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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책 한 권, 내 안의 북극성을 만나다

젠지캠프 2박 3일 이야기

by 봉순이

"혹시 젠지캠프 가세요?"

"네, 맞아요! 같이 기다리면 되겠네요."


비 오는 성남의 버스정류장에서 처음 만난 우리는 어색하지만 반가운 인사를 나눴다.


경기도가 주최하고 ‘깊은 산속 옹달샘’이 함께 운영하는 이 캠프는 책 읽기, 글쓰기, 명상, 공동체 활동이 어우러진 숙박형 무료 독서문화 캠프다. 경기도는 생활 속 책 읽는 문화를 장려하고, 지역 독서 생활화를 위한 평생 독서 프로젝트 ‘천권으로’를 추진 중이다.


이 캠프 역시 그 일환으로, 올해 총 4차까지 운영될 예정이다. 나는 그중 제3차 젠지캠프(8월 6일~8일)에 참여했다.


내향적인 나에게 낯선 이들과의 2박 3일은 부담스러웠지만, 가족 없이 떠나는 혼자만의 여행엔 어딘가 모를 해방감도 있었다. 관광버스를 타고 도착한 곳은 충주의 깊은 산속, ‘고도원의 숲’.


전국 각지에서 모인 70여 명의 참가자들은 저마다 ‘인생의 책’을 품에 안고 한자리에 모였다.


20250806_123123.jpg ▲식사시간때 2~3회정도 침묵명상을 한다. 얼음땡과 같은 시간속에서 알아차림이 느껴진다



종소리에 멈추다 - 침묵 명상 식사


첫날 오리엔테이션 직후,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침묵 명상 식사’였다.

"종이 울리면 멈추고, 맛과 향, 식감에 집중해 주세요."


‘땡—’

고요한 정적 속, 우리는 숟가락을 내려놓고 몇 번의 호흡을 했다. 그 짧은 멈춤이 마음에 오래 남았다. 다시 종이 울리자 식사를 이어갔고, 여기저기서 감탄이 흘러나왔다.


"이게 정말 나물이야?" "너무 맛있어서 두 그릇 먹었네."


음식은 정말 기대 이상이었다. 단순한 식사가 아니라, 감각을 깨우는 경험이었다.




"대화가 가장 어려운 사람은 남편" - 관계를 다시 바라보다


명사 특강의 주제는 ‘통(通) 하는 인간관계’였다.


"대화가 가장 잘 되는 사람, 안 되는 사람 2명씩 적어보세요."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대화가 안 되는 사람’에 남편의 이름을 적었다.

가장 가까운 사람이 오히려 가장 대화가 어려운 존재였다.


"가장 가까운 사람을, 때로는 사람이 아닌 ‘대상’으로 대하고 있진 않나요?"


그 말이 마음을 콕 찔렀다. 남편을 대화 안되는 사람 1위에 올려놓고는 ‘돈을 벌어다 주는 존재’로만 여기고 있었던 건 아닐까. ‘가구처럼 변해가는 남편’이라고 흉보던 내 모습이 부끄러워졌다.




KakaoTalk_20250807_114024598_05.jpg ▲스쿼트 50개 이후에 20분 집중독서를 했다. 몰입이 엄청나다. ⓒ 젠지캠프




둘째 날 아침 — 스파, 책, 그리고 숲



둘째 날 아침, 온탕과 냉탕을 오가며 피로를 풀고 7시 30분에는 전 참가자가 모여 스쿼트 50개와 20분 몰입 독서를 함께했다. 처음엔 당황스러웠지만, 운동 후 책을 읽으니 놀랍게도 집중력이 높아졌다. 몸과 마음을 동시에 깨우는 아침, 신선한 충격이었다.


이후 숲 산책 시간에는 파트너와 서로 나뭇잎을 얼굴에 붙여주고, 서로의 등에 기대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풀숲을 맨발로 걷고, 매미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동안 감각이 깨어나는 시간이었다.



KakaoTalk_20250807_114024598_07.jpg ▲서로의 어깨에 기대어 하늘을 보고 있다. 자연속에서 하나되는 시간. 감각이 깨어나는것 같다. ⓒ 젠지캠프



시 한 줄로 마음을 쓰다


‘문장 시간’에는 각자 인생의 책에서 지금 내게 필요한 문장을 찾아 적고, 그 감정을 바탕으로 시 한 줄을 써보는 활동을 했다.



"마음에 꽃을 품고, 행복하게 늙고 싶다."

"나의 알을 깨고 싶다."

"돌도 돌아, 답은 내 안에 있다."

"그냥 좋아서, 그냥 합니다."



한 줄의 시마다 한 사람의 인생이 담겨 있었다. 짧지만 깊은 그 문장들 속에는 각자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바라는 미래가 스며 있었다. 아픔과 치유, 깨달음과 응원이 흐르고, 그 울림은 조용히, 그러나 또렷하게 내 마음에도 닿았다.



고도원 님의 말 - 북극성을 밝혀라



"지금, 이 시간을 터닝포인트라 부르세요.

그리고 북극성을 하나 쏘아 올리세요."



고도원 님의 강의는 여운이 길었다. 매일 24년째 ‘아침편지’를 써오신 그의 말에는 실행하는 사람의 울림이 담겨 있었다.


나도 내 인생의 북극성을 떠올렸다. 그리고 잊고 있던 나의 꿈 하나를 다시 꺼내 적었다. 꿈 너머 꿈까지 그려보는 계기가 되었다.


KakaoTalk_20250807_114024598_01.jpg ▲서로의 시를 발표하고 들으면서 박수와 환호를 보내고 있다. 서로의 마음이 오가며 힐링되어 간다. ⓒ 젠지캠프관련



젠지들과의 대화 - 규정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우리 조에는 젠지세대 참가자들이 있었다.


"젠지캠프에 젠지님들 오시니 어떠세요?"

내가 조심스럽게 묻자, 그중 한 명이 말했다.


"프로그램은 참 좋아요. 그런데 ‘젠지’라고 불리는 게 좀 어색해요.

저는 아무렇지도 않은데, 오히려 다른 사람들이 자꾸 규정짓는 것 같아요."


그 말을 듣는 순간,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우리는 때로 서로의 닮은 점을 기준 삼아 너무 쉽게 경계를 나누고, 그러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타인의 프레임에 갇혀버리기도 한다.


삶의 경계선을 지우는 연습,

어쩌면 지금 우리 모두에게 가장 필요한 태도가 아닐까 싶었다.



삶의 다양성, 그리고 동기 부여


가장 기억에 남는 참가자 중 한 명은 약사이자 ‘푸드파머시’를 운영하는 30대 여성 참가자였다.


"왜 똑같이 살아야 하죠? 다르게 살아도 되는데요."


그녀는 지중해식 식단을 주제로 쿠킹클래스를 운영하며, 관광 온 외국인들과도 음식을 매개로 소통한다고 했다. 78세 캐나다 할머니가 자신의 속도에 맞춰 여행하며 요리를 배우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고 했다.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며, 삶의 속도도 방식도 정답이 없다는 걸 다시금 느꼈다.




동기를 만들고, 서로의 재능을 나누는 시간


마지막 밤, 룸메이트와 이런 대화를 나눴다.


"우리 남편은 다음 차수에 신청했어요."

"부러워요. 저희 남편은 책을 안 읽어서 저 혼자 왔거든요."

"저희도 비슷해요. 그래도 이렇게 서로에게 동기가 될 수 있잖아요"


삶은 언제나 새로운 동기를 만들어가는 과정인지도 모르겠다.

이런 공간과 시간이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도 꺼져가던 꿈에 다시 불씨를 지필 수 있다.

다음에는 나도 가족과 함께 오고 싶다. 기회가 있을 때, 마음껏 누릴 수 있기를. 지금 이 순간이 바로 그 시작일 수 있으니.



울림통을 만들다 - 짧은 시로 마무리하며



캠프 마지막 시간, 각자가 한 편의 시를 써서 발표했다.

내가 쓴 시를 이 자리에 소개해 본다.


울림통을 만들다


북극성 별이 빛난다.

빛나는 별, 거기 있었다.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했던

내 안의 빛남과 떨림.


나는 그것을

두 손으로 잘 받았다.


너의 책이 나의 울림이 되고

너의 이야기가 나를 위로해 주는

그 소중한 빛을 곱게 담아

나의 별을 올린다.


아무도 보지 않던

인스타 속 나의 작은 그림,

함께하니 더 빛난다.


그렇게 나는

울림통을 만들 것이다.

무한한 이야기들을 엮어서.



젠지캠프는 끝났지만, 내 안의 북극성은 새롭게 올려졌다.

그리고 그 빛을 향해 걸어가는 길 위에, 함께 걷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힘이 난다.

이 멋진 여정을 함께해 주신 모든 스태프와 참가자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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