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왕의산 자락 거닐던 날)
왕의산 자락 저수지를 돌다
(우리를 먹이고 키우고 운동 시킨 저 산이 늘 거기에 있기를 바라며 )
2021.6월 경에 쓴 글이다. 깻잎 향이 향긋하니 좋은 작은 샛길이 하나 있다. 그 작은 밭엔 없는 거 빼고는 다 있다.
상추, 깻잎, 방아잎, 열무, 완두콩, 도라지, 파, 배추, 고구마, 옥수수, 토란, 참깨 등속 등이 그물망을 친 밭에 정성스레 자라고 있다. 이 근방엔 버려지는 땅이 없다. 한해 손 놓고 농사를 짓지 않으면, 풀이 ‘여기는 야생풀 단지’라며 개망초 흰 꽃망울이 먼저 알고 피었다. 개망초가 피고 나면, 그 자리에 물이 있는 흔적엔 미나리가, 미나리가 있는 자리엔 찔레꽃 울타리가, 그 울타리 옆엔 홍가시나무가, 홍가시나무가 자라고 있는 밭 밑엔 맥문동 질긴 군락이, 그 군락 너머엔 취나물, 상추, 참깨가 텃밭에서 자라고 있다. 뒷산 가는 오름길 옆 크고 작은 텃밭은 많다. 호박, 돈나물, 매실나무, 감나무가 군더더기 하나 없이 질서 정연하게 자라고 있다.
5월이면, 왕의산은 별처럼 환하고 흰 때죽나무가 한창이다. 이 꽃은 향이 진하다. 냄새를 맡으면, 어지럽기도 하다. 이 열매를 짓이겨 물고기를 잡는데, 마취제로 사용할 정도라니 열매 안의 독성이 강하다. 무서운 꽃이다. 왕의산을 오르는 길은 두서너 군데가 있다. 비래 마을 입구 쌍용 자동차 운전학원에서 오르는 감리교회 옆 천극산 오름길과 상동리 강 씨 집성촌에서 오르는 저수지 근처의 길, 금당지구 팔마 중에서 올라가는 길, 팔마 중에서 올라오면 두 갈래 길이 나 있다. 위로 가면 체육시설이, 아래로 내려오면 신원 아파트 단지 입구가 나온다.
왕의산 근처엔 비래 마을과 상동리 마을이 있다. 봄에는 상추와 깻잎을 주로 심고 여름엔 토란이 내 머리 크기보다 더 크게 입을 펼치고 있으며, 가을엔 우렁이 농법으로 재배한 유기농 벼가 들판을 황금으로 물드는 곳이 바로 상동리 마을이다. 어려서 벼농사를 지을 때 모판에 있는 모를 심다 거머리한테 수난을 당한 적이 여러 번 있었다. 상동리 마을, 논에서 우렁이를 이용한 농사는 신기한 전원풍경이었다. 여름철엔 복성리 인근 논에서 개구리가 단체로 합창을 한다. 둘째 딸이 고삼이었을 때 저녁마다 개구리가 연방 울어 3년 동안 귀에서 뽈록 뽈록하고 환청이 들리는 듯했다. 야간에 떠드는 얼룩얼룩한 개구리 소리는 더한층 커서 와글와글, 짝자그르 마치 개구리 학교를 연상하게 했다. 저 멀리 야간 자율학습은 딸이 하는데 창문 밖 개구리 소리는 끊일 줄 모르더라.
“개굴가에 올챙이 한 마리 꼬물꼬물 헤엄치다.” 여름밤이면 개구리는 논에서 연신 우는 연습을 했다. 밤에는 그 소리가 더 크게 들렸다. 그 논 안에 터를 잡은 귀엽고 느린 우렁이 가족은 그 소리에 맞추어 분홍 알을 벼 이파리에 수천 개도 넘게 산란해 놓곤 했다. 벼 이파리에 붙은 분홍 알이 처음엔 꽃인 줄 알았다. 알고 보니 어미 우렁이의 어린 자식들이었다. 우렁이의 번식력이 장난이 아니었다.
5월 말이 되니 갈퀴나물이 열매를 맺고 있었다. 어린순은 된장국으로 꽃은 샐러드나 비빔밥의 고명으로, 열매도 먹는다고 한다. 근육 이완, 진통효능, 관절염 치료제로 한방에선 약재로 쓴다고 한다. 지나가다 갈퀴 열매를 하나 따 보았다. 딴딴했다. 호주머니에 넣고 집으로 왔다. 일주일이 지났다. 안을 꺼내 보니 작고 까만 완두콩같이 생겼다. 식구가 셋이었다. “요 녀석들 콩알만 한 게 단단하네. 한 집에 세 식구니 내년에도 꽃을 많이 보겠구나.”
이 부분은 24. 12월 말 . 계절의 변화를 보며 작성한 글이다. 요즘 저수지를 걷다보면 시절이 요상하다. 5~6월에 보아야 할 갈퀴나물이 겨울인 지금도 저수지 근처를 가면 간혹 보인다. 이뿐 아니다. 동백 나무에 분홍과 흰색이 한꺼번에 피는 희안한 광경도 목격한다. 또한 봄에 피어야 할 제비꽃이 겨울 초입에도 보인다.
계절만 이상한 것이 아니다. 하늘을 나는 비행기도 겨울 철새들도 다들 갈 길을 헤매고 있는 눈치다. 요즘 들어 자주 나타나는 기상 이변 현상을 볼 때면 너무 가슴이 아프다. 내년엔 이런 일이 더 많이 발생할 텐데 우린 어떤 자세로 다가오는 내년을 맞이 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