라고. 크리스마스 주일에 난 동박박사란 의미를 알게 되었다. 저들은 동쪽 페르시아에서 별들을 연구하는 박사들이란다. 그 동박박사가 온 이유가 이 세상의 참된 왕에 대한 목마름이 있었다나.
가난하지만 인류를 사랑하신 마리아와 요셉. 그 마리아와 요셉 같은 주인공이 바로 '짐'과 '델라'다. 선물을 준비하려 했지만 돈이 없던 가난한 연인들. 짐은 물려받은 고급스러운 시계를 델라는 멋진 갈색 머리를. 시곗줄을 낡았고 머리는 자르면 꾸미기에 어려운 처지.
델라는 머리를 잘라 고급 시곗줄을 샀다. 그 돈의 가치가 얼마였을까? 그런데 막상 크리스마스가 되었을 때 남편에겐 시계가 없고 아내에겐 머리가 없었다. 세상에서 가장 값진 것을 주고받은 연인들. 생계를 위해 작가 생활을 했던 오헨리. 오헨리의 또 다른 작품 [마지막 잎새].
난 이 작품을 어려서 읽었다. 1907년작 배경은 뉴욕의 그리니치 빌리지. 그리니치 빌리지에 사는 두 아티스트. 조안나와 수지. 예술에 헌신하는 삶을 살던 저들. 겨울이 오자 도시에 폐렴이 번졌다. 수지는 조안나가 그 질병에 걸렸다는 것을 알게 된다.
조안나의 상태는 갈수록 나빠져 갔다. 그때 창 문의 잎새를 새던 조안나. 그런 모습을 보고 친구인 수지가 조안나의 상태를 살피며 잎새를 늘 새로 그려 넣었다는 이야기. 마지막 잎새는 결국 떨어지지 않고 믿음을 주어 조안나의 병세의 회복을 도왔단다.
이 글을 쓰다 보니 코로나 막 터졌을 적 어머니의 폐렴이 생각난다. 난 그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내가 생애 처음으로 출간한 노란 책을 드렸다. 그때 어머니는 나의 책을 받아 들고 무척 기뻐하셨다. 그날 어머니의 병세는 조안나의 병세처럼 잔인했다.
당뇨 합병증과 노인성 폐렴. 그리고 젊을 적 뇌출혈까지. 어머니의 생은 거의 꺼져 가는 촛불과 같았다. 아직도 잊지 못할 어머니의 모습이 여전히 생경하게 떠오른다. 어머니를 통해 난 남편을 만났다고 하면 맞을 것이다.
어머니는 내가 늘 가르치는 일을 하는 사람하고 살기를 바라셨다. 그런 어머니의 바람으로 난 친척의 소개로 남편을 만났다. 그런데 막상 결혼하려니 반대가 무척 심했다. 그 모든 고난을 다 마치고 잘 살고 있을 즘 어머니는 우리 곁을 떠나셨다.
나에게 2월은 잔인한 달이다. 그 달은 맘이 괴롭다. 아니 처절하다. 어머니를 생각하면 가슴이 많이 아프다. 그런데 남편의 어머니를 생각하면 더 가슴이 아프다. 본 적도 만난 적도 없기 때문이다. 남편은 그런 나에게 그래도 어머니가 있으니 당신은 나보다 낫다고 말하던 때가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나도 역시 남편과 같은 처지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너]를 지은 에이미 크루즈 로젠탈의 동화를 아침에 펼쳐 보았다. 세상에서 소중한 사람이나 친구는 밀어내기보다 다정하게 꼭 안아 주라는 대사가 있다. 가끔 난 남편이 힘들어할 때 약 10초 동안 꼭 껴안아 준다. 그러면 마음이 진정된다고 했다.
생일을 맞이하여 [가장 완벽한 생일 케이크] 앨리슨 레이놀즈의 동화를 읽어 보았다. 귀엽고 털이 많은 곰 아주머니가 꿀 케이크를 손에 들고 걷는 모습이 귀엽다. 그리고 아주 작은 꼬마가 자기 몸집 보다 더 큰 초콜릿 케이크를 머리에 이고 가는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다.
최근 도서관에서 몇 권의 책을 빌려 아이들에게 보여 주자 아이들이 가장 맘에 드는 책이 바로 이 책이라며 손가락을 가리켰다.
오스트리아의 멜버른에서 태어난 엘리슨 레이놀즈의 책은 첫 그림이 무척 편안하다. 안락의자에 앉아 있는 피클이 나온다. 책 속 브리는 여자 아이고 피클은 곰 아주머니다. 마치 곰이 엄마처럼 아이와 재주넘기를 하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피클의 방은 계단 옆 아주 좁은 방. 피클이 제이슨의 생일을 위해 케이크를 만드는 이야기는 마치 엄마가 아이의 생일날 요리를 하는 모습과 비슷하다. 우리나라에선 생일날 케이크를 사 준다. 그런데 외국 그림책을 보면 생일날 대부분 가정에서 케이크를 만든다.
울 집에서도 지난날 케이크를 오븐에 직접 구어 만들어 본 적이 있다. 물론 만든 사람은 울 둘째. 이제 둘째는 더 많은 아이들의 영양을 위해 매일 직장에서 고군분투 중.
이 동화에서 피클과 부리가 좋아하는 것이 다르다. 피클은 안락의자에서 쉬고 싶어 하지만 부리는 피클이 놀아 주기를 바란다. 그리고 피클과 제이슨은 벌꿀 케이크를 좋아하고 브리는 초콜릿 케이크를 좋아한다. 우리 가정도 그렇다.
케이크 하나 사려면 모두가 다 다르게 말한다. 놀이도 다르다. 피클과 제이슨은 배치기 놀이를. 브리는 끝말잇기를 좋아한다. 다양성. 누구에게나 생일은 특별하지만 다양성이 가득한 날이기도 하다. 다양성은 인간 최고의 특성. 각자 서로 다르게 태어나 그 다름에서 아름다움을 찾는다는 내용이 맘에 든다.
책 제목에서는 완벽한 케이크라 했는데 읽어 보니 내용이 완전 다른 느낌이었다. 가장 완벽한 케이크는 다름과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 이렇게 더 좋은 친구가 되려면 친구가 하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나의 기분을 솔직하게 이야기해야 한다. 브리는 피클에게 자신의 기분을 솔직하게 전달하지 못하는 성격이다. 각자의 생각이 다르더라도 우린 서로 좋은 친구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생각이 많아지는 동화다.
마지막 장면에서 브리가 초콜릿 케이크를 먹으면서 이런 말을 한다.
"그래, 초콜릿 케이크가 누구에게나 최고는 아닐 수 있어."
우리에겐 살면서 이렇게 소중한 사람들을 챙기는 날이 많다. 부모님, 형재, 자매, 가족 등. 가족이나 동반자는 수많은 날을 살면서 다투기도 하고 슬픔도 나누고 좌절도 절망도 두려움도 같이 나눈다. 가족의 생일날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생각을 존중하며 살아가자.
저녁이 되어 각자 흩어졌던 가족이 모두 모였다.
그 시각 우린 보리굴비를 먹으러 식당에 갔다. 예약된 식당엔 인파가 상당했다. 꼬막무침, 가자미찜, 홍국쌀밥, 꽃게장 무침, 감태, 보리굴비, 석쇠 불고기 등을 먹었다.
집으로 와서 두 아이들이 준비한 생일 이벤트에 우리 부부는 너무 감탄을 했다.
아빠를 위해 멋진 풍선아트를 준비하고 카드까지 준비해 준 가족들이 고마웠다. 진짜 케이크와 아이스크림, 딸기까지 집안이 화기애애 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