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래기국

by 한소로


“다녀왔습니다.”


“그랬어?”

“그랬다더라고. 친척 어르신인데 가까이 사니까…”

“아이고, 용썼네.“


또 시작이다.

오늘도 이모랑 엄마는 거실에서 수다 삼매경이었다. 내 인사같은 건 들은 척도 않는다. 막내이모가 있으면 ‘은주 왔어?’ 하고 대꾸해줬을텐데. 막내 이모는 상냥하니까.

두 사람은 거실에 앉아서 입도 손도 쉬지 않는다. 오늘 다듬고 있는 건 시래기였다. 오늘도 또 시래기국인 모양이었다. 지겨워.

나는 신발을 벗고 내 방으로 쏙 들어갔다.

방에서는 동생 녀석이 시치미를 떼며 책상 앞에 앉아있었다. 짜증난다.

“야, 너 또 내 침대에 누워있었지.”

“아니? 아닌데?“

“차.”

어처구니가 없어서 혀를 차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아닌 체 하려면 산발 머리나 좀 정리하든가.

2층 침대 위칸은 내 거다. 민주 이 기집애, 내 침대에 누워서 놀다가 내 소리를 듣고 후다닥 뛰쳐내려온 게 틀림 없었다. 한 번 잡도리를 해야 한동안 그짓거리를 안 할텐데, 오늘은 그냥 빨리 쉬고 싶었다. 무시하고 책가방을 정리하는데 뒤통수가 따갑다.

“언니~.”

민주가 내 눈치를 슬슬 보다가 입을 뗐다. 답잖게 살가운 소리를 내는 게 또 내 옷을 빌려 입으려는 거다.

“안 돼.”

“아이, 언니~.”

“안 된다고!”

“하루만, 어? 나 친구들이랑 놀러가기로 했단 말이야.”

좀 쉬고 싶은데 방에 들어서자마자 실랑이를 하려니 더 짜증났다. 이 기집앤 안 된다는 말을 대체 몇 번을 하게 하는 건지 모른다. 결국 언성이 높아졌다.

“네가 입으면 내 옷 다 늘어난단 말이야!“

“안 늘어났거든? 언제 그랬는데?“

”지난번 흰티도, 니트도 다 늘어났어! 이 돼지야!“

“뭐래, 이 난쟁이 땅딸보 같은 게!”

이 망할 기집애, 눈꼬리가 쫙 째져 올라가는 게 곧 덤벼올 것 같다. 민주는 아직 중학생이지만 고등학생인 나보다 조금 더 크다. 이제 힘으로는 내가 밀려서 불리하다. 그렇다고 나도 당하고만 있지는 않는다. 말싸움이 몸싸움으로 번지려는 찰나, 엄마의 고함소리가 들렸다.

“너네 또 싸우니? 그만하고 나와서 밥 먹어!”



“에이, 또 시래기국이야?”

민주가 철없이 투덜댔다. 난 고개를 돌려 째려봐 주었다. 조용히 하라는 신호다. 그러나 요게 ‘뭐? 어쩌라고?’ 하고 대꾸라도 하는 것처럼 턱을 내밀었다.

엄마가 다른 반찬을 민주의 밥그릇에 하나 얹어주며 달래듯 말씀하셨다.

“시래기국이 얼마나 몸에 좋은 건데. 얼른 먹어.”

“다른 거 좀 해 줘. 왜 맨날 반찬이 똑같아?”

”자꾸 반찬 투정할래?“

민주가 입을 삐죽거렸다. 나는 별 말 없이 숟가락을 들었다. 그러나 시래기국에는 손도 대지 않았다. 지겨웠다.

“이모는요?”

물어보자 엄마가 투덜대셨다.

“아휴, 몰라. 또 지 혼자 삐져서는 가버렸다. 기왕 다듬은 거 시래기랑 반찬거리라도 좀 들고 가라니까 말도 안 듣고…….”

엄마랑 이모는 맨날 다툰다. 그러면서도 사흘이 멀다하고 시간을 같이 보내니 사이가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모르겠다. 건성으로 끄덕이며 듣고 있으니 눈치 없는 기집애가 또 입을 나불댄다.

“거봐! 언니도 안 먹잖아!”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는 시장 근처를 지나게 된다. 오늘도 시장 건너편 길을 걷고 있는데 엄마가 보였다. 시장을 보고 오시는 길인 것 같았다. 손에는 검은 비닐봉지가 두어 개. 개 중 하나는 시래기인 것 같았다. 가득 찬 봉지 밖으로 마른 무청 끄트머리가 보였다.

반가운 마음에 엄마를 부를까 하다가 좀 귀찮은 생각이 들었다. 집에 가면 또 쉬지도 못하고 시달릴텐데, 잠깐이라도 조용히 걷고 싶었다. 짐도 무겁지 않으신 것 같고.

나는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친구들한테 메시지가 잔뜩 와있었다. 보나마나 잡담이겠지만 주욱 훑어보았다.


“끼이이익——!!!!”


그때 갑자기 끔찍한 타이어 소리가 들렸다. 깜짝 놀라서 고개를 번쩍 드니 1톤 트럭이 길 한가운데에서 급정거를 하는 뒷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앞에는 검은 비닐봉지가…….

덜컥, 심장이 내려앉았다.

“엄, 엄, 엄, 엄마!!”

나는 부리나케 달려갔다. 엄마가 트럭 앞에 주저앉아 계셨다.

“엄마!!!!”

엄마는 창백한 안색으로 바닥에서 일어서지 못하고 굳어 있으셨다.

“엄마! 엄마!”

나는 어쩔 줄을 모르고 엄마만 연달아 부르며 엄마를 더듬었다. 트럭에 치인 건가? 어딜 부딪힌 거지? 왜 못 일어나시지?

정신 없이 더듬는데 엄마가 내 손을 꼭 잡았다. 엄마 손은 조금 차가웠고 살짝 떨리고 있었다.

“은주야, 엄마 괜찮아.“

온몸에 기운이 쭉 빠졌다. 다리에 힘이 풀려서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고 말았다.

그때 트럭에서 사람이 내렸다.

“괜찮습니까? 앞에 사람이 있는 줄 모르고…….”

“괜찮습니다, 안 부딪혔어요. 놀라서 그만 넘어진 거예요.”

그냥 넘어진 게 아니라 아주 호되게 넘어진 모양새였다. 여기저기 까지고, 옷이 찢어진 틈으로 피가 새어나오고 있었다. 갑자기 울화통이 치밀었다.

“아저씨 뭐예요? 뭔데 사람을 이 지경으로 만들어요! 운전 똑바로 못해요!! 우리 엄마 어떡할 거예요! 지금 일어나지도 못 하시잖아요! 사과해요! 사과하란 말이야!!“

눈물이 땅바닥에 뚝뚝 떨어졌다. 악을 쓰니 얼굴로 피가 몰리는 게 느껴졌다.

“은주야!”

엄마가 놀라서 날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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