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락

by 한소로


도시락에 담긴 추억이 있다.

소풍날 먹었던 김밥 도시락, 학창 시절 매일 먹던 엄마표 도시락, 직접 싸서 누군가와 함께 먹었던 도시락 등등. 우리의 도시락은 참 다양하겠지만 모두 따스하고 정겨운 추억과 함께다.

편의점의 차가운 플라스틱 도시락을 떠올리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나는 초등학교 때만 도시락 세대였다. 처음으로 오후 수업이 생겼을 때, 학교에서 점심 도시락을 싸 오라고 했다. 이제 열 살 된 아이들이 제 손으로 도시락을 쌀 수 있을 리 없으니 각 가정에서 매일 아침 부모님들이 애정과 함께 밥을 눌러 담아 손에 하나씩 들려주셨다.

지금은 상상하기 어려울 수 있겠으나 애엄마라면 아침에 애들 도시락 싸는 것쯤은 당연했던 시대였다. 설사 직장인이라 하더라도. 당시에 햇반은 게으른 사람들만 사 먹는 거라고 손가락질당하는 물건이었다. 아니, 햇반이 아예 없었던가? 아무튼 점심때 찬밥 먹지 말라고 보온도시락에 갓 지은 뜨끈한 아침밥을 담아주신 그 마음을, 매일 햇반 먹는 어른이 된 지금에야 마음 깊은 곳에서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나의 경우에는 엄마도 고생하셨지만 할머니도 고생이 많으셨다. 특히 고학년이 되어가면서 학교가 끝나면 집에 바로 안 오고 하루 종일 싸돌아다닌 탓에 설거지거리를 뒤늦게 안겨드리곤 하는 불효를 저질렀다. 다행히 고학년 무렵에는 급식이라는 선택지가 생겼지만. 할머니가 내게 설거지를 가르치셨던 건 단지 멀쩡한 어른되길 바라는 마음에서일 것이다. 아암, 귀찮아서는 아니었을 거다.


그 뒤는 급식 세대였다. 우리 세대의 학교 급식은 대체로 맛이 없었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급식 업체들 중 뒷돈 받는 곳이 많아서 품질 평균치가 낮아진 탓이 꽤 있을 것 같다. 물론 지금처럼 나라에서 지원을 많이 해주지 않았던 것이 가장 큰 원인이긴 하다. 맛있는 급식을 먹으려면 부모님들의 지갑이 얇아지기 때문에 학교에서도 선택지가 많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인가? 급식은 '먹었다'라는 기억만 있을 뿐, 무슨 반찬이 있었는지 뭐가 맛없고 맛있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도시락은 즐겁게 먹었던 기억만 가득한데 말이다. 이유는 역시 그 안에 담겨있던 정성과 사랑 때문이 아닐까?


이제 나는 초등학생 시절 내게 도시락을 싸주시던, 당시의 어머니와 같은 나이가 되었다. 그러나 한심하게도 여태 부모님께 미역국 한 번 차려드린 적이 없다. 요리를 영 못하기 때문이다. 못하니 맛이 없고, 맛이 없으니 관심이 없고, 관심이 없어 안 하다 보니 도통 못하는 게 아니다. 당연히 도시락을 스스로 싸본 적도 손에 꼽는다.

그래도 이제는 열심히 연습해서 생일상은 한번 차려드리고 싶다. 아니면 맛있는 김밥 도시락이라도 싸서 뵈러 가볼까. 소풍날 아침에 온 가족이 모여 김밥 꼬다리를 아침밥 대신 두세 줄씩 먹었던 기억을 떠올리면서. 날 보면 언제나 좋아하시는 분들이지만, 더욱 좋아하실 거다.


효도, 별 거 아니니까. 도시락만 싸가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

내가 받았던 애정을 두 배로 꾹꾹 눌러 담아 맛있게 싸 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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