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번을 말해야 해?!"
"어휴, 알았다고! 알았다고!"
"말로만 알았다고 하면 다야?"
"내가 지겨워서 진짜!"
민경은 방문을 닫았다. 방 안에는 지긋지긋한 얼굴을 한 세경이 침대에 엎드려 있었다. 그녀는 민경이 제 방에 들어오자 끼고 있던 헤드폰을 내리더니 물었다.
"엄마 아빤 또 뭐 때문에 싸우는 거야?"
"아, 몰라. 짜증 나."
민경 역시 지긋지긋하다는 얼굴로 대답했다. 그녀는 세경의 침대에 털썩 주저앉더니 블루투스 이어폰을 끼었다. 자매는 별말 없이 각자 헤드폰과 이어폰을 끼고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며 시간을 보냈다. 노이즈 캔슬링 기능이 거실의 소음을 차단해 주었다.
세경이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 헤드폰을 벗으며 몸을 비틀었다. 그녀는 어정쩡한 자세로 민경을 바라보며 말했다.
"언니, 나 내일 옷 빌려줘."
"안 돼."
"무슨 옷인 줄 알고?"
"안 돼."
"아씨, 좀 빌려달라고!"
"이씨, 니 돈으로 사라고!"
그때, 갑자기 문이 벌컥 열렸다.
"너희들, 뭐 하냐?"
아버지였다. 민경과 세경은 불편한 얼굴이 되었다. 그는 늘 이렇게 노크도 없이 문을 벌컥벌컥 열어댔다. 사춘기 소녀들은 이 무신경하고 가부장적인 아버지를 좋아할 수가 없었다.
"네?"
"뭐 하냐고."
"그냥 있는데요."
불만스러운 대꾸에 아버지가 미간에 주름을 잡았다.
"나와서 밥 좀 차려라."
"네?"
"저녁 차리라고."
"엄마는요?"
아버지는 대답 없이 몸을 돌렸다. 소녀들은 눈을 마주쳤다. 그러나 알 도리가 있나. 슬금슬금 나와서 냉장고에 있던 반찬을 꺼내고 남아있던 국을 데웠다. 별달리 할 줄 아는 것이 없기 때문이었다. 이제 중학생인 아이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둘 다 중학생이 되고 나니, 간혹 어머니가 아버지와 싸우고 집을 비우는 경우가 생겼다. 초등학생 때는 이런 일이 없었는데. 소녀들은 속으로 투덜거렸다.
아버지는 식사를 다 하시고 한마디 하시더니 방으로 들어가셨다.
"어~, 국도 짜고 다 짜다."
아버지 밥그릇엔 쌀알 한 톨 남아있지 않았다. 설거지는 당연하다는 듯 딸들의 몫이 되었다.
잔뜩 골이 난 민경이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언제 와?"
"엄마 할머니 집에 며칠 있을 거다."
"뭐?"
청천벽력이었다. 민경이 놀라자 옆에서 세경이 '왜? 왜?' 하며 속삭였으나 민경은 귀찮은 파리를 쫓아내듯 세경의 얼굴을 밀어내며 짜증을 냈다.
"그러면 우린 어쩌라고?!"
"너네 다 컸잖아. 혼자서 학교 갈 수 있는데 뭘?"
"아빠가 우리한테 밥 차리라고 한단 말이야!"
"차리면 되지."
"엄마!!"
"차리면 되지! 엄마가 늬들 밥 차려주는 사람인 줄 알아!"
전화가 뚝 끊겼다. 민경은 어안이 벙벙해서 전화기를 바라보았다. 마지막 말은 옆에서 듣던 세경의 귀에도 선명하게 들렸다.
"헐······."
아버지의 식사를 차리기 싫었던 두 딸들은 학교가 끝나면 밖에서 만나 함께 햄버거를 먹거나, 친구들을 꼬셔 하굣길에 식사를 해결하고 집에 늦게 들어갔다. 그러나 며칠 만에 용돈이 바닥났다. 어떡하지?
다행히 그때쯤 엄마가 집으로 돌아오셨다. 아버지가 외갓집에 가셨었는지 밤늦게 엄마와 함께 집에 귀가하신 것이었다. 휴, 두 딸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평소처럼 일상이 흘러갔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그 뒤로도 종종 다투셨지만 가출을 감행할 정도로 큰 싸움은 일어나지 않았다. 두 딸들은 부부싸움에 지긋지긋해하면서, 함께 시간을 보내다가 하루가 멀다 하고 서로 다퉜다. 이것조차 지긋지긋했다.
그날 민경은 기분이 저조한 상태로 집에 귀가했다. 학교에서 본 쪽지시험 결과가 좋지 않았다. 이게 다 세경이 그 계집에 때문이었다. 아침부터 부산스럽게 구는 바람에 자신까지 정신이 없어져 쪽지 시험 전에 보려고 적어둔 요약노트를 집에 두고 나가버렸던 것이다. 잔뜩 골이 난 채로 현관문을 열었다.
그런데 평소와 집 분위기가 많이 달랐다.
아빠가 거실 소파에 앉아 계셨고, 엄마가 그 앞 바닥에 앉아계셨다. 그런데 기색이 심상치 않았다. 자세히 보니 엄마 얼굴이 벌겠다.
"엄마, 울어?"
민경이 어리둥절해하며 조심스레 물었다. 주춤주춤 신발을 벗으면서 거실로 들어서는데 세경이 부엌 쪽에서 물 잔을 들고 나왔다.
"언니이······."
세경 역시 한 차례 운 얼굴이었다. 민경이 엉거주춤하게 서있자 세경이 눈에서 닭똥 같은 눈물이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손에 든 잔도 떨리기 시작했다. 엄마가 벌떡 일어나 그 잔을 잡더니 물을 벌컥벌컥 다 마셔버렸다.
"네 아버지가 암이시란다."
덜컹, 심장이 소리 없이 떨어져 내렸다. 세경이가 소리 내어 엉엉 울기 시작했다. 민경은 경황없는 와중에 아버지의 옆얼굴을 바라보았다. 고개 숙인 그 얼굴은 풍상에 삭아가는 돌덩이 같았다. 아버지의 얼굴이 10년은 더 늙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